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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Apr 28. 2022

대화가 사라지는 맞벌이 부부

칼날이 점점 예민해진다.

2월 말 찾아온 코로나의 여파인지 3,4월은 신체적으로 힘들었다.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출퇴근하고 육아하니 기침은 여전히 잦고 피로는 급격하게 쌓여만 갔다. 몸이 버거우니 마음의 여유도 함께 사라졌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덕에 칼퇴 후 서둘러 집에 오면 5시가 조금 넘는 시간은 남들에 비해 이른 시간이지만 이때부터 워킹맘의 육아라는 2차 출근이 시작된다.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아이들은 알아서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나는 집에서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저녁을 준비해 딸내미들을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겁 많은 자매는 엄마를 놔주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아이는 학원을 모두 거부하고 같은 아파트 동에 있는 영어 학원 하나만 다니니 끝나기만 하면 엄마를 찾는다. 그에 반해 올해 입학한 둘째는 엄마의 보호 아래 놀이터에서 신나게 논다. 둘 다 엄마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함께 놀이터에서 놀면 서로 의지도 되고 혼자 노는 것보다 훨씬 좋을 텐데 집에서 매일 부대끼는 자매들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튼 퇴근 후 집에서 맘 편히 쉬거나 집안 일도 하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둘째 친구 엄마들과 붙박이로 있다가 아이를 반강제로 설득해 6시 반 정도에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재출근하는 시간. 인생 2 회차라는 말처럼 출근 2회 차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된다. 피곤하다 보니 주 1회는 분식 또는 배달음식을 찾게 된다. 나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아이들과 좀 오래 대화하며 밥을 먹고 싶어 맥주를 꺼내는 날도 있다. 알코올 섭취 덕분에 맘과 몸이 풀릴지언정 다 먹은 밥상은 치워야 하고 씻기 귀찮아하는 아이들을 반 협박 반 설득을 가장한 잔소리를 반복해 씻도록 한다. 목욕하고 나온 아이들 머리를 말리면서도 눈은 지저분한 거실 바닥을 스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정리정돈은 못해도 바닥은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머릿속에는 큰 아이 공부도 봐줘야 하고 설거지 마무리도 해야 하고 바닥 청소도 해야 하지만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간. 애들은 재워야 하는데 아직도 할 일은 태산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언성도 높아지려 한다. 아직 엄마의 분노 게이지를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은 여전히 신났다. 읽은 책들을 바닥에 전시하 듯 펼쳐 놓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시작하려 할 때 나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때 신랑이 집에 도착한다.


  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놀이터도 없고 건물과 차만 가득한 동네에서 키우기 싫었다. 신랑 직장에서 멀어지더라도 녹지가 있고 놀이터가 많은 곳에 가서 뛰어놀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을 벗어났다. 아이가 입학할 나이가 되면 다시 서울로 갈 생각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현재 신랑의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은 3시간. 그것도 지옥철. 퇴근 시간에는 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해서 퇴근 후 신랑은 녹초가 되어 온다. 가뜩이나 무릎도 좋지 않으니 종일 서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지하철 칸에 갇혀 집으로 온 신랑의 컨디션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나 역시도 에너지가 고갈되어 신랑의 지친 이유를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마음으로는 인정하지 못한다.

저녁을 챙겨 먹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신랑이 미웠다. 나는 아이들 챙기랴 집안일 챙기랴 쉬지를 못하는데 퇴근만 하면 퓨즈가 끊어진 로봇처럼 말도 없이 TV와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모습이 얄미웠다. 밥 먹고 한 시간 정도 쉬었으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든지 집안일을 도와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일일이 잔소리하듯 시키는 것도 한두 번이다. 계속 반복되다 보면 차라리 입을 다물게 된다.


거실 바닥에 다 말린 빨랫감들을 펼쳐 놓았다. 나는 그 앞에 앉았다. 그때 시각이 밤 열 시 반. 엄마인 내가 안 자니 아이들 역시 쌩쌩하다.


"나도 퇴근하면 좀 쉬고 싶다." 빨래를 개키면서 신랑에게 말했다.

퇴근 후 쉬지 못하고 아이들 챙기고 집안 일을 한 것에 대해 '고생했다'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신랑은  

"그럼 너도 쉬어."라고 답했다.


대번에 서운함과 욱함이 폭발했다.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힘들다고 하니 쉬라고 답한 건데 힘들어서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나는 신랑의 답변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힘들다고 쉬면 누가 애들 챙기고 집안일을 하지?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거야?'

이런 생각과 동시에 마음이 확 상했다.


깨끗한 집에서 쉬고 싶다. 그러려면 해야만 하는 집안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같이 출근 준비하면서 왜 나만 바쁜지. 아침을 차려 놓고서는 정작 나는 먹지 못하고 배고파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더 이상 신랑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등지고 앉아 빨랫감만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할 때 자기처럼 근무 시간이 길게 일하면 집안일은 반반 나눠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는 신랑은 현실에서는 없었다.  물론 안다. 신랑도 얼마나 힘들고 지칠지. 하지만 그러면 나는?


바빠지는 만큼 서로에게 예민해지는 우리는 며칠간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않았다.

신랑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내가 화가 나서 단답형의 말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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