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에게는 삼성에서 나온 아주 얄상한 워크맨이 생겼다. 카세트테이프 크기에 딱 맞춤 한 듯한 작은 워크맨은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였다. 진한 초록색 몸통은 플라스틱 재질로, 남색 테두리는 얇은 고무를 입힌 것 같은 감촉으로 만들어진 그 소형 카세트가 참 예뻤다.
부평역 지하상가의 남광장 쪽으로 나가는 계단 입구에 짝퉁 테이프를 파는 노점이 하나 있었다. 당시 내가 자주 찾는 곳이었다. 마음에 드는 최신 팝, 발라드 명곡은 물론 최신 가요까지 천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용돈을 모아서 테이프를 하나 사면, 집에 와서 커다란 엄마의 라디오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고 되감고 뒤집고를 반복하며 열심히 들었다.
야밤에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젖은 일기를 쓰고 싶은 여중생이었지만, 방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되지 않는 낡은 아파트였다. 음악은 커녕, 윗집 아저씨의 술주정 소리와 곧 이어지는 윗집 아줌마의 울음소리, 옆집 동생이 숙제를 하다 틀려서 제 언니에게 구박받는 소리, 아랫집 남자애들 둘이 소리 지르며 뒹구는 소리까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기에 음악을 틀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나의 처지였기에, 친구의 소형 카세트가 엄청나게 부러웠다.
어느 날, 친구에게 사정하여 그 카세트를 일주일 동안 빌렸다. 두 귀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한 후, 음악이 흐르는 밤이 주는 평온함이란! 환상적일 정도로 달콤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친구에게 워크맨을 돌려주러 갔다. 친구네 반을 찾으니 청소하던 중이었던가, 점심시간이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친구는 보이지 않고 맨 앞자리에 친구의 가방이 보여서 그 아래에 워크맨을 찔러두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하굣길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워크맨을 달라고 했다. 아뿔싸! 직접 주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어떻하지? 미안해......”
“야! 그거 우리 아빠한테 생일 선물로 받은 거란 말이야! 책임져!”
친구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럴만했다. 죄인이 된 나는 학교 구석구석, 화장실 등등을 찾다가 결국 교무실 분실물 센터로 갔다. 애초에 그렇게 사라진 카세트가 곱게 있을 리가 없다.
“그걸 믿어? 혹시 돌려준 척하고 훔쳐 간 거 아냐?”
“그건 모르지. 어쨌든 직접 줘야지 그게 준거니?”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그나마 내가 책상에 두고 가는 걸 본 친구가 있어서 도둑 누명은 벗었지만, 이미 나는 무책임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 일은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갖고 싶었던 내 욕심이 부른 화일지도 몰랐다. 그날 밤에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당장 그 돈을 어떻게 물어주나 걱정이 돼서였다. 항상 가난에 찌들었던 생활에서 억울함은 돈 앞에 비할 게 아니었다. 억울한 감정쯤이야 내 속이 문드러지고 남이 뭐래도 당장 돈이 나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 시절은 그 정도로 절박하게 가난했다. 그리고 나는 그 ‘가난’이 너무나 싫었다.
나는 저녁 내내 엉엉 울었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아빠는 말없이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고 엄마는 “그러게 왜 남의 것을 탐을 내고 빌려! 빌리기를!” 하며 야단을 쳤다. 그 모든 사태를 보던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장롱을 뒤져 속곳을 하나 꺼내셨다. 그 속곳 주머니 안에서 작은 헝겊 지갑을 꺼내시더니 그 안에 꼬깃꼬깃 뭉쳐있던 돈 십만 원을 주셨다.
“아가, 이걸로 어떻게 안 되겠냐? 그게 그만치 비싸댜?”
나는 하도 울어서 딸꾹질을 해가며 그 돈을 받았다. 다음 날 친구에게 사과하면서 새로 사주겠다고 했고, 친구의 아버지가 8만 5천 원을 주고 샀다기에 더 묻지도 않고 돈을 건네줬다. 그 일이 있고, 나는 그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지 못했고 우리 가족들도 아무도 그 얘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나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비밀’에서 주인공 찰리의 할아버지가 비상금을 꺼내주는 장면을 볼 때마다 항상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그해 가을 10월, 내 생일이 되던 날이었다. 아빠가 내민 두툼한 꾸러미를 풀어 보자 최신형 분홍 테두리가 있는 '아하프리'가 나왔다.
“아빠! 이게 뭐야? 엄마! 고마워요!”
좋아서 다시 엉엉 눈물이 났다. 참, 잘 울던 나였다. 그날 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이 들었다.
황홀한 시절이었다. 동네 언니가 그 위의 언니에게 물려받아 입었던 그 교복을 다시 내가 물려받아 입었다. 오래 명을 이어가던 교복 치마는 솔기가 헤져서 늘 하얗게 테두리가 생겼었다. 엉덩이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던 그 낡은 교복을 입고, 친척 오빠에게 물려받은 운동화를 신고, 부평역 지하상가에서 샀던 만 원짜리 가방을 맸다.
그리고 최신형 아하프리 카세트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등하교를 했던 그 때. 아침에 수돗물을 받아 팔팔 끓여서 찬물과 섞어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서는 그 길. 강아지 오줌이 얼룩지고, 쌓아둔 연탄 더미 옆에 밤새 누군가가 술을 먹고 토해놓은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렇게 낡고 더러운 골목길을 지나면서도 세상은 빛이 났었다.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가난하고 남루한 행색의 여고생이었지만 심장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환하게 빛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늘 꿈을 꾸듯 지냈다.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걸어 다녔던 그때. 얼마나 빛났을까. 얼마나 예뻤을까. 그 빛남을 정작 나는 알지 못하고 지나왔다. 내 행색이 부끄러워 늘 수줍었고 숨기에 바빴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그 시절의 내가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