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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영어 면접에서 실패했던 이유

by 빈센트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총 4번의 인턴십을 경험했다. 미국에서는 보통 3학년 여름 인턴십이 풀타임 채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전에 최소 2-3개의 인턴십 경험을 쌓아야 경쟁력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영어 면접을 봤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내가 찾은 준비 방법은 딱 하나였다.


'암기'


면접에서 나올 법한 모든 질문을 리스트업했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서 전부 외웠다. 평생 정답이 있는 교육을 받아온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답변은 물론이고, 말할 때의 톤, 심지어 아이스브레이킹 질문들까지도 완벽히 암기했다.


면접도 정답이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접 준비 = 정답을 모두 숙지하고 암기 하는 것' 이라고 믿었다.


암기한 답변으로 무장한 채, 인터뷰에 들어가면 마치 수능 시험을 치르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이 방식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면접을 1-2번만 보고 끝나는 회사에서는 질문이 내가 준비한 범위에서 나오면 100% 완벽하게 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닥은 금방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3학년 여름 인턴십. 운 좋게 미국 대형 금융사의 final interview까지 올라갔다. 모든 것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암기하고 준비했다. 면접은 월스트리트의 고층 건물에서 진행되었고, Senior 두 분이 앉아 있는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처음엔 예상대로 면접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왔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이 건물의 전체 월세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Brain teaser 질문이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런 질문은 생각도 못 했다. 머리가 하얘졌고, 그 순간부터 어버버 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뭔가 눈치를 채셨는지 하나의 질문을 더 던지셨다.


"이전의 면접관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당신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정보 하나만 말해주세요"


준비된 답변밖에 없던 나는 이 두 가지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 면접의 흐름은 엉망이 되었다. 결국 그 면접은 실패로 끝났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암기는 기본기를 탄탄히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면접은 정답을 찾는 시험이 아니라 면접관과의 대화라는 사실을 그때의 실패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언어가 영어든 한국어든 똑같다. 면접관은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를 더 잘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


최근에 읽고 있는 '면접의 질문들' 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접했다. 당장 이직을 하거나 면접을 앞둔 상황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씩 정의해보고 있다. 링글 수업에서도 의도적으로 나를 소개하거나, 나의 이야기를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질문을 활용하며 연습 중이다.


토씨 하나까지 암기하지 않더라도, 누구 앞에서든 나 자신에 대해 당당히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영어든 한국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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