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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0. 2019

에미리트 항공 조종사 인터뷰

2011년 두바이 에미리트 항공 본사 2층 면접실

미셸은 에미리트의 현역 777 기장으로 이 항공사의 조종사 채용을 담당하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다.

첫날은 지원자들에 대한 시뮬레이터 실기 평가와 COMPASS TEST(수학, 항공상식, 공간지각력 검사, 지각반응 신속성 검사, ATC Based 기억력 검사 등)를 진행했고, 어제는 오전 3시간에 걸친 PHYCHOLOGY TEST(심리검사)에 이어 그 결과에 기반해 오후에는 각자 일대일로 심리학자와 한 시간여 심층 심리 면접을 거쳐 총 12 명만 이 살아남았다.

오늘은 면접 3일째로,
이곳에서 이들 중 3명의 조종사들에 대한 총 3단계의 GROUP PROBLEM SOLVING 중 그 두 번째 STAGE 2 가 준비 중이다.

총 4일 동안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되는 인터뷰 동안, 지금까지 이번 주 지원자 중 절반 이상이 탈락해 회사가 마련해 준 비행 편으로 이미 두바이를 떠났다.

미셸은 응시자들이 들어오기 전 HR의 캐서린과 진행방식에 대해 논의를 이미 마치고 테이블에 질문지 3부를 나누어 놓았다.

Group Problem Solving Stage 2 Questionnaire

“지구온난화로 인류 멸종이 임박한 지구에서는 UN의 주도로 선정된 이주 행성에 총 10명의 인류를 선발해 우주선으로 대피시킬 계획이다. 여러분들은 최종 10명을 선정하라. 총 30명의 이름, 직업, 나이, 성별이 적힌 별도의 리스트가 제공됨”

“문서를 리뷰하고 토론에 주어진 시간은 총 30분이다. 30분 안에 10명을 선정하지 못할 경우 전원 불합격 처리한다. “

지원 조종사들이 들어온다.

아일랜드 라이언에어 출신 35살 잘생긴 총각 영국인 DANIEL,
영국 THOMAS COOK항공 출신 영국인, 역시 노총각, 45살 조나단, 그리고 기혼인 동양인 한 명이다.

미셸은 두 명의 영국인 조종사들보다는 이 동양인, 정확히는 한국인 조종사에게 관심이 더 많다.

그는 공군 수송기 조종사 출신에 대한항공에서는 A330과 B777을 모두 타 경력이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좋다.

시뮬레이터 평가와 컴퍼스 테스트 심리검사 등에서도 상위 성적을 받았다.

그를 추천한 사람들의 추천서도 아주 공들여 쓰인 것으로 보아 좋은 조종사임에는 의심이 없지만 단지 그의 영어에 아직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한 시간 전 실시된 STAGE 1 GROUP PROBLEM SOLVING에서 그의 WEAKNESS가 확실히 드러났다.

그의 영어에 분명 문제가 있다.

주어진 문제는 “비행 중 비상발생 시 회항공항의 선택과 진행”이었다.

북극해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의 조종석을 가상해 이들 3명은 롤 플레이를 통해 DIVERSION공항을 선정하고 진행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문제는 이 한국인 조종사의 참여도가 아주 미미했다는 것에 그는 주목하고 있다.

STAGE 2에서 마저 그의 참여가 저조하다면 그는 이 사람을 오늘 돌려보낼 생각이다.

이미 HR 캐서린과도 이 부분은 정리가 끝났다.

이 한국인 지원자는 그와 파트너가 된 조종사들의 영국식 영어에 고전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읽기에 들어갑니다. 제한시간 30분이 지금부터 적용됩니다. 시작!”

3명의 조종사가 동시에 주어진 두장의 문제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이미 2명의 영국인 조종사는 읽기를 마치고 나머지 한 명 동양인 조종사가 고개를 들기를 이미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아직도 문제지를 읽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만약 30분 안에 문제 해결을 실패하면 그들 자신도 FAIL 된다.

이에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는 듯, 그중 한 명이 나선다.

“자 이제 모두 읽었으면 우리 누구를 보낼지 선정을 시작하자”

이 말에 아직 문제지를 읽고 있던 한국인이 고개를 들더니 그들에게 말한다.

“Give me a minute. I’m not ready yet”

이 말에 두 명의 조종사는 바로

”그래 다 읽으면 알려줘”

라고 한발 물러 선다.

그리고 약 1분 뒤 그가 준비가 된 듯 다 읽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조나단이 영국인 특유의 강한 엑센트로 말한다.

“Shall we start discussion?”

그런데 다시 그가 염치없이 제지한다.

“잠깐만, 미안한데, 내가 모르는 단어가 몇 개 있어!. 이거 이거 이거, 의미 좀 설명해 줄래?”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또다시 수분이 흘렀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20분이다.
두 명의 얼굴엔 이제 Time Pressure 때문에 스트레스가 묻어나기 시작한다.

다니엘이 먼저 주도하려는지, 말한다. “자~ 그러면 이제 리스트의 첫 번째 사람부터 선정할지 말지 토론해 보자”

그런데, 또다시 한국인 조종사가 손을 든다.

“ 내가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만 의견을 얘기하면 안 될까?”

“미안한데 나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우리는 지금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토의할 시간이 없어~ 우선~ “

“우리 각자 10명을 먼저 고르고, 서로 비교해서 공통적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토론 없이 선발하고, 나머지 부족한 숫자만 토론해 선발하면 어떨까?”

두 명의 영국인 조종사들의 급 밝아진 얼굴로 반색을 하며, 속으로 이 사람 제법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보인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럼 빨리 각자 10명을 우선 고르자!..”

이때 HR 캐서린이 갑자기 얼음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제지한다.

“VOTING은 오늘 허용되지 않아요! “

그러자 한국인 조종사가 바로 반박을 한다.

“저는 이게 VOTING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EFFICIENCY의 문제라고 봅니다.”

캐서린이 바로 옆 그의 동료를 돌아본다. 그의 동의를 받을 셈이다.
그런데,

지금껏 지켜보던 미셸 기장은 그녀와는 생각이 다르다. 아까부터 그는 이 동양인의 뻔뻔한 배짱이 맘에 든다.

이내 어깨를 씰룩이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이자, 캐서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지만 여전히 쌀쌀한 말투로,

“그럼, 그냥 진행해요! “

이들은 이렇게 먼저 공통되게 선정된 7명의 명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3명에 대해서만 토론을 진행해 결국 30분 내에 총 10명의 명단을 여유 있게 선발해 냈다.

Stage Two Group Problem Solving의 결과는?

문제 해결 중 줄곧 부족한 동료를 배려해 준 2명의 영국인 조종사

모두 합격!

그의 부족한 영어를 인정하고, 이를 커버할 창의성과 배짱을 보여준 한국인 조종사

역시 합격!

Group Problem Solving에서 3명의 멤버 모두가 합격한 팀은 그날 그들이 유일했다.

이상은

지금은 나의 절친이 되어 김치찌개와 사랑에 빠진 나의 벗 조나단과,

입사 후 바로 사귀던 한국인 승무원과 결혼한 다니엘

그리고 필자의 8년 전 에미리트 입사 인터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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