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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Nov 03. 2023

두 번째 경력 단절

비교과 기간제 교사는 을도 못됩니다.

  남편은 하반기부터 MBA를 시작했다. 직장이 멀어 평소에도 지옥철로 힘들어했는데 요즘은 주 3회 대학원 수업까지 더해져 한층 더 바빠졌다. 토요일에도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얼마 전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수업 때문인지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한참 뒤 남편과 통화가 되었다.


"수업 늦게 끝났나 보네. 폰이 꺼져있길래"

"어. 배터리가 없어서. 수업 시간에 폰으로 내내 검색하다 보니까."

"회사야?"(일이 많아 수업 후 회사에 가서 일하다 온다고 말했던 신랑)

"아직. 사람들이랑 밥 먹고 있어. 이제 회사로 넘어가야지."

"알았어.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신랑과 통화를 마치고 난 뒤 나의 감정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피곤하다는 말과 달리 신랑의 목소리는 밝았다.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만들고 실력을 키우는 그가 부러웠다. 난 멈춰있는데 신랑은 성장하는 것 같아서.

나름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자꾸 넘지 못할 큰 벽이 생긴다. 커리어에, 건강에 뭐든 쭉 나가는 것이 없게 느껴진다.


큰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냈다. 그런데 실적 악화를 이유로 회사에서 교육 사업부를 정리할 예정이라며 휴직 들어간 지 일주일 만에 내 자리는 사라졌다. 출산 예정일 2주 전까지 악착같이 출근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두 아이의 엄마로만 6년을 살다가 구청에서 '독서토론리더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에게 좀 더 좋은 질문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였는데 욕심이 났다. 자격증 시험을 보고 지원하여 독서토론 수업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 소속이 되어 단절되었던 경력을 잇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학생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책으로 수업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 책육아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 책에 둘러 쌓여 살았기에 익숙했고 오랜만에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1,2교시 수업을 하기 위해 아이들과 전쟁 같은 아침 시간을 치러도 뿌듯했다. 


그렇게 다시 출발선에 섰던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능력을 키워 프리랜서로 독립하여 혼자 학교 강의를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갖춰졌다. 독서 토론 수업뿐 아니라 전공을 살린 교육 연극 수업과 시사토론 수업까지 강의 영역을 넓혔다. 오전 오후 수업이 꽉 차 몸은 바쁘지만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 수면 시간이 줄어도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다 팬데믹이 찾아왔고 예정된 수업은 취소되거나 축소되었다. 일이 없는 프리랜서는 백수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왜냐하면 모두 다 힘든 시기였으니 불안함에서 오는 어려움은 있었으나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때라고 나를 다독였다.(아이들까지 집콕했던 탓에 공부만 하기는 어려웠지만)


전부터 생각만 했던 사서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프리랜서로 학교에서 수업할 때 대부분 단발성의 수업만 하게 된다. 길어야 8차시 또는 한 학기 수업뿐이라 학생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즐거움을 깨달을 쯤이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하는 게 안타까워 학교 도서관 근무를 목표로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정사서 자격(문헌정보학사)을 취득했다.


운이 좋게 바로 사서교사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교생 실습 기간에 수업 후 울었던 나의 과거의 다짐과 다르게 난 다시 학교로 출근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오래전부터 학생들의 독서 교육을 위해 모든 학교에 사서 교사를 파견할 수 있도록 타 교과 교사가 사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사서 교사로 근무가 가능했다. 전국적으로 사서교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몇 해 동안 사서교사를 구하지 못했던 학교라 선생님 몇 분이 임시로 도서관 업무를 맡으셨던 터라 도서관 내부는 쌓인 책들로 어수선했다. 들어가자마자 수북이 쌓인 책들을 정리하고 쌓인 먼지들을 싹 치웠다. 두 달 동안은 내가 사서선생님인지 이사 업체 직원인지 헷갈릴 만큼 도서관 정비에 몰두했다. 파스를 붙이고 손목 보호대를 한 상태로 어떤 책이 아이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을지 매일같이 고민했다. 최대한 학생들이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도록 거리두기 수칙 안에서 매달 행사를 기획했고 월별 주제에 맞게 북큐레이션을 진행했다.


도서관 단골 학생이 늘어나면서 '선생님 책 골라주세요.'라는 요청이 늘어났다. 만화책만 보던 학생이 관련 주제의 줄글책을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재밌게 읽었던 책의 시리즈를 사달라고 조르는 학생을 보면 꼭 내 자식이 책을 좋아하는 것처럼 뿌듯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유치원 교무 부장님께 연락해 책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해하지 못할 공문이 왔다.


현재 상치교사(전공 교과와 다른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로 근무하는 사서교사는 23년도부터 다른 학교로 지원이 불가하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현재 근무하는 학교 역시 23년도에는 1,2차 공고에는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 즉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지원자가 없어 3차 공고가 나올 때까지 지원할 수 없으며 사서 교직을 가진 사람이 지원을 하면 난 응시 자격도 잃는다는 이야기였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또 한 번 나는 좌절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69476

사서교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까지 양보한다 쳐도 아예 응시 자격까지 박탈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문해력이 중요하다면서 정작 독서 전문 교육 인력은 내치고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독서 교육을 대체하게 되었다.)


겨울 방학 때 도서 정리를 하는데 교감선생님께서 도서관으로 찾아와 조심스럽게 입을 떼셨다. 


"선생님. 어제 원서를 내신 분이 계세요."

"아...... 네. 그렇게 되었군요."

"저도 선생님이 계속 계셨으면 좋겠는데. 참......"

"네 알겠습니다."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온 공문은 교장, 교감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경력 단절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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