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슨일 이었어? 너 수상해?"
"뭐가.."
아침 출근을 하자 마자 지영에게 어제 일을 묻는 혜진이다.
"몰라.. 그렇게 됐어..."
퇴근 후 갑자기 지영이 혜진의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한참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간다면서 가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혜진은 이 상황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말을 해봐..."
"야...귀찮아.. 그냥 커피나 대충 마시고 내려가자"
회사 옥상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피곤함이 역력한 지영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어서 그런가.. 제법 바람이 쌀쌀하다"
지영이 커피 한모금을 다시 입에 댄다.
"젠장... 인생이 점점 꼬여만 간다"
혜진도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머리가 복잡하다.
어제 지영은 그래서는 안됐다. 하지만 자신을 잡고 흐느끼는 명훈을 매몰차게 내칠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곳은 회사였다. 어떻게든 명훈을 달래야 했다.
흐느끼는 명훈을 그냥 안아 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품에 안겨 울고 있던 명훈의 얼굴이 지영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갈구하듯 지영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항상 그런식이였다. 명훈에게 지영은 연인이기도 했지만, 어린 아이를 돌보는 엄마이기도 했다.
명훈 또한 자신을 감싸주고 안아주고,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그런 지영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영은 항상 자신의 옆에서 뒤에서 명훈만을 바라 봐 줄꺼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잃어버린 듯한 눈으로 지영을 바라보는 명훈을 안아주었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 지영이다.
"미친년...'
"네? 이대리님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아....아니야..."
지영의 혼잣말이 너무 컸나보다.
사내 메신저에 불이 켜진다.
"비상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볼까?"
명훈이다.
"미친거 아니야? 지금 누가 보면 어쩔라고..나한테 메신저를 해..."
"왜..어때? 우리 매일 만나던데...거기로 와..."
명훈의 글에서 신나 있음이 느껴진다. 지영은 명훈의 텍스트 만으로도 그 기분을 알 수 있었다.
명훈은 지금 엄청 신나 있다.
"아...미친년...미친년"
명훈이 비상 엘리베이터 계단에 앉아 있다.
옆에는 평소 지영이 좋아하는 베이글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아침 먹었어? 이거 먹으라고.."
"이거 상황이 역전됐다.. 항상 내가 챙긴건데...."
어색하다. 항상 지영이 명훈의 아침을 비상 엘리베이터 계단에서 챙겨주었다.
음식을 하는데는 워낙 재주가 없어서 기껏해야 샌드위치나 베이글 따위 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나름 행복했다
아침 출근시간에 몰래 그렇게 비상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가끔은 키스와 농도 짙은 스킨쉽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이 낯설다.
어색함을 느끼는 지영이다.
'오늘 저녁에 뭐해?'
"야근... 그리고.. 또 야근..."
"그래? 나도 야근 할거 같은데.. 데려다 줄께.. 너무 늦으면 저녁 먹고 들어갈까?"
속사포 처럼 말을 이어가는 명훈에게 지영이 말했다.
"오늘은 안돼.."
"아...그래... "
어제 보다는 조금 단단해진 지영의 표정에 또 시무룩 해지는 명훈이다.
"오빠.. 좀 천천히 하자..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나한테 시간을 줘"
"그래... 나 서두르지 않을께.. 천천히 하자... 근데.. 너 있을곳을 마련해야지..."
"..................................................."
"오피스텔이나 작은 원룸이라도 알아봐 줄께..."
"아! 진짜 이렇게 되는건가? 그럴 필요 없어..그냥 혜진이네 있을께..."
지영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사무실이야.. 내려가야해.."
뒤돌아 가는 지영을 뒤에서 안는 명훈이 말한다.
"나 버리지 마..."
"그런 소리 이제 지겨워..이제 그만해.."
지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명훈이 혼자말을 한다.
"그럴꺼야..넌 나를 버리지 못할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