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흔살의나비 Jan 20. 2024

아직 치유하는 중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브런치북을 열었다. 마음이 분주하다. 지금 내 마음에 떠오르는 말들을 쏟아내고 싶다. 

그래야 한다. 꺼내야 한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도전하고 떨어진 이후 마음에서 브런치 북을 밀어내고 있었다.

다른 계획들로 바쁘긴 했었지만,  밀어내고 회피하고 있었던 게 맞다. 

내가 잘하는 포기, 외면. 그랬었다. 도망갔었다. 

이제 더는 도망가서는 안된다. 못해낼 거 같아도 버거워도 가봐야 한다. 나는 포기한 것이 너무 많다.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보는 것이 중요하다. 

무언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본 것이 있나? 하나도 없다. 정말 하나도 없다. 

자연분만을 포기하지 않고 해낸 것. 내가 성취감을 느낀 유일한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마흔 살 인생에 초라한 성적표다. 그리고 최근 POD 책을 내 힘으로 출판한 것. 그게 나의 잘 해낸 일이라면 잘 해낸 일. 

사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자상하고 헌신적인 남편 덕분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떻게 운 좋게 했더라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살림엔 소질도 없고 참을성도 없고 정신없는, 경제개념도 물 말아먹은 나를 누가 이해해 주고 같이 살아줬을까? 자기 기분 대로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하고, 기분에 도취되어 꿈만 꾸는 ENFP, 거기다 정신없고 실수투성이에 이기적인 ADHD. 나를 누가 받아주고 참아줬을까?

가끔은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버티고 살고 있는 것을 칭찬받고 싶긴 하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버겁다. 나는 단거리 선수. 긴 마라톤 코스를 뛰기에 너무 숨이 차고 버겁다. 언제까지 뛰어야 할지 어떻게 계속해야 할지 방법도 모른다. 배운 적이 없다. 뛰어야 한다고 말해 준 사람도 없다.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가끔 나는 내가 보고 배운 데가 없는 막돼먹은 어른인 거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두서가 없이 헤맨다. 그래도 써야 한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노트북을 펼쳤다. 다시 시작해 보려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나에겐 이것조차 큰 도전이다. 


나는 남편과 많은 대화를 한다. 주로 내가 상담을 받는 쪽이지만. 

오늘 아침 토스트를 먹으며 내가 본 켈리최 님의 유튜브 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핵심가치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나의 핵심가치?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사랑? 행복? 건강? 이런 건 보편적인. 누구나 가치로 삼는 것들 아닌가?

내가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내 행동을 이끄는 이유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나는 최근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도전하기 선수.

웹소설을 써보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또 새로운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 

이게 요즘 나의 핵심적인 가치 라면 가치일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고, 이제 찾은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내가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성공할 수 있다 확언을 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그려보는 것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라면 노력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성공하는 것.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나의 핵심 가치다. 쓰고 보니 또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다. 누군가의 핵심가치는 기여하는 것이라는데, 나는 나밖에 모르는 나의 성장, 나의 성공이다. 그래도 좀 이해해 주시길. 나는 아직 내가 채워질 것이 많아서 나눠야 할 것이 아직  없다. 아직 채워야 하려면 한참은 더 걸릴 것 같다.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의 핵심 가치는 뭐야?

"가족, 정의." 그답다. 내가 한 말이 또 한 번 초라해진다.

남편이 그런 나를 변호해 준다.

"여보는 성장하면서 가족의 소속감을 못 느끼고 살았잖아. "

"응. 사회생활하면서도 못 느꼈지. 자의든 타의든."

"그래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 의무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여보의 성향도 있고. 여보가 말하는 성장, 성공을 위해서 여보는 계속 시도하며 살아온 거 같아. 인정받기 위해서. 아직도 계속되는 중이고."

"예전의 나는 사랑을 위해서 살았던 거 같아. 목마른 사랑을 채우고 싶었어. 그것만이 전부였어. 이제는 여보와 다온이가 채워주니 다른 인정을 받고 싶나 봐."

"응. 우리가 아무리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줘도 그건 디폴트 값이 되어서 밖에서 찾고 있지, 여보는."

"응..."

"나의 핵심가치가 인정이라는 거야?"

"그런 거 같아."

"나... 참 안 됐다. 초라하다. 내 핵심가치가 외부로부터의 인정이라니, 여보는 정의이고, 누구는 기여라는 데 나는 고작 인정이라니. 참... 초라하고 가엽다. 나."

"그래서 나는 늘 여보가 안 됐다고 하잖아. 안쓰럽고 안 됐어."

나는 어느새 흐느끼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인정받고 싶어 목 매달릴까? 나는 왜... 대체... 


칭찬받고 싶었다. 나는 칭찬받으며 자라지 못했다.

칭찬받을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구박받고 학대받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받고 싶은 칭찬과 사랑이 너무 컸었던 걸까? 


엄마가 내가 출판한 "마흔 살의 나비" 책을 이제야 읽어 보셨다.

서로 외면했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무뎌진 가족들 틈에서 무너졌던 나의 이야기. 

나를 많이 원망하시는 중이다.

우리 가족의 치부를 거르지 않고 모두 써놓은 나에 대한 원망. 꽤 많이 상처받으신 듯하다.

네가 아픈 게 순전히 가족 때문이라고? 이걸 다 써서 어쩌려고. 사람을 이렇게 보내버리는 거냐?

수십 통의 카톡이  날아온다. 본인이 아팠으니 나도 아파보라고 독한 말들이 날아온다.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엄마를 아프게 하며 나아졌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며 치유받은 것인가.

엄마는 이제야 아프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 의해 까발려진 자신의 인생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무얼 위해 그 책을 썼을까?

나의 치유를 위해서였다.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을 청소하고 싶어서였다.

엄마가 더럽혔잖아 하고 본인 탓을 해대니 엄마는 억울할만하다.

나는 언제 말끔해지고, 말끔해진 마음 안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까?

더럽혀진 집을 나몰라 하고 밖으로 밖으로 나가지 않을까?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나의 치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치유하며 도전하고 성장하고 성공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그리고 인정받고 싶다.

아직도 인정받고 싶은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남편과 딸, 이제 가족으로 사랑은 채워졌으니, 언젠가 나의 인정욕구도 채워질 날이 오겠지?

그날까지 기록하고 공유해보려 한다.

치유하고 도전하고 성장하고 성공하는 이야기.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게 너무 발랄한 며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