3-4호 라인
302호.
나보다 어린 남자애가 살았다. 그 집 아줌마는 오며가며 나를 좀 예뻐해주셨다.
친구가 없어서 개미를 관찰해서 그리고
심심해서 혼자 조용히 그림그리고 책을 본거였는데
아줌마 눈에는 얌전히 공부하는(?) 여자애로 보였는지
늘, 우리 애도 이렇게 책 좀 봤으면- 이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
칭찬처럼 들려서 기분이 좋았으므로 아줌마를 보면 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보다 어린 그 남자애는 워낙에 개구져서 싫어했다.
아줌마가 우리 애도... 라고 말을 하실 때 기분은 좋았지만
아줌마 불행히도 그 애는 이렇게 못할거에요. 라고 대답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나란 아이, 눈치가 영 없지는 않았던 거 같다.
303호. 우리집. 나중에. 휴.
304호.
아들 둘.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그 아줌마의 억셈이.
시대를 앞서가던 워킹맘 아줌마.
시원시원하고 좋으신 분이었다.
가끔 밤에 아파트를 뒤흔드는 부부싸움이 있었다하면 그 집이다.
다음 날이면 베란다에서 고공낙하한 선풍기가 아파트 마당에 나뒹굴곤 했다.
엄청난 열정이다.
이혼해!!!!!!!!!썅!!!!!!!! 씨발!!!!!!!!!!!! 미친!!!!!!!!!!!!!
방음이라고는 1도 되지 않는 그 아파트에서 그 때 모든 욕을 다 들으며 밤을 지샜다.
첫 째가 나랑 동갑이었는데 아줌마는 나에게 책을 빌려가도 좋다고 하셨는데
책을 빌리러 가면 동갑내기 그 아이는 빌려주기 싫어했다.
중학교 때, 하필 그 아이가 친구들과 우르르 모였을 때 내가 책을 빌리러 가자,
친구들이 휘파람을 불었는데 엄청나게 짜증을 냈다.
고등학교 때 그 아이의 친구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 찼다.
그 아이도 나를 조금은 좋아한 거 같은데 소심해서 내색하지 않은듯하다.
지나고 생각하니 나를 좋아한게 아니라 사춘기 시절,
주변에 또래 여자라고는 마땅히 없어서 단순 호기심이었다.
305호.
남매동생들이 있었다.
남자 아이는 너무 아기여서 잘 기억나지 않고
성격 좋은 아줌마 얼굴과 여자아이 얼굴이 아직도 또렷하다.
여자 아이는 울보이기도 했고 (그애가 오기 전엔 내가 울보였는데 걔가 나보다 더 울보였다.)
나이도 어리고 해서 늘 술래를 했다.
나중엔 술래는 늘 팔을 들어 얼굴을 묻어야 하는데
팔이 아파 술래를 할 수 없다고 우기자
아이들이 놀이에 끼워주지 않아서 아줌마가 화를 내며 달려나오셨다.
어차피 나는 원래 외톨이여서 혼자 따로 놀고 있었기 때문에 혼나지 않았다.
그 애를 놀리지 않고 조용히 혼자 있는 나를 아줌마는 종종 집으로 불러서 같이 놀게 해주셨다.
나름 동생을 잘 돌봐서였는지, 그 애도 나를 잘 따랐다.
그 집 아기도 귀여웠고 그 아이도 이뻐서
엄마한테 동생을 낳아달라 그랬다가 욕을 푸지게 먹었는데
정성이 통했는지 드디어 내가 6학년 때 엄마 뱃속에 동생이 생겼다.
완전 최고 행복했다.
104호.
나랑 동갑인 남자애. 그리고 그 애의 누나.
언니는 늘 커트머리에 가까운 단발머리를 하고 피아노를 완전 잘 쳤다.
이 집도 그 손뜨개 레이스가 덮힌 피아노가 있었다.
한 번은 언니가 한자가 빼곡히 적인 공책을 보여주었다.
한 페이지를 다 쓰면 100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 날은 5페이지를 써서 500원이 생긴다고 했다. 가끔 나에게 간식을 주었다.
좀 더 크고 중학교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나와 동갑인 남자애와 같은 독서실에 다니게 되었다.
그 동네는 독서실이 그곳 하나 뿐이어서 등록하면 온동네 아는 얼굴이 다 있었다.
한 번은 슈퍼에 가려고 나왔다가 만났던가, 어쨌든 그 애와 어두운 골목을 걷게 되었는데
그 애가 난데없이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술이 뭐냐고 물었다,
웬 술? 나 술 모르는데?
몰라, 라고 대답하자 그 애가 얼굴을 들이밀며 입술! 이라고 말했다.
순간 이게 뭔가 멍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 애를 버려두고
미친듯이 달려 집에 왔다.
와 씨. 나쁜새끼. 미친 새끼. 도른 놈.
씨를 발라먹고 개의 아기를 찾아도 시원찮을........
(그때의 분개함을 나타내기 위해 굳이 욕설을 꼭! 써야한다.)
(사실 이 글을 적으면서 육성으로 구성지게 한바구니 퍼붓고 많이 순화시킴.)
하마터면 어이없이 첫 뽀뽀를 도둑맞을 뻔 했다.
잽싸게 달아난 나의 순발력을 아직도 두고두고 칭찬한다.
204호.
아들 둘. 눈이 아주 커다란 아줌마와 역시 눈이 아주 큰 아저씨.
두 분을 보면 늘 활짝 웃고 있는 개구리 생각이 났다.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아주 젠틀하고 친절하고 상냥하신 분으로 기억.
딱 한 번 아줌마네 집에 놀러갔는데 1리터짜리 우유팩을 빙 둘러붙여서
커다란 동그라미가 되자 아주 튼튼한 화분받침으로 쓰시던게 기억이 난다.
첫째 아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둘째는 서너살 어렸던 거 같은데
둘다 너무 착하고 귀여웠다. 첫째 아이가 조금 개구져서 몇 번 나를 놀려서 울었다.
그 댁 아줌마 아저씨가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엄마가 어느 날 와서 그 집 아저씨가 아줌마 머리도 감겨준다며 감탄을 해대는 걸 들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커서 생각하니 정말 사랑받고 사셨구나 싶어서 기분 좋은 웃음이 났다.
몇 년 전인가, 엄마가 그분들 소식을 들었는데 아저씨께서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ㅠ_ㅠ
참 다정하셨던 두 분인데 아줌마 많이 힘드시겠구나, 싶은 생각에 울컥했다.
그 집 형제들을 어떻게 자랐을까.
그 집 어른들의 성품과 미소를 떠올리면 분명히 반듯하게 잘 컸을 것 같다.
304. 우리 앞 집.
딸 둘.
나보다 어린 첫 째. 더 어린 둘 째.
기집애들 성깔이 장난이 아니었다.
첫 째와 잘 어울려 놀기도 했지만 성정이 사납고 샘이 많아서 자주 다투었다.
나는 그래서 그 동생이랑 노는게 더 좋았다.
둘 째는 나를 언니언니하며 잘 따랐고 솔직히 훨씬 더 이뻤다.
그 집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항상 일을 하러 나가셔서 안보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조석으로 뵈었는데
할아버지는 늘 리어카 하나에 파지를 모아다 쌓아두시곤 했다.
늘 등교길에 손녀들 책가방을 들어다주셨고 하교길에 데리러 오셨다,
짜증나게 부러웠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쌀쌀맞으셔서 말 붙이기가 어렵고 할머니는 다정하셨다.
늘 고우신 얼굴에 다정한 미소가 가득하신 따뜻한 분이셨다.
나중에 알았는데 할머니는 재처자리로 오신거란다.
맘 고생이 많으셨다고 했다.
어른들의 이야기라 그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 집 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했다.
엄마가 늘 그 집 애들이랑 비교를 해서 매우 지대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더 그다지 친하지 못했던 거 같다.
잘 놀았던 기억보다는 싸운 기억이 더 많고
미안하지만 전반적으로 재수없다는 기억이 강하다.
그 땐 그랬다. (사실 아직도 그러하다.)
404호. 딸 넷인 집.
완전 세련된 워킹맘의 상징. 하이힐을 신고 예쁜 가방을 들고 출근하시는 그 집 아줌마가 신기했다.
첫째 언니는 자주 볼 수 없었고 둘 째 언니는 종종 우리에게 떡볶이도 해주고 인형 놀이도 해줬다.
셋째는 나랑 동갑이어서 곧잘 어울렸는데 한번씩 304호의 첫 째 여자아이가 끼면
우리 셋의 관계가 아주 개판이 났다.
그 때 배웠다. 여자는 셋이 놀면 안좋다는 걸.
그 집 막내는 한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성별은 여자지만 그 땐 그냥 남자애 같았다.
함께 인형놀이를 자주 했고, 한 번은 내 인형의 발부분 고무가 갈라졌는데
둘째 언니가 자기에게 요술 약이 있다고 고쳐주겠다고 인형을 빌려갔다가 돌려주지 않아서
대판 싸웠다가 화해한 기억이 난다.
그 요술약은 분꽃 씨를 곱게 빻아서 쇳조각을 비운 공기알 통에 넣어둔 거였는데
그 당시는 뭔가 되게 그럴싸해보이고 믿음이 가서
후에 몰래 따라서 만들어 본 적이 있다가 효과도 없고
공기통 막음새가 빠지면서 가루가 날리는 바람에 엄마한테 들켜서
직싸게 욕을 먹고 아까워하며 버렸다.
아, 아직도 유일하게 (연중행사지만) 연락을 하고 지낸다.
사나운 싸움 닭같던 둘째 언니는 아이 셋 엄마가 되었고
나랑 동갑이던 셋째는 스무살이 되지마자 결혼하고 애를 낳아서
지금은 다 키워놓은 아들두고 아가씨처럼 이쁘게 우아하게 살고 있다.
남자같던 막내는 누가 봐도 세상 요조숙녀가 되어 불과 몇 년 전에 결혼 했다고 들었다.
가징 부러웠던 건, 셋재든 넷째든 나랑 싸우면
그날 저녁에는 둘째 언니가 맨발로 뛰어와서
나이에 비해 제법 상스러운 말을 던지면서 거품 물고 싸웠다.
한 번은 나랑 싸우지는 않았지만 다른 아이와 셋 째가 싸워 셋째가 엉엉 울자
언니가 미친듯이 뛰어나와 일단 머리채 부터 잡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나는 되도록 셋 째와도 넷 째와도 싸우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했다.
그리고 그런 든든한 언니가 있어서 참 부러웠다.
504호.
드나들었던 거 같은데 별 기억이 없음.
***
건너편 A 동에 딱 한 집에 나랑 동갑인 여자아이와 한 살 많은 그 애의 오빠가 살았는데
여기도 몇 번 놀러간 적이 있다.
그 옆 라인에 그 아이의 친척 여동생이 있어서 같이 어울렸는데
항상 징징거리고 따라다니면서 훼방을 놓았기 때문에
점점 같이 노는 횟수가 줄었다.
4학년쯤이던가, 학원에 꽂힌 잡지에서 읽은 야한 농담을 하나 외웠다.
외우려고 외운게 아니라 그냥 유머란에 있었고 야한 건지도 몰랐다.
- 어느 날 아이가 코끼리 고추를 가리키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게 뭐야?
엄마가 대답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거야.
그러자 아빠가 중얼거렸다. 망할놈의 여편네 같으니라구. -
그 A 동 양의 집에 놀러가서
그 애 어머니께서 간식을 만들어 주셨을 때
뭔가 조용히 먹기가 어색해서 이 짧은 유머란의 글을 얘기했다.
아줌마가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으셨는데
모른다고 하기가 창피해서 당연히 안다고 대답했다.
유머란에 있던 글이니까 왜 웃긴지는 모르지만 웃어가면서.
나중에 그 애가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라그랬다고 해서
기분이 나빠서 다시는 그 집에 안갔다.
***
너무나 또렷한 기억들이 아직도 많다.
이 모든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정확하게 기억한다.
가끔은 굳이 생각할 필요없을 만큼 쓸데 없어 보이는데
이런 기억들이 왜 맴돌고 생각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신기한 건, 그 때는 정말 어려서 몰랐던 일들이
지금은 모두 알겠다는 거다.
#수필 #에세이 #추억 #9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