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도, 아이 키우는 것도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 명절 연휴가 길 때면 시댁 갔다가 외갓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들과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떨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시댁 이야기. 그 당시 아들을 결혼시킨 지 얼마 안 된 이모의 이야기를 듣던 중 '나는 시어머님께 생신, 안부 전화만 가끔 하지 나머지는 다 신랑이랑 연락하셔.'란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던 이모는 대번에 내게 '그러면 안돼. 어머님에게 연락 자주 해야지.'라고 했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하시지. 근데 대부분 신랑에게 말하셔. 아들이 더 편하시지. 며느리보다는."
"그러면 안돼. 며느리가 먼저 전화드리고 자주 연락해야지."
"왜?"
"먼저 전화해서 필요한 것 없으신지 물어보고 살갑게 굴어."
"이모 아들은 장모님에게 전화 자주 해? 이모는 전화 먼저 자주 드리라고 말해?"
괜히 발끈했다. 나도 모르게 이모에게 뾰족하게 말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진다.)
이모는 선 뜻 답을 못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손자 육아도 도와주고 며느리에게 제사나 명절의 고됨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이모도 '며느리는 딸처럼'이라는 모순된 단어를 당연시 여기고 있는 어른이었다.
우리 집 친정은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내 결혼 생활과 육아에 참견을 많이 하시는 편이다. 지금은 아이들도 크고 내가 대번에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받아치니 참견의 수가 확 줄었지만 아이들이 어려 전업 육아맘으로 살 때면 '애정'이라는 명목 하에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특히 친정아빠는 늘 '시댁에 잘해라.', '바깥일이 힘든 거다. 김서방에게 잘해라.' 등등 시댁과 관련된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다. 누구는 회사 생활 안 해봤나?
'너 애 볼래? 나가서 콩밭 맬래?'라는 물음에 다들 콩밭 맨다고 답하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영아와 유아들의 육아는 힘들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닐 때이다. 육아하느라 밤새 숙면 취해본 적도 없고 화장실도 늘 급하게 다녀와야 한다. 몇 년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만큼 에너지 전부를 아이들에게 쏟고 있는데 퇴근하고 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신랑 편만 들고 있는 아빠의 말에 마음이 뒤틀렸다.
둘째가 4살이 되자마자 오전에는 학교 가서 수업하고 오후에는 아이들 돌보는 등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그놈의 '바깥일'을 할 때 조차도 아빠는 '그래도 너보다는 김서방이 더 힘들지.'라는 말을 습관처럼 꺼내셨고 나는 아빠에게 마음 기대기를 포기해버렸다.
친정엄마는 먹거리와 관련해 조언이 심했고 동생은 미디어를 최대한 적게 보여주는 내게 너무 엄격하다고 자주 뭐라 했다.
사실 먹거리에 대한 엄마의 참견은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니 수용해야 하는데 요리 솜씨가 좋지 못하고 손이 느린 탓에 내게 너무 버거운 일이다. 손 빠르고 요리 잘하는 엄마는 잠을 줄여가며 내 삼시 세 끼를 영양소 챙겨가며 늘 풍성하게 차려주셨는데 흰 밥에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으로 아이들 밥을 차려주는 내가 얼마나 못마땅해 보이실지는 충분이 이해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노력해도 늘지 않는 나의 음식 솜씨를. 만들어줘도 먹지 않는 편식 심한 아이들에게 한 시간 넘게 서서 식사 한 끼를 준비했는데 아이들의 '먹기 싫다.'라는 말 한마디에 속상함 가득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 찢어진 뱁새처럼 에너지가 고갈되어 짜증과 예민함을 아이들에게 풀어내는 나의 모습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음식들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포함해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되도록 시간과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도록 조정했다. 엄마의 잔소리는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나를 위해
말하고 싶다. 나를 위해 전하는 말인 줄 알지만 그냥 생각으로만 멈춰달라고.
"제가 알아서 할게요."
결혼 생활도 육아도.
누구보다 내가 잘해나가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