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나를 찾는 중입니다

4화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by 박짝가

여덟 번째 이야기.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그거 진짜, 박나영 너답다


이 한마디가 좋다.


예쁘다? 잘 어울린다?

보다 ‘너답다’라는 말에는

취향, 개성, 역사(?)가 다 들어있으니까.

나는 흰 티, 청바지, 무지 니트 이런 걸 입으면

0.3초 만에 ‘펑퍼짐한 아줌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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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 그냥 스타일이 안 맞는 걸로 하자.

대신 린넨이나 루즈핏, 화사한 프린트,

살짝은 튀지만 부드러운 실루엣.

그런 게 잘 맞는 거 같다.

소화가 되고 있냐고? 그건 보는 사람이 판단할 문제고,

뭐, 어때. 나는 그냥 좋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건

꽤 괜찮은 일이다.




슬프면 내 마음보다 더 슬픈 발라드를 듣는다.

‘사랑 안 해’만 들으면 이유 없이 울컥해진다.

무료할 땐 재즈를 틀고 와인을 따른다.

샹송도 좋다.

누가 부르는지도 모르지만, 그 리듬과 여운이 좋다.

취향은 거창한 게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사소한데, 그 사소함이 나를 지켜준다.

슬프면 슬픈 노래로, 지치면 따뜻한 캔들로,

지루하면 화려한 옷 한벌로 나를 달래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집이다.

나 혼자 살면 내 취향 껏 꾸미겠구만….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월넛 가구, 오렌지빛 조명,

미드센추리 감성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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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은…!





요리도 잘 안 하면서

새까만 전자레인지에 엄청 큰 큐커까지 있다.

제습기에, 가습기, 게임기, 청소기 2대, 공기청정기,

프린터, 스피커, 각종 충전기 줄들….

흰색, 검은색, 회색 선 달린 기계들이 가득하다.

나는 못생긴 기계가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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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쁜 기계는 비싸다.

(드X기, 비스X크 같은 애들.)

남편은 가성비만 찾는다.

그럴때마다 극F인 나와 극T인 남편은 투닥투닥.


한번은 당근에서 너무 예쁜 앤틱 원목 책꽂이를 샀다.

사진만 보고 덜컥 샀다가 집에 들여 놓고 보니

좁은 거실이 더 좁아졌다.

그래도 ‘예쁘잖아’ 하고 우기며

사이사이를 비좁게 피해가며 지나간다.

접시렉도 문제였다.

유럽 감성의 벽걸이 접시렉을 샀는데

우리 집 접시 크기가 안 맞았다.

접시는 못 넣고, 벽에는 나사 구멍만 남았다.

남편은 그걸 볼 때마다 고개를 젓고,

나는 삐죽거리며 그곳에 뭐든 수납하려 눈치를 본다.



참, 그런 날도 있었다.

어느 가을날 린넨커튼에 비치는 햇살을 보며

감성에 젖어있는데

남편이 퇴근하더니 추워진다며

커튼 뒤로 ‘극혐’하는 못생긴 방한 커튼을 달았다.


식물 인테리어도 하고 싶다.

초록초록한 집,

빨간머리 앤이 살 것 같은 집. 좋다.

하지만 나는 물 주는 걸 늘 깜빡한다.

플랜테리어는 좋지만,

식물을 가꿀 만큼 나는 부지런하지가 못하다.

지금 우리 집 화분 대부분은

‘내 게으름의 증거’로 남아있다.


게을러서 화분에 물을 못 줘도,
괜히 고른 가구 때문에 집이 더 좁아 보여도
취향은 쉽게 못 놓겠다.
그걸 다 빼면
내가 너무 재미없어질 것 같아서.


육아템을 살 때도 그랬다.

남들 다 사는 건 싫었다.

“난 달라”를 속으로 외치며

조금 비싸도, 덜 흔하고,

나만의 감성이 담긴 걸 고르고 싶었다.

남편은 뒷골을 잡겠지만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사실, 취향은 돈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다.

취향을 지키는 건 부지런함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

싫어하는 것까지 해야 한다.

귀에 콩나물을 꽂고 째즈를 들으며

추운 겨울 날, 마당의 낙엽을 쓸어야 하고,

무거운 르꾸르제 냄비를 닦으면서

손목이 삐끗.

‘이거 왜 산 거지’ 후회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다.

나답게, 재밌게 살기 위해서.


가만보면 주변 엄마들도 그렇다.

아이 교복은 당근으로 사면서

지드래곤 굿즈는 웃돈 주고 사는 엄마.

학교 알림장은 까먹어도

BTS 컴백 날짜는 실시간 알림으로 받는 엄마.

“미니멀 라이프!” 외치더니

주방에 프로방스 꽃무늬 앞치마 걸어둔 엄마.


당신이 웃돈 주고 지키는 취향은 무엇일까?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 불리며 살아도

취향만큼은 나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몸은 진짜 아줌마가 되어버렸지만, (주륵)

마음까지 아줌마처럼 펑퍼짐해질 필요 있나!

마흔이 넘은 우리가 이삼십 대들처럼

산뜻하고 쫀쫀할 순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 대신 우리에겐

그녀들이 갖지 못한 쌓인 시간과 취향이 있다.


나는 이런 게 좋더라
나는 이 색이 잘 받더라
여기 분위기가 나랑 어울리지?


이제는

이 정도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어떻게 보면 내가 문제아로 생각되겠지만

그렇대도 나만의 생각이 필요한거야.

(이 노래 나만 아는 거 아니겠지?)


나이 들수록 멋진 사람은

자기 개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나이들어도

빨간 립스틱이 어울리는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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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사치가 아니라 나를 아는 방식이다.
—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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