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사는 이곳 Prenzlauer Berg 프렌츨라우어 베르그는 Berlin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 내에서도 출산율이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로 다양한 국적의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젊은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젊은 가족이 거주하는 동네이다 보니 자연스레 유치원이나 학교 등의 교육 시설이 많이 몰려 있는데 문제는 항상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반경 1킬로미터를 기준으로 50개가 넘는 킨더가르텐이 자리하고 있지만 기본 1-2년을 기다려야 자리가 날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도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베를린에서는 생후 8주부터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인 6살까지 *Kindergarten 킨더가르텐에 보낼 수 있는데 12개월 전후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며 8월에 개학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지내는 것이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는 우려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사회성과 독립성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독일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나와 마리 역시 이도를 킨더가르텐에 보내는 시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한없이 사랑스러운 우리의 첫아들이지만 늦어도 육아휴직이 끝나기 전에는 킨더가르텐에 보내야만 한다. 보통 킨더가르텐 적응기간을 4주 정도로 예상하니 14개월의 유급 육아휴직이 끝나기 바로 전까지 이도와 함께 보내고 첫돌이 되는 날 킨더가르텐에 보내기로 했다. 물론 운이 아주 좋아서 원하는 곳에 자리가 난다는 가정하에...
* 엄밀히 따지자면 Kindergarten 킨더가르텐은 3살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6살까지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의 개념이고 생후 8주부터 3살까지의 아이를 돌봐주는 곳은 Kinderkrippe 킨더크리페라고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둘을 합쳐 Kindergarten 킨더가르텐 혹은 Kita 키타라고 불리며 함께 운영되는 곳이 많다.
킨더가르텐에 보내기 위해서는 절차에 따라 관련 서류(‘관련 서류’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지만 독일의 모든 행정 업무는 어마어마한 서류와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를 구비해 관할 구청에 가서 Kita Gutschein 키타 궅샤인이라 불리는 일종의 유치원 쿠폰을 신청해야 한다. 키타 궅샤인은 부모의 직업 유무, 경제적인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모두 무직이거나 한 명만 경제생활을 할 경우에는 4-5시간짜리 쿠폰이 발행되며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최대 9시간짜리 쿠폰이 발행된다. 발행된 쿠폰을 가지고 거주지 관할 킨더가르텐에 지원하면 되는데 바로 입학이 가능한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보통 3-4군데 이상의 킨더가르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독일에서 킨더가르텐에 보내는 일은 특별히 복잡하지 않은 듯하지만 실상은 치열하다! 특히 베를린 하고도 프렌츨라우어 베르그는 킨더가르텐 보내기 어려운 곳으로 악명이 높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주해 오는 젊은 가족들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출산 후 마리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뒤 우린 관할 구청에서 5시간짜리 키타 궅샤인을 발급받아 집 근처의 킨더가르텐으로 향했다. 이도가 태어나기 전부터 수십 곳을 둘러본 터라 마음에 드는 곳을 4-5곳 정도로 추려서 방문상담을 시작했는데 킨더가르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1주일에 하루,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방문상담이 허용되어서 방문상담예약을 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킨더가르텐의 시설을 둘러보고 어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지 설명을 들은 후 필요한 서류 작성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예상대로 기약 없는 대기자 명단에 이도의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이도를 대기자 명단에 올린 후 킨더가르텐을 나설 때마다 우리의 한숨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지만 나는 항상 마리에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킨더가르텐에 이도가 다니게 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너무 쉽게 일이 해결돼도 재미없잖아.”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게 되어있어. 난 믿어.”
사실 나 역시 그 현실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한숨만 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기다림으로 시간이 채워지면서 난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었고 가장 원하는 킨더가르텐을 지나갈 때면 주문처럼 이도에게 말을 건넸다.
“ 이도야, 여기가 네가 다니게 될 킨더가르텐인데 어떻게 생각해? 아빠랑 엄마는 이 곳이 가장 맘에 드는데. 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마리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순간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도의 이름으로, 이도의 시점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어떠한 이유로 이 곳 킨더가르텐에 다니고 싶은지 편지를 써서 보내는 거였다. 유치할 수도,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기에 실행에 옮겼다. 몇 달 동안 답장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먼 나라, 한국에 가서도 이국적인 풍경이 담긴 엽서를 보냈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손수 만든 카드를 보냈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흐르고 있었다.
“오빠~ 오빠!”
“왜, 무슨 일이야?”
“믿을 수 없어!”
“뭐가?”
“킨더가르텐,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킨더가르텐에서 연락이 왔어. 이도 자리가 났대!”
“...”
잠시 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가 흐르는 눈물을 삼키고 킨더가르텐에서 보낸 이메일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간절한 바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동네에 사는 부모라면 대부분이 보내고 싶어 할 그 킨더가르텐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대기자 명단에 올려져 있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문득 그 킨더가르텐을 처음 지나갔던 날이 떠올랐다. 그곳을 보자마자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나는 막연하게 그곳에 이도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믿었으며 간절히 원했다. 이도는 그렇게 그 킨더가르텐에 다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