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믿어주지 그랬어.
나는 교회를 다닌다.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가지 못했지만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격주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샘터원들과 만나 각자의 기도 제목을 나눴다. 내 기도 제목 대부분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그중 8할이 자식들과 관련된 기도다. 그만큼 부모에게 자식 양육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관련 경험담이나 조언을 들으며 답을 찾고자 노력한다. 아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왜 그 부분에서 예민하게 구는지 답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첫째 아이는 엄마의 사랑 크기가 큰 아이다. 기본적으로 엄마에게 받고자 하는 애정 그릇의 크기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커서 모든 것을 엄마와 함께 하려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언니들에게 털어놨다.
“시은이가 모든 것을 엄마랑만 하려해. 양치질도 아빠랑 하라고 하면 난리 치고 예배도 나 없으면 들어가지 않으려 하니 걱정이야. 여기 다닌 지가 몇 년인데...” (큰 아이는 9개월부터 다닌 교회인데도 유치부 예배 참석할 때마다 내게서 떨어지기를 거부했다. 뭘 몰랐던 3살 때는 오히려 1등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동생이 생긴 뒤로는 7세 때까지 혼자 들어가지 않았다.)
“네가 너무 잘해줘서 그래. 나 같았으면 등짝 한 대 때렸을 거야.” 한 언니가 농담조로 말했다.
“그냥... 나도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하는데 아이가 싫어하는 데 억지로 시키거나 협박하는 건 싫어서. 난 우리 엄마가 엄했는데 커보니까 싫더라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엄마랑 비슷한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속으로 '아 이거 나도 어렸을 때 싫어했었던 건데. 애는 아직 아가일뿐인데 내가 날카롭게 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
"예를 들면?"
"음....... 아이 친구 엄마랑 식당에 가서 음식을 기다리는데 그 집 아이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의자에서 작은 장난도 치고 다리도 흔드는 행동을 하는데 나는 아이에게 그런 것을 일절 못하게 하고 있더라고. (당시 큰 아이의 나이는 6살이었다. ) 어른처럼 얌전히 있기를 바라는 건지 계속 아이에게 "기다려. 식당에서 그러면 안돼" 이 말만 반복하고 있더라고. 순간 '아! 어릴 때 우리 엄마 모습이 이랬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혼란스럽겠네. 어렸을 때 느꼈던 니 감정을 아이에게 전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언니들 중 심리 상담 일을 하는 언니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더니 답을 찾아주었다.
맞다. 그거였다.
특히 아이를 훈육해야 할 때 나를 괴롭히던 상반된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주범이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엄마가 내게 해 준만큼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만큼 엄마는 우리에게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엄마는 엄했고 강압적이었다.
초등학생 때 준비물을 빠트리고 와서 전화를 걸어 집에 계신 엄마에게 필요한 물품을 갖다 달라고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아마 4학년 때인가? 더 어렸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때 엄마는 너의 실수로 빠트린 것이니 다시 집으로 와서 준비물을 챙겨가든지 선생님에게 사실대로 말해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 뒤 선생님께 혼났는지 별일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엄마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사진을 찍어둔 것처럼 선명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엄마의 교육 방식은 이해가 되지만 그날 내 작은 실수를 감싸주었어도 문제없이 자랐을 것이다. 내가 엇나갈까 봐 하는 걱정보다 나를 좀 더 믿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몸도 약한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일하며 우리를 돌보느라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지금 내가 부리는 것은 투정에 불과한 것이고 늘 엄마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머리로는.
그때 다친 마음은 어쩌다 발견한 사진처럼 잘 지내고 있는 내 일상을 건드리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