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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 A Sep 25. 2019

머리는 밀어도 9집은 미루지 말자 / 이소라

이소라는 완벽주의자인가 아니면 그냥 게임중독인가.

16년 입대 직전 본 여섯 번째 봄, 작년 겨울의 콘서트는 가지 못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이소라 노래를 참 많이도 들었다. 그 당시의 내가 뭘 알았다고, 그렇게 구슬픈 멜로디와 처량한 가사들을 밤새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울할 때는 사람을 더욱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사람을 놀랍도록 가라앉히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이다.


 약 5년 전, 내가 수험생이던 시절, 이소라의 8집 '8'이 발매되었다. 선공개한 '난 별'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절절한 발라더 이소라가 아닌 락소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소라표 락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바람이 분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그대에게' 등의 슬픈 코드의 이소라를 훨씬 좋아했기에, 8집은 다소  어렵게 다가왔다. 3집 이후로 락을 하는 이소라의 모습이 보기 어려웠고, 그 이유가 대중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으니까.


8집 앨범커버, 진짜 이렇게 생겼다.

1. 나 Focus (작사: 이소라, 작곡: 임헌일)

2. 좀 멈춰라 사랑아 (작사: 이소라, 작곡: 정준일)

3. 쳐 (작사: 이소라, 작곡: 임헌일)

4. 흘러 All Through The Night (작사: 이소라,

조규찬, 작곡: 이한철)

5. 넌 날 (작사: 이소라, 작곡: 정지찬)

6. 너는 나의 (작사: 이소라, 작곡: 김민규)

7. 난 별 (작사: 이소라, 작곡: 정지찬)

8. 운 듯 (작사: 이소라, 작곡: 토마스쿡)



다수의 사람들이 8집의 곡들을 잘 모를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야자 도중에 처음으로 8집을 들었던 나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특히 '쳐'의 가사는 상당히 쇼킹한데, 그렇게 절절하게 시인같이 가사를 쓰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격렬한 가사를 쓴다는 것이 다소 의외였다. 메이트의 정준일, 임헌일이 각각 작곡한 '좀 멈춰라 사랑아'와 '나 FOCUS'는 확실히 정준일, 임헌일이 지향하는 음악과 닮아있다. 정준일의 'UNDERWATER'나 'ELEPHANT'같은 앨범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 이젠 크게 놀랄 일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정치찬과 토마스쿡같은 경우에는, 워낙 이소라의 음악 노예로 잘 알려져 있는 두 사람이라 이번 9집에도 많이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녀풍의 9집', 선공개곡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8집 발매 이후로, 약 2년 반 만에 9집 선공개곡인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가 발매되었다. 앨범명은 '그녀풍의 9집'. 입대 전, 16년 6월의 공연에서도 9집은 9월쯤 발매될 것이라고 했기에,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7집과 8집 사이의 공백기간이 약 6년이기에, 의심할 법도 했지만, 난 공연장에서 그 말을 이소라의 입을 통해 들었기에, 9집이 곧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군대에서 몰래 구워서 가지고 들어온 CD로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밤새 들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거짓말이었다. 내가 봐왔던, 알고 있던 이소라는 그렇게 쉽게 앨범을 내 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드라마 OST나 싱글, 피처링으로 간간히 음악을 내주었지만, 겨울을 코앞에 두고 발매되었던 '사랑이 아니라 말히지 말아요'만큼의 이야기를 받을 수 없었다.



어느새 그렇게 정규 8집이 발매된 지 5년 하고 몇 달 더 시간이 흘렀다. 7집과 8집 사이의 공백이 어쩌면 너무 빠르게 흘렀고, 19살에 야자를 하면서 8집을 들었던 나는, 전역하고도 한참이 더 지난 후에 24살이 되어 여전히 9집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쯤 되니 내가 이소라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이소라란 사람 자체를 너무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나 못 볼 줄 알았으면, 작년의 콘서트를 꼭 가야만 했다는 생각이 자꾸 밀려온다.


사실 음악을 할 때는 너무나 완벽을 추구하고, 수천번씩 억대의 돈을 들여 녹음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싶기도 하다가, 이 사람이 여전히 '방구석에서 와우를 하느라 음반을 안내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소라가 '와우' 중독자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5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방구석에서 햇빛도 안보며 게임만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사실 그렇게 감성적인 사람이라서 노래하면서도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이, 집만 들어가면 컴퓨터 켤 생각부터 한다는 게 이소라도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4집 '꽃', 타이틀곡은 잘 알려진 '제발'

 가을이 되니 한구석에 밀려있던 이소라의 노래들이 플레이리스트 안에 떠오른다. 'AMEN', 'Tears', '가을 시선', '시시콜콜한 이야기' 등 매년 가을이 찾아오면 수백 번씩 듣던 노래이다. 올해 안에 9집이 나오면 그건 너무나 행복한 일이겠지만, 아니면 뭐 어떤가. 여태껏 잘도 기다려왔고, 음악을 내준다는 것 자체로도 감사한 일인데.  태풍이 닥쳐 흐리고 바람이 부는 날, 작년 가을과 똑같이 4집을 빼곡히 꺼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 벌써 반 바퀴를 넘게 지나 이소라의 계절이 왔다. 매년 가을, 겨울을 지나 봄, 여름을 건넌 게 어느덧 4년이 되어가니 이번 해에도 그냥 기다려 본다, '안 내는 게 아니라 그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와우 업적 점수를 쌓느라 녹음할 시간이 아니라, 토마스쿡, 정지찬이 더 좋은 곡을 안 가져다줘서 앨범이 조금 더 늦어지는 걸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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