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마주하는 날이 있다.

신생모의 육아 에세이

by 아란


아이를 키우다보면 종종

내가 아이만했었을 때의 찰나같은 기억이 스칠 때가 있다.

그것들은 사진같은 기억일 때도 있고

그냥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일 때도 있고

뇌리에 남는 목소리나 어조가 살아있는 말인 경우도 있다.


아이가 세 돌이 가까울 무렵,

나는 원인도 모를 침울함으로 며칠을 마음앓이를 하다

결국 한 밤중에 자다 일어나 펑펑 운 적이 있다.


내가 세 살 때 생모가 떠났다.

특별한 기억도 추억도 없기에 그리움도 모르고 자랐다.

다행히 여섯 살때 마음고운 우리 엄마가 와주어

따뜻하게 지은 삼시 세 끼를 먹고

엄마가 매일 아침 빗기고 묶어주는 예쁜 머리로 학교에 다녔다.

엄마가 들려주는 노래를 따라부르고

글자와 숫자를 익히고

뒤늦게 엄마 가슴을 만지며 사랑받고 자랐다.

그래서 아쉬움도 없었다.


그런데,

내 아이를 키우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감정이었다.

엄마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속삭여주는 입술.

따뜻하게 파고드는 작은 몸.

목을 끌어안는 손길.

이토록 이쁜데, 이렇게나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떠날수가 있었나.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조금만 엄마가 안보여도 엄마~를 찾아 부르고

졸리고 아프고 불편할 때에

세상 끝난 것 처럼 엄마만 찾으며 우는 내 새끼를 보니,

그 어릴 때 나도 이랬을까,

나는 엄마를 몇날 며칠을 찾았을까 싶어지다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열 밤 자고나문 온다혔다."

어리고 숫자를 몰랐던 나는

매일 똑같이 열밤이 반복되는 걸 눈치채지 못했고

할머니가 말했던 그 열 밤은 수백번도 더 지나버리고

그러는동안 나는 기다림을 지웠다.


새삼 깨달은 내 상처를 마주하고

며칠을 울었던가.

그 며칠을 밤마다 시원하게 울고 나서

곤히 자고있는 아이를 한참 들여다보면

자면서 입맛을 다시거나,

씩-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를 품에 쏙 안으면

자세를 고치며 더 깊이 파고드는데

그 따스함이 나의 치유였다.


아이가 나의 구원이고 나의 치유가 되던

그런 밤들.


여전히 또 다른 자잘한 상처들을 불쑥 마주할 때가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에겐 한 없는 사랑을 뿜어주는 내 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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