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배냇저고리를 보관하며 살았다.
“태어나 처음 입은 배냇저고리를 가지고 있으면 복이 온대.”
엄마는 장롱 정리를 할 때마다 배냇저고리가 나오면 그렇게 말하면서 곱게 다시 접어서 넣어두었다.
‘엄마가 입혀준 것도 아니면서 뭘 그런 걸 생각해?’
나는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그 배냇저고리는 내가 결혼을 할 때도, 결혼 후에 이리저리 이사를 다닐 때도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저런 걸 입었었구나.’
거기까지였다.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기억에 딱히 남지 않았던 배냇저고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건 2016년 봄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무척 행복했다. 임신 준비와 과정이 힘들었지만 첫 출산이 내게 주는 행복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을 통째로 뒤집어 다시 바라보는 눈을 주었다. 하지만, 육아는 행복했으나 때로 고되고 때로 외로웠다. 외롭고 힘든 밤에는 잠든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송송하게 솟아오른 부드러운 머리칼과 찹쌀떡 같은 말랑한 볼을 쓸어보고 동그랗게 쥔 주먹에 내 손가락도 넣어보았다. 그러면 반사적으로 꼭 잡아주는 그 온기에 내 마음이 녹았다. 그리고 발, 하루 종일 뒤뚱대며 땅을 딛고 뛰놀았을 동그란 발을 어루만지다 보면 그 발은 내 손안에 쏙 들어찼다. 마음이 꽉 차오르면 다시 힘을 얻었다. 지금 너무 힘들고 슬픈데, 그 순간에 너무나 분명한 행복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주 이상한 감정의 터널을 오래도록 지나왔다.
외롭던 어느 밤에, 나는 옷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옷장 바닥 어느 구석에서 그 배냇저고리가 나왔다. 그동안은 옷 정리를 할 때마다 배냇저고리를 숱하게 넣었다 뺐다 해도 늘 무심했던 나였는데 그날은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하얀 바탕에 자잘한 동물무늬가 흩어져있고 가느다란 끈 두 줄이 앞 섭에 매달려 있었다. 작고 남루한 아기 내복은 오래되어 여기저기 노란 얼룩이 생겨 있었다. 하얀색도 더 이상 하얀색이 아니었다.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자니, 배냇저고리를 통해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애써 들여다보지 않은 건 배냇저고리가 아니라 나의 숨겨둔 마음이었다. 나를 버리고 간 생모에 대한 원망이었다.
딱히 추억도 없고 얼굴도 모르니 그리울 기억도 없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 자라서는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했고, 더 자라서는 ‘인생은 어차피 각자 사는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내가 나를 다잡았다. 그런데 괜찮지 않았던 거다. 내내 생각해 왔던 거다. 생각이 나면 괜찮다고 억누르지 않았는가.
그 밤 배냇저고리를 보며 나는 오열을 했다. 잠든 아이를 보자 생모에 대한 미움이 마구 솟구쳤다.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귀한데 어떻게 버리고 갈 수가 있나!’
그리고 잊고 있던 기억도 물밀듯이 몰려왔다. 언젠가 내가 본 무릎 두 쌍. 치마를 입은 생모의 무릎과 옆에 낯선 아저씨 무릎께의 튀어나온 바지선. 내게 노란 쥬시후레쉬와 하얀 스피아민트 껌을 내밀던 손. “아빠!”라고 부르라던 목소리.
이제야 똑바로 마주하게 된 나의 감정을 인정하기로 한 그 밤에 나는 토할 듯이 울고 쏟아낸 후, 나는 배냇저고리를 다시 고이 접었다. 거기에 진 얼룩이 아이를 버리고 간 여자의 정념이든 후회이든 그 무엇이든 이제 나는 더이상 괘념치 않고 흘려보내기로 했다. 곱게 접은 배냇저고리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어쨌든 배냇저고리를 지니고 있으면 복이 온다는 엄마 말이 맞았다. 그 복중에 첫 번째는 남편 전처의 딸의 배냇저고리를 찾아 접어주면서, 가만히 ‘복’을 얘기해주는 엄마가 나의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나는 묵힌 감정을 버리고 다른 복도 주섬주섬 모을 테니까 배냇저고리 덕에 복을 가져온 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해부터 하나씩 나의 기억 조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