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화장을 고치고-
우연히 날 찾아와 사랑만 남기고 간 너
지금 이 노래를 부르자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 화장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
얘기를 좀 해보자는 거다.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건 알지만,
내 화장대의 화장품들은 기본 두세 해는 지난 지 오래다.
상하기는 뭘 상해. 쓸 일도 거의 없는데.
립스틱은 다 파먹었고,
아이 섀도는 쓰지도 않고 깨져 있다.
그나마 열심히 바르는 건 선크림 하나.
결혼 전엔 나갈 때마다
1시간씩은 거울 앞에 매달려 있었는데.
피부 톤을 밝히고, 볼 터치, 눈썹, 마스카라,
머리 셋팅까지…. 지금은? 선크림이나 바르면 다행이다.
집에 있을 땐 늘 똑같은 복장.
목 늘어난 반팔 티, 파자마 바지,
머리는 아이 고무줄로 질끈.
거울 속의 내가, 내가 봐도 살짝 무섭다.
놀라운 건 그 차림으로 편의점까지 간다는 거다.
십 년 전엔 상상도 못 했을 일.
이제는 뭐, 보는 사람도 없고
잘 보일 사람도 없으니까.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집에서도 좀 예뻐 보이고 싶다.
나 혼자일 때도, 남편이 볼 때도.
결혼 초엔 나도 드라마 속 여자들처럼
하늘하늘한 원피스 입고,
정성으로 밥상을 차려놓고
남편을 맞이하는 부인을 꿈꿨다.
현실의 나는? 머리나 감으면 다행이고,
홈웨어는 며칠째 그대로다.
요리하다 묻은 얼룩, 떡진 앞머리,
안경 너머로 흐릿한 얼굴은 덤이다.
남편은 지금도 예쁘다고 말하지만,
가끔은 나도 긴장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한 번쯤 집이 아닌 ‘약속 장소’에서 남편을 만나고 싶다.
화장하고, 옷 차려 입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며
‘오늘 예쁘다’는 말 한마디 듣고 싶다.
그런데 꾸밀 일이 없다.
가는 곳이래야 학교, 학원, 마트.
그나마 외출 같은 외출은
가끔 있는 친구나 동생들을 만나는 날.
오늘 날씬해 보이네.
언니, 피부 진짜 좋다.
그 말 한마디에 온종일 기분이 달라진다.
약속 시간이 다 되도록 화장대 앞을 떠나지 못한다.
립 색깔을 바꾸고, 앞머리에 롤을 말고,
옷을 몇 번이나 골라 보며 마음이 들뜬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은 거다.
인스타에서 메이크업 영상만 봐도 울컥한다.
아무리 따라 해도 내 얼굴은 그 얼굴이 아니다.
사십대 동안메이크업 이라는데…. 왜 안 되는거지?
얼굴이 문제야? 손이 문제야?
결혼 전엔 이런 영상 찾아볼 생각도 안 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매달리고 있는 걸 보면
급해지긴 했나 보다. 진짜 늙기 싫다….
그런데 그보다,
그 시절의 나처럼 꾸며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잊고 있던 ‘예뻐지고 싶었던 마음’,
파릇하던 나를 꺼내 보고 싶었던 걸지도.
오랜만에 엄마들 모임이 있는데,
눈썹을 그려야 겠다.
늘 삐뚤빼뚤하지만 안 그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뭐라도 찍어 바르자.
최소한의 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
거울 앞에 서서 한쪽 눈썹을 그린다.
오른쪽은 괜찮은데 왼쪽이 문제다.
면봉으로 살짝 문지르다 더 망쳤다.
‘아, 망했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언니, 다 왔어요?”
“응, 눈썹만 그리고 바로 나갈게!”
5분 늦게 도착한 모임 장소.
대화를 나누다 잠시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이번엔 오른쪽 눈썹이 더 짧다.
손으로 대강 문지르다 또 망쳤다.
에이, 몰라, 누가 본다고.
오늘 화장했네?
헉, 알아보다니.
그러고 보니 모인 넷 중에 눈썹 그린 건
나 하나다. 왠지 으쓱한다.
얘들아, 선물!
내가 꺼낸 건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 몇 개.
이게 뭐야?
그냥, 너희 생각나서 샀어.
어머, 립스틱이잖아.
응, 색이 산뜻하더라. 우리도 이제 좀 바르고 다니자.
역시 언니 최고! 고마워. 꼭 바르고 다닐게.
우리는 립스틱을 손에 들고
셀카 모드로 사진을 찍는다.
립스틱을 손에 든 우리, 괜히 웃음이 난다.
우리 예뻐지자! 그 시절처럼.
촉촉하게, 맑게, 자신 있게!
“나는 예뻐지려고 화장하는 게 아니라,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기 위해 화장한다.”
— 프랑수아즈 사강
파우치에 립스틱 하나는 있죠?
지금 꺼내 들어요.
그리고 예쁘게 바른 다음,
여기에 입술을 찍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