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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미드를 10번 돌려보면 보이는 것들

by 빈센트

Friends

The Office
How I Met Your Mother

처음부터 끝까지, 열 번 넘게 돌려본 미드들이다.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전체 시즌을 통째로 반복했다.

처음엔 그냥 재미있어서 보기 시작했다.
현실로부터 잠시 피신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대사는 외울 만큼 익숙해졌고,
등장인물의 말투와 감정 변화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의 콘텐츠를 열 번 이상 보게 되면
매번 다른 것이 보인다. 점점 더 깊게 보게 된다.

처음 한두 번은 스토리를 따라가고,
세 번째쯤엔 감정과 말투의 뉘앙스가 눈에 들어온다.
다섯 번째쯤엔 배경 속 농담과 상징이 보이고,
열 번째가 되면 전체 구조와 리듬이 느껴진다.

어릴 땐 영어 공부를 '외우는 것' 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드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영어는 외우는 게 아니라 몸에 익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막 없이 들으면 막막했던 대사도,
두 번, 세 번, 열 번을 넘기면 점점 그냥 '들리는 말'이 된다.
이건 암기의 문제가 아니라 노출의 문제다.
익숙한 장면에 충분히 오래, 반복적으로 노출되었기에 생긴 변화다.

이제는 어떤 단어나 문장을 들으면
자동으로 시트콤 속 장면이 떠오르고,
그 캐릭터의 말투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그런 점에서 시트콤은 영어 공부에 최적화된 장르다.
문장은 짧고, 대화가 중심이며,
실생활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부를 위한 영어는 재미없고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것.

반면, 재밌는 영어는 자발적으로 반복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다시 보고 싶고, 다시 보면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일어난다.

애써 계획하지 않아도,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듣고 따라 하며 웃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 있고, 감각이 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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