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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0. 2019

비행 중 갈등의 해결

CRM(CREW RESOURCE MANAGEMENT)

20명에 가까운 크루와 함께 비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갈등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사소한 일들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지만 간혹은 직간접적으로 기장이 개입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한 번은 홍콩 비행에서 레이오버 후 체크인부터 버스 탑승 때까지 사무장과 대화를 하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통상은 미리 전체 브리핑 전에 사무장에게 비행시간과 터뷸런스, 택시 타임이 길지 짧을지 특별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통상적인데 어쩐지 이날 영국인 여자 사무장은 저와 눈을 마주치려 조차 하지 않더군요. 부기장에게 혹시 사무장과 얘기를 오늘 나눈 적이 있는지 서로 인사는 나누었는지 물어보았더니 자신도 의아하다고 오늘 행동이 이상해 자기도 눈여겨보았다고 하더군요. 여자의 심리상태를 남자들이 어찌 알겠습니까만, 일단은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어서 부기장과는 그냥 덮고 가자라고 얘기를 하고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통상 항공기가 이륙하면 이륙시간을 기준으로 예상 도착시간, 강하 20분 전 시간과, 푸시 백 타임을 적어 사무장에게 줄 메모지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시도를 해봅니다. 그 메모지에 적습니다.

"Catherine, Very Good Morning to you. We hope You are all right!"

그리고 그 옆에 크게 스마일리를 그려 넣어서 짐짓 모른 채 잠시 후 칵핏에 들어온 그녀에게 건넸습니다.

그녀도 우리도 별다른 말없이 음료 주문만 받고 그녀는 나갔습니다. 그리고 5분여 뒤 다시 그녀가 칵핏을 방문합니다. 아주 환한 미소와 함께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트레이에는 캐빈에서 준비할 수 있는 각종 간식거리가 과할 정도로 수북이 쌓여 있었고요. 우리는 서로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지만 그녀가 오늘 아침 왜 그렇게 심술이 나 있었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니까요. 그렇게 다시 하나의 좋은 팀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콜롬보 레이오버 뒤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는데 뒤를 돌아보니 부사무장이 서있더군요. 나를 바라보고도 시선을 회피하고 인사조차 안한채 지나치려던 그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좀 멀뚱한 표정이랄까 차가운 표정이랄까 그런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하고는 저를 지나쳐 카운터로 나아가 체크아웃을 하는 그녀를 보고 저도 보살은 아닌지라 일단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리고는 이후 사무장에게 넌지시 물어봅니다." 베키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아는 것 있어?"

"조금 얼굴이 어두운 면이 있는 사람이지만 평상시에는 잘 웃는 데 어제오늘은 피곤한지 잘 웃지를 않네~"

이후 칵핏에 들어온 FG1에게도 넌지시 물어봅니다. 그녀가 오늘 이러저러하던데 내가 잘못 본 것인지?. 남자 승무원인 그의 말은

"여자들 결혼하면 좀 주변에 무신경 해지는 것 있잖아 그런 거 아닐까?"

여전히 이들의 대답이 나에게는 부족합니다.
이런 경우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저도 이런 풀리지 않는 마음으로 비행을 마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사무장을 불렀습니다.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면 베키한테 얘기해서 칵핏으로 좀 와달라고 해줘”

내가 직접 얘기할 수도 있지만 사무장을 통해 얘기하는 것이 좀 더 포멀 하니까 그녀도 진지하게 임할 것이라는 저의 계산이었습니다.

약 2시간이 지나고 잠시 객실에 나간 사이 그녀가 마침 프런트 갤리로 올라왔습니다. 그녀가 먼저 사과부터 하며 말을 꺼내자 주위에 있던 승무원들이 자리를 알아서 비켜줍니다. 그녀를 데리고 칵핏까지 들어가 부기장이 듣고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체로 그 자리에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자신은 내가 앞에 서 있는 것을 인지 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몸이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어 힘들어서 크루들과 교류가 적었다. 그래서 얼굴도 굳어 있었다. 이런 얘기들입니다.
이제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합니다.

"어제 비행 시작 전 전체 브리핑에서 내가 했던 말 기억나니? 내 얼굴이 좀 경직돼 보이고 고지식해 보이는 면이 있어, 내가 군생활을 오래 해서 그래. 근데 사실은 내가 속은 그렇지 않아, VERY EASY GOING 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 얼굴에 속아서 겁먹진 말아줘. 했던 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그 말을 할 때와 안 할 때 비행 중 크루들의 반응은 많이 달라, 나 많이 SHY 한 사람이야 내성적이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종종 오해해. 친절하지 않다. 토라져 있다. 등등. 그래서 늘 일부러 브리핑에서 그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이런 나의 성격을 철저하게 감추고 내일에 최선을 다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고 미소를 늘 잃지 않지. 기분이 좋아서도 힘이 넘쳐서도 아니야. 우리는 프로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쪽이 갓 입사한 신입이면 아직 어려서라고 생각을 해서 넘어갔을 수도 있고 만약 사무장이었다면 내가 보스로서 존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따로 불러서 직접 디브리핑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그쪽은 조금 있으면 사무장을 할 사람이잖아. 리더가 될 사람이고 지금도 중간 리더로서 업무를 수행하잖아. 지금 내가 한 얘기를 잘 되새겨 좋은 퍼서가 되어서 만났으면 좋겠어"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친절히 지적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한다. 그녀가 얼마나 나의 말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녀의 기분을 먼저 상하게 한 것이 있었거나, 그녀가 기장의 권위를 무시하려고 한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었기에 특별한 보고서 없이 포멀 하지 않은 사담으로 끝을 맺었다.

잠시 후 사무장이 들어와 연신 깔깔대며 말한다.

기장을 만나러 가기 전 긴장해 덜덜 떨던 그녀가 나를 만나고 와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급 밝아졌다고 아주 쾌활해졌다고 비결이 머냐고 묻는다.

"Well, perhaps, I was flirting with her.. Hahaha"

물론 모두들 제가 그녀에게 작업을 걸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좋은 비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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