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튀기는 여자

by 아란

1986년 사월이던가, 오월이던가. 나의 유년의 기억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할머니와 둘이 부여의 시골마을에서 살다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말? 우리 엄마야?”

낡은 아파트 삼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분홍색 투피스를 입은 ‘엄마’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이 계단을 내려가 조심조심 다가갔더니,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무 걸음쯤 떨어진 놀이터로 달려가 그네에 앉았다. 있는 힘껏 두 발을 모아 굴려서 최대한 높이까지 그네를 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네를 타며 하늘에 머물러 있는 동안, 저만치의 분홍빛 모습도 내게 가까이 오다 멀어지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박혔다. 아마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어 버린 순간이 아닐까. 여섯 살 무렵이면 젖먹이 아이에서 한참 지난 때였는데 나는 뒤늦게 생긴 엄마 품을 파고들어 보들보들한 엄마 젖을 만지며 낮잠을 자곤 했다. 나의 희미한 기억에 엄마는 다 큰 아이에게 기꺼이 젖가슴을 내어주고 내 등을 토닥여주며 그 한 낮에 자장가를 불러주었고, 나는 나올 것이 없는 젖을 물고서 잠이 들었다. 엄마 살냄새를 맡으며.


엄마를 만나기 전 나의 삶은 무색이었다. ‘살아가는 것’은 그저 눈뜨면 밥을 먹고 앉아 있다가 해가 지면 잠이 드는 것인 줄 알았다. 지루했지만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해서 늘 칭얼대는 성질 나쁜 꼬마였다. 엄마가 내 삶에 등장하면서 내 세상엔 색이 생겼다. 엄마가 그려주는 그림에 색칠을하고 가위로 오려서 오래된 과자 상자에 담아두었다. 엄마는 바느질로 고운 인형 옷을 만들어 주었다. 엄마가 흥얼흥얼 부르는 멜로디를 따라 부르며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콩나물을 꼭 닮은 팔분음표, 사분음표를 배웠다. 작은 눈금을 따라서 시계를 읽는 법도 배웠다. 1은 1이지 어떻게 5분이 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울먹이기까지 한 기억이 난다. 아파트 마당에 있는 키 큰 노란 꽃 이름이 해바라기라는 것도, 그 씨앗을 따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호랑이랑 도깨비가 나오는 이야기, 할미꽃 전설 같은 옛날이야기 등 세상은 흥미진진한 배울 것 천지였고 그런 모든 것을 알려주는 엄마는 위대할 따름이었다. 엄마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동안 엄마 없다고 놀렸던 동네 아이들도 이제 아무 말 못 할 터였다. 저들 엄마보다 훨씬 더 예쁘고 똑똑한 우리 엄마가 생겼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겐 ‘처음’이었다.


엄마가 내게 알려 준 모든 일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팝콘’이었다. 조그맣고 노란 알갱이를 숟가락으로 서너 번 덜어 프라이팬에 넣고 뚜껑을 꼭 눌러 닫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까 집어넣은 딱딱한 알갱이는 온데간데없고 고소한 냄새가 쏟아지면서 부드럽고 바삭한 하얀 과자가 튀어나왔다. 어린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그 노란 알갱이가 옥수수라는 걸 알게 된 것도 놀라움 중 하나였다.) 엄마는 팝콘을 자주 튀겼다. 파드득 파드득 프라이팬 뚜껑 안에 갇힌 팝콘들이 아우성을 치면 엄마는 뚜껑을 꼭 누르고 프라이팬을 한참 쳐다보다가 뚜껑을 열어도 되는 그 순간, 속이 후련한 듯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날, 아이가 우는 날, 남편이 늦는 날, 엄마는 팝콘을 튀겼고, 옥수수 껍질을 뚫고 하얀 속살이 보송하게 피어오르면 할머니도 아이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고소함을 즐겼다.


돌아보면 나에게는 행복의 시간이었지만, 엄마에겐 위안의 시간이었나보다. 꼬장꼬장한 할머니를 모셨고, 대한민국의 여느 아버지들처럼 무뚝뚝한 아빠를 기다리고, 엄마에게 붙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칭얼대는 여섯 살 아이를 돌봤던 엄마는, 그렇게 펑펑! 쏟아지는 팝콘 소리에 서러운 마음을 묻었나 보다. 할머니와 아이가 잠이 들고 남편이 오래도록 늦는 날, 마음에 서걱서걱 찬바람이 차는 날이면 엄마는 나가서 부평 시장 쪽을 향해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가 더 걷기가 힘들면 23번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짭짜름한 월미도 바닷바람을 쏘이며 묵직해진 가슴을 털고 집에 돌아오곤 했던 그 때, 엄마는 아마도 외롭고 두려웠을 것이다. 엄마가 한밤중에 나가서 23번 버스를 타고 오래도록 돌고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 열다섯 나이였을 때에도 난 눈물을 흘렸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엄마의 서늘함과 애잔함이 위태롭게 느껴졌던 거 같다.

어느덧, 그 여섯 살 응석받이 소녀는 쌀쌀맞은 사춘기를 지나고 어른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되레 엄마한테 잔소리와 농을 일삼게 되었다.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수줍게 웃던 새색시 엄마는 그런 딸과 말씨름을 해가면서 주름이 설핏 도는 얼굴에 마사지 크림을 바르는 손놀림이 이전보다 훨씬 날래졌다. 남편과는 소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고 그사이에 생긴 늦둥이 둘째 딸에게는 조금 더 능숙한 엄마가 되었다. 점차 기력이 쇠한 할머니와 말동무를 해가며 살뜰하게 챙겼다. 그리고 엄마는 언제부턴가 더 이상 팝콘을 튀기지 않고, 23번 버스를 타지 않았다. 엄마는 정녕 그것들을 다 잊은 걸까. 아니면 더 이상 서럽지 않았던 걸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화장해서 부여의 선산에 뿌리던 날, 엄마는 빨갛게 부은 눈을 하고 정말 간만에 손 수 팝콘을 튀겨 산에 올랐다. 할머니의 뼛가루를 할아버지 묘에 뿌리고 모두가 돌아서 내려올 때, 엄마는 조심조심 할머니가 내려앉은 그 둘레에 팝콘을 뿌렸다. 그림동화 속에 집을 떠나오는 불안한 헨젤처럼 하얀 팝콘을 토도독토도독 뿌렸다. 하얀 소복을 입고 벚꽃 같은 팝콘을 뿌리며 갈대밭을 내려오던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이제 나는 정말 궁금하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삶을 헤쳐왔을까. 엄마는 어디에서 왔을까. 여자는,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딸이자 아내이자 엄마인 그녀가 내게 물려준 그 자리. 이 자리가 언제쯤 ‘온전히’ 안락해질지 알 수 없지만 해가 바뀌면서 나는 훨씬 여유로워졌다. 예전에는 용납하지 못했을 일에도 너그러이 웃을 수 있게 되고,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수많은 소식에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정말 ‘여자’가 되기 위해선 많은 숙제들이 있지만, 하나씩 하나씩 여자가 되어간다. 하나씩, 둘씩 엄마를 닮아간다. 여자의 인생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아직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섣불리 무너지지 않게 소소한 것에서 위안을 받고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생에서 불완전한 30대를 아슬하게 지나고 지금은 조금 더 여물어진 40대. 나는 여자가, 엄마가 가는 길을 헤쳐가고 있다. 가끔 고소한 팝콘을 튀기면서.

(시대가 좋아져서 요즘엔 전자렌지용 팝콘이 잘 나온다. 물론 토독토독 소리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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