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중요성
산후조리원에서 2주, 집으로 돌아와서는 산후도우미와 2주를 지내는 동안 나는 아이에게 쩔쩔맸다. 신생아는 하루 종일 잔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렇게 잠이 없는 신생아는 처음 본다며 자기 있을 때 잠이라도 더 자라고 방으로 등을 떠밀던 산후 도우미 이모의 보살핌이 끝난 다음 몇 일도 버티지 못하고 친정 엄마에게 향했다.
엄마는 태어난 지 한 달 된 손녀를 보면서 나를 낳았던 그때를 자주 떠올리셨다.
난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세브란스 소아병원에 입원해서 100일이 되어 퇴원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수유패드, 일회용 기저귀 등이 없던 시절이니 지금보다 육아가 고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출산 후 예전 몸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달 이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데 엄마는 최소한의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병원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나를 돌본 것이다.
엄마는 60대인 지금도 163cm에 55kg를 넘긴 적이 없는 마른 체형이다. 조금만 살이 쪄도 움직이기 힘들다며 바로 식단 관리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내가 입원했을 당시 엄마의 몸무게는 48kg이었다고 한다. 수유패드도 없던 시대라 젖이 불어 속 옷 안 손수건이 젖으면 급하게 병원 화장실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는 일고 유축기도 없어 뭉쳐있는 모유를 손으로 짜고 옷을 갈아입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손, 발에 매일 링거를 꽂아 더 이상 바늘 꽂을 수 있는 혈관을 찾지 못해 이마에 링거 바늘을 꽂고 있는 나를 간호하며 친정 엄마는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거른 채 지냈다고 한다. 덕분에 천 기저귀 배달 심부름하던 이모까지 고생시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모한테 잘해. 하루에 두 번 매일 병원에 기저귀, 니 옷 챙겨서 갖다 준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알았어."
"진짜 너 태어나자마자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을 때 아빠는 퇴근 후 술 한잔 걸치고 너 이뻐하기만 하지 뭐 도와주는 것도 없고."
"알았어."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라면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지겹기만 했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게 자식이라는데. 나도 내 자식 낳으면 그만큼 하겠지.' 하며 배은망덕한 말은 속으로 삼켰던 나. 하지만 내 배 갈라서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엄마가 나에게 쏟았던 정성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니었다.
엄마가 자주 아픈 이유는 아마도 출산 후 나를 간호하느라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 아닐까? 큰 병원에 입원할 만큼 아팠던 내가 건강하게 한 사람의 몫을 해가며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어쩜 그 시절의 엄마 건강을 받은 덕분이지 싶다. 이따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 "감사하다고." 그런 말 하면 엄마가 답하겠지?
"너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