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취미를 찾는 중입니다
나는 예전부터 ‘취미가 뭐냐’는 질문이 싫었다,
취미(趣味)’- 어떤 일을 즐기어 하는 버릇이나 기호.
사전적 의미는 참 담백하다. 글쎄…. 뭘 좋아했지?
누구는 인형을 모으고, 누구는 드럼을 치고,
또 누군가는 프랑스 자수를 한다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짐만 많다.
짐 만들기가 취미이자 특기….
결혼 전엔 뭐가 취미였더라?
굳이 꼽자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밤새 술 마시기?
그때는 아주 행복했다.
소주 한 잔에 세상 다 가진 듯 웃던 시절.
마흔이 넘은 지금,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영양가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긴 한다.
사십 넘어서 “취미: 술”이라고 쓰기에는…. 양심이 있다.
아! 남편은 게임이 취미란다.
게임이 취미야?
스트레스 풀리고 재밌어.
그런 건 취미가 아닌 거 같은데…. 취미는 그래도 좀 ‘있어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당신은 취미가 뭔데?
말문이 막혔다.
취미는 ‘즐기어 하는 일’이면 되는 건데,
나는 괜히 그 위에 조건을 얹어 놓고 있었다.
있어 보이고, 삶에 뭐라도 남겨야 하고,
남에게 말했을 때
“오~” 소리 정도는 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문제는, 정작 나에겐 그런 게 하나도 없다는 거다.
이삼십 대에는 일하고, 연애하고, 놀고….
바쁘게 살았다.
‘당장 재밌는 것’만 찾다 보니,
정작 나 혼자서 ‘즐기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지 못했다.
카페도 한두번이고, 영화도 이제 재미없다.
유튜브, 넷플릭스…. 뭐든 틀어 놓긴 하는데….
다 허하다. 시간은 분명 내 건데,
손에 잡히지 않고 스르르 빠져나간다.
취미…. 취미…. 내 취미는 도대체 뭐지?
이런 고민, 더 젊었을 때 해야 하지 않았나?
취미는 찾지 못한 채
한 일이라고는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바라보다
한숨 쉬는 것뿐이었다.
나는 살림이 취미도 아니고,
육아가 특기인 엄마도 아니다. (유아교육 전공인 게 함정)
엄마들 모임에 가면 비슷한 이야기만 맴돈다.
아이 얘기, 아니면 학원, 그것도 아니면 물가 얘기 등등…. 대화는 끊임없는데,
나는 그 속에서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나는 그런 것보다 이런 게 더 궁금하다.
이 사람은 뭘 좋아하지? 뭐 할 때 제일 행복하지? 취미는…. 있긴 한가?
하지만 그런 질문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 얘기를 할 만한 엄마도 잘 없다.
비슷한 말이 오갈 때도 있지만
애들 때문에 뭘 하겠어요….
이 한 문장으로 대화는 접힌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나도 아이 어릴 땐 그런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이제 아이도 어느 정도 제 할 일을 알아서 하고,
문득 생긴 틈이 아쉽고 아깝게 흘러간다.
‘이 시간에 뭘 해야 의미 있을까?’
그 질문이 허공에 붕 떠 있는 날들이 이어지던 날,
문득 떠올랐다.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싶었던 것. 글.
“그래, 이거다.”
그 순간이었다.
거창한 다짐으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
그냥 써보니 좋았다.
문장 하나만 적어도 마음이 정리되고,
누군가에게 살짝 털어놓은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글을 쓰기 시작하자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복지관 글쓰기 수업을 알게 되고,
POD 출판으로 내 이름이 찍힌 책이 생기고,
블로그와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남기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글 쓰는 내가 꽤 괜찮아 보였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쓴 것도 아니고,
누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것만으로도 뿌듯함이 올라오는 기분. 맞다.
글을 쓸 때 행복했다.
취미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생기고 있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게 하나쯤은 있다.
한때 빠져 살았던 것, 해보니까 재밌었던 것,
하면 괜히 기분 좋아지는 것들.
음악일 수도, 그림, 요가, 드라이브, 산책일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집안일, 육아 말고
나를 위해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나도 글이 아니었으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제아이랑 도서관에 가도 아이 책만 고르지 않는다.
아이 책한 권 고르면, 내 책도 빼서 보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쓴다.
옆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아이 눈빛이 반짝인다.
엄마 멋있다. 엄마 작가 될 거야?
그 말 한마디면 하루 종일 기운이 난다.
남편도 자꾸 그 말을 한다
“당신, 요즘 밝아졌어.”
집안일에 소홀해도 덜 미안하다.
예전엔 나만 희생한다는 억울한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올라왔는데
(집안일은 정말 억울한 일 투성이다.)
요즘엔 그 마음이 확실히 줄었다.
“나를 위해서”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까.
그제야 알겠다.
취미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누가 보면 “아니, 그게 취미야?” 할 정도여도 상관없다.
돈이 되지 않아도, 남들이 봤을 때 있어 보이지 않아도, SNS에 올릴 사진이 나오지 않아도,
내가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잠깐이라도 되찾아주는 무언가면 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식으로 자신을 되찾는다.
친구 A는 퇴근 후 드럼을 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친구 B는 식물을 키우면서 지친 마음을 달랜다.
누구는 그림을 그리고, 누구는 운동하고,
또 누구는 혼자 조용히 명상한다.
이 모든 게 다 괜찮은 취미다.
‘있어보이지’ 않아도 된다.
다 ‘나를 다시 찾는 시간’이니까.
당신도 그런 걸 꼭 하나쯤 다시 찾아냈으면 좋겠다.
굳이 “취미입니다!” 하고 소개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냥, “이건 나를 위해서 하는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언젠가는 우리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OO 할 때 행복해.
(물론 주름도 없으면 더 좋고. 그럼 지인짜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