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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Unable to comply!

“Unable! (to comply)”

관제사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는 의미로 조종사가 사용하는 관제용어입니다.
오늘 아침 싱가포르에서 접근 중에 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말레이시아 룸퍼 컨트롤에서 싱가포르로 넘겨지기 전 미리 싱가포르에 주어진 STAR 즉 접근 경로를 기상 때문에 따를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작 관제구역에 진입해보니 싱가포르 관제사에겐 전달이 안 돼 있더군요.  

그림에 빨간색으로 표시한 것이 기상 레이다에서 빨갛게 표현된 스콜 라인입니다. 파란색 점선이 원래 계획된 비행경로이고요. 문제는 이 경로를 그대로 따라 들어갈 경우 지금 기내에서 정신없이 착륙 준비 중인 승무원이 터뷸런스로 다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통과할 때만 잠시 그들을 앉혀둘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관제에서 Rerouting 즉 경로 변경을 허락해 줄 것을 기대했던 제게는 불과 1분 안쪽의 시간 밖에는 없더군요. 무리였습니다.


활주로 20R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들어가는 경로 LEFT DOWNWIND(파란 점선)가 아니라 시계 방향으로 패턴을 잡는 Right Down Wind(그린색 실선으로 실제 오늘 아침 비행한 경로)를 요구했으나 관제사는 오히려 Heading을 남쪽으로 돌려주더군요.


여기서 서로 간에 생각이 달랐습니다. 남쪽으로 돌리면 족히 40마일 이상 파이널이 길어지는데 싱가포르 접근 관제 구역이 도시국가로 그렇게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순간 들더군요.


기장인 저의 판단은


“현 위치에서 홀딩을 요구합니다. 케빈이 준비가 안 되어 그대로 Squall Line을 통과하기엔 위험하니 그들이 준비되면 알리겠습니다. “


일단 저의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그림에서처럼 홀딩이 한 바퀴 이루어질 즘 기존 관제사가 아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선임 Supervisor가 나서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겐 공항 서쪽으로 Radar 벡터를 주어 요구한 데로 스콜 라인을 피해 RIGHT DOWN WIND를 허락해 주었고 이후 뒤따르던 항공기들에겐 잠시 홀딩을 지시한 뒤에 활주로를 바꾸어 활주로 02L로 우리가 내린 이후에 착륙을 유도하더군요.


착륙은 폭우 속에 이루어졌고 미니멈 이후에도 활주로는 미처 밀어내지 못한 빗물 속에 번져 보이던, 만약 경험 없는 신참이었다면 어려웠을 힘든 착륙이었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이런 제한된 비주얼 상황에서 착륙 시 Vertical보다는 Lateral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던 것을 아직 기억하시나요?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부기장에게 브리핑이 되었더라면 좀 더 수월했겠지만, 브리핑이 없었으므로 결국엔 안과 밖을 번갈아 모니터 하며 미니멈 이후에도 안정적인 FLIGHT DIRECTOR 팔로잉을 집중해 드리프트 없이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출발 전 브리핑실에서 제게 1t의 추가 연료를 가져가고 싶다고 조언한 부기장의 조언을 그대로 따르길 잘했다고 비행 마지막에 안도한 날이었습니다.


항로상에서는 약 100마일 즉 180㎞를 Weather Deviation(기상 회피)를 해야 했고(약 1톤 소모) 접근도 GO AROUND를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던 드문 비행이었습니다.


결국 예상보다 2t의 연료를 더 소모한 비행이었으니, 제가 오늘 스스로 디브리핑 할 제일 잘한 점은 부기장의 추가 연료 조언을 무시하지 않고 따른 점입니다.


가장 잘못한 점은 미리 폭우 속에 착륙할 가능성에 대해 예상하지 못하여 브리핑에서 대응절차를 언급하지 못한 점입니다.


오늘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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