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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기장 너무 믿지 말고 안전비행!

“기장을 너무 믿지 말고 안전비행!”

그리고 요즘에는
“부기장 믿지 말고 안전 비행!”  

제가 가방을 끌고 비행을 나갈 때 늘 아내가 건네는 말입니다.


“정신 차리고 비행해!”라고 하지는 않는 것을 보니 조종사로서 저는 믿는 모양입니다. ㅋㅋ


여기 두 가지 유형의 기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너무나 꼼꼼해서 늘 절대 완벽을 추구합니다. 조그마한 실수나, 규정에서 벗어나는 행동도 그의 눈에 띄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져 부기장은 그와의 비행 내내 기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좌불안석하며 온 신경을 조작과 절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비행은 늘 ‘안전하게’ 종료됩니다.


다음 기장은 느긋한 사람입니다.
안절부절못하지도 자신의 개인적 절차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부기장의 실수가 눈에 띄면 일단 조용히 지켜보다가, 자신이 직접 말없이 그 부분을 수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통해 부기장이 그 차이를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만약 동일한 실수를 두 번 이상 반복하면 그때는 적당한 때를 기다려 부기장이 오해하지 않도록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브리핑할 때마다,
“내가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믿지 말고 꼭 지적해주세요.”
라고 말해 부기장이 언제고 부담 없이 조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이들 역시 비행은 늘 안전하게 마칩니다.


두 경우 모두 똑같이 안전한 비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부기장에게 미치는 영향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영어로는 ‘Empowering’ 즉 힘을 실어 주는 비행과 그렇지 않은 비행의 차이입니다.


제가 비행 중 들었던 가장 인상 깊었던 기장님의 말씀은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입니다.


사람인 이상 언제나 실수도 있을 수 있고 서로의 생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자기 생각만을 고집해 동료 특히 부기장에게 강요하면 부기장들로서는 매번 기장을 바꿔 비행할 때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나옵니다.


부기장으로서는 평생의 꿈이었던 비행이 어느 순간 지옥 같은 고역이 됩니다. 기장과 부기장 서로 인상을 쓰는 일도 생기고 심하면 비행을 마치고 눈도 안 마주치고 돌아서 버리기도 합니다.


기장의 리더십은 언제나 ‘SUBMISSIVE(주로 타인의 얘기를 따라주는)’ 와 ‘ASSERTIVE(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는)’의 경계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게임입니다.


저는 주로 부기장의 얘기를 들어주는 타입입니다.


“어느 구간을 비행할래?”
“이 문제 어떻게 생각해? 어느 쪽이 나을까?”
“식사 먼저 골라!”
“혹시 피곤하지 않니? 어떻게 먼저 Controlled Rest 할래? 아니면 내가 먼저 Controlled Rest 할까?”


제가 두 가지 결정에서 고민하다 부기장에게 “어떤 것이 좋을까?”라고 물었을 때는 언제나 답은 미리 결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미리 결론을 내고 형식상 물어보는 것이냐고요?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미리 결정된 답은 바로


‘부기장이 선택하는 답’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결정이었기에


이때 저는 늘 부기장이 결정한 쪽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부기장의 선택이 옳았다면 부기장은 자신의 판단력에 자부심과 확신을 얻을 기회가 될 것이고, 기장인 저 역시 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으니 더불어 스스로 자부할 만합니다.


반대로 그가 틀린 것으로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제가 내린 결정이 아니었으니 속으로 자신의 통찰력이 부기장보다는 나았다는 자기 합리화(?)를 즐기게 될 것이니 잃을 것이 전혀 없는 테크닉입니다.


더불어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다 혹시 망신당할 일도 피할 수 있으니 더욱 기막힌 방법입니다. �


손쉬운 CRM의 기법이고 실패가 없으며(Fail Safe) 더불어 사람의 마음까지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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