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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May 11. 2023

삶과 죽음 그것이 문제로다.

Unsplash의 Szilvia Basso

어제 길가에 마주친 5 세정 보이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작은 자전거 타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아이는 균을 잃고 넘어졌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달려와서 보니 아이는 금세 울음을 멈추었다. 삶과 죽음은 작은 순간에도 빈번히 일어난다. 단지 크고 작은 문제일 뿐이다.


삶은 무상으로 주어진 선물과 같다. 어린 시절에는 삶은 영원할 것만 같고, 죽음이라는 단어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이나 학생 때는 삶은 축제다. 인생은 즐기는 것이고, 기쁜 것을 몸소 체험한다. 내일 일어나면, 놀거리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혼자서 야구공을 던지거나, 친구와 농구를 하거나, 음식을 나누거나, 술을 한잔하다던지, 좋아하는 이성이 생긴다던지, 모르는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던지 등 말이다. 삶은 축제였다. 혼자서 있든, 모르는 사람과 설렘을 갖고 만남을 갔든, 익숙한 친구와 있든 말이다. 그 자체 만으로도 행복했다.


언젠가부터는 삶에는 불행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됐다. 20대 초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삶은 영원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 이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삶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그 시기 취업의 문턱에 섰다. 막상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내 생명이 없어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 존재가 없어지게 되면 죽음이라는 체험도 맛보게 된다. 삶은 어찌 보면 누군가 해준 음식을 먹고, 차려준 밥상에서 살아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말이 그렇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다. 어린 시절 삶은 축제이고 기쁨이며, 인생은 즐거운 것이었다. 내일 일어나면 지겨운 공부를 해야 하지만, 놀거리가 있을 생각에 행복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타인의 죽음이든, 내 삶에서 내가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직. 간접적인 죽음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삶은 허무하고, 외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허무주의로 빠진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싶다. 사실 내 인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 상대는 상대 얘기를 하는 것뿐이고, 그것이 내 인생에 크게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한다. 나는 나로서 삶을 기쁘게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다. 내 삶이 주어지는 한 나와 더불어 함께 하는 이가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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