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아팠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나이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면 좀 나아지려나 하고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화기 배터리가 갑자기 방전되어 버려 집에 돌아올 때까지 연락을 할 수 없다는 마리의 이메일을 읽고 충전 케이블도 그녀의 회사로 가져다주었다. 환하게 웃으며 내 볼에 뽀뽀를 한 후 일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다시 걸었지만 몸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군만두에 흔히 빼갈이라 불리는 백주를 몇 잔 걸치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면 몸이 좀 가벼워지려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놀려보지만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난감한 상황이다.
군만두에 흔히 빼갈이라 불리는 백주를 몇 잔 걸치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면..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엔 바람이 찼고 점점 무거워지는 몸이 힘겨워 우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시아 슈퍼마켓에 들러 냉동만두와 한국에선 쳐다보지도 않던 차례용 청주 한 병을 샀다. 자그마치 1.8리터나 되는 청주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20-30분을 걸을 자신이 없어 트램에 몸을 싣는다. 지나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허기가 밀려왔다.
따뜻한 실내에 들어서자 급속한 기온 차이로 갑자기 몸이 달아올랐다. 몇 마리의 거위가 들어있는지 모를 다운재킷을 서둘러 벗어던지고 냉동만두를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올린다. 그리곤 커다란 유리병에서 조심스레 청주를 따른다. 투명한 물컵 한가득. 호흡을 멈추고 살짝 목을 축인 후 다시 숨을 내쉬자 적당한 알코올 향이 풍겼다. 바로 옆에선 지글지글 만두 지져지는 소리가 허기진 몸을 재촉했다. 몇 달 전에 담가 놓은 깍두기를 조그만 그릇에 소복이 담고 맨 위에 있는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시다. 청주를 한 모금 더 들이키고 프라이팬에 물을 조금 부은 후 키친타월로 덮는다. 바닥은 바삭하고 나머지는 촉촉한 일본식 교자만두처럼 굽기 위해서다. 다 됐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던 군만두를 아쉬운 대로 사케 맛이 나는 싸구려 차례주를 곁들여 즐겼다. 도쿄에 머무를 때 즐겨먹던 야키교자와 맛을 비교하기엔 무리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난 이렇게 내 고향 서울과 반대편에 위치한 베를린에서 감기몸살을 이겨낸다. 흔히들 감기 기운이 있을 때에는 시뻘건 고춧가루로 덮인 얼큰한 국물과 소주를 떠올리겠지만 내 입맛과는 거리가 멀다. 하여간 요즘 냉동만두는 제법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