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 활동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단지 취미임에도 잘하지. 못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자하거나 아예 활동을 포기해 버린다. 나 또한 그런 평범한 한국 사람이다. 뭐든 잘하지 못하면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사서 고생한다.
말 그대로 여가 활동이어야 할 취미 생활이 또 다른 직업인 것처럼 스트레스를 준다. 물론 뭐든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취미생활을 유지하려면 가혹한 기준을 세우기보다는 좀 더 나 자신에게 자비로울 필요가 있다.
자비(慈悲; Compassion)라는 말을 풀어보면, ‘자(慈; Maitri)’와 ‘비(悲; Karuna)’로 구분할 수 있다. ‘자’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사랑의 마음이며, ‘비’는 누군가의 괴로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연민의 마음을 뜻한다. 이것을 나에게 적용하면 바로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된다. 즉,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되겠다.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는 그저 달리는 것이 즐거웠는데, 10km 대회를 신청한 후 매일 조금씩 빠르게 뛰려 노력했고, 하프 마라톤을 신청하니 더욱 무리하여 훈련하게 됐다. 결국 대회 날까지 내 실력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비싼 신발을 구매했다. 기술 도핑을 통한 기록 단축을 노려본 것이다. 실제로 꽤 좋은 기록을 냈지만, 충분히 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반발력이 강한 신발을 신고 달려본 적 없는 긴 거리를 달리니, 다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 정강이 앞부분의 미세한 통증이 하루 종일 거슬렸고, 달리기를 하지 못해 울적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후 결심한 것은 강박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주에 2~3회 꾸준히,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는 것이다. 풀 마라톤을 위한 3개월 일정표를 사용해 보기도 했고 나름의 운동 일정을 짜보기도 했지만, 결국 마라톤 출전 전에 25km 이상의 장거리를 뛰어보자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계획을 짜지 않고 그저 내키는 대로 달렸다. 오히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거리여서 기록 단축보다는 완주 자체를 목표로 했기에 가능했던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기록은 5시간 15분으로 아주 느렸지만, 결국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러나 내가 좀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무리했다면 아마도 이번 마라톤을 끝으로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틈날 때마다 달리고 싶어 좀이 쑤시고, 기회가 되면 1~2분이라도 달리고 있다. 잠깐의 느린 달리기도 나에게는 충분히 큰 즐거움을 준다. 잘하는 것도 좋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정말 온전히 즐기는 달리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잠깐의 여유가 더 긴 시간 달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