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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0. 2019

공군 저압실 비행

“내가 몇 번을 얘기해야 해! 당신 귀와 코 상태로는 절대로 비행 못 해! 내가 항공 군의관 출신이야~”

연세가 지긋한 이비인후과 의사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이해를 못 하는 것인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통에 그의 인내심이 다 해, 결국은 모질게 이 말까지 하고 말았다.
청년이 벌떡 일어나, 얼굴이 붉어져서는 진료실 문을 거칠게 박차고 나간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청주 공군 항의원 저압실. 그가 오늘 이곳에 와 있다.

그와 동료들이 교육 입과 전 항공 신체적성 검사를 받는 날이다.

이곳까지 오기까지 조종 학생들은 임관 후 6개월을 기다렸다. 비행 훈련이 이제 눈앞에 와 있다.

이들이 진행할 저압 실비행은 병원의 고압 산소실과 유사하다. 그들은 챔버 내에서, 그들의 신체가 급격 고도 변화를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일종의 인체 스트레스 테스트다. 훈련 종료 시 대부분이 전투기 조종사가 될 공군 조종사 훈련의 필수과정이다.

저압실의 문이 굳게 닫히고 그들은 이제 비행 헬멧에 연결된 산소마스크를 통해 산소를 호흡 중이다.
고도는 3만 피트를 넘겨 빠르게 상승 중이다. 이 상태에서 산소마스크를 제거하면 생존 가능 시간은 불과 수분에 불과할 정도로 산소 농도가 희박한 상태다.

다시 챔버 내의 고도를 높여 오늘 최고 고도인 4만 피트까지 올린다. 이 고도에서 산소마스크를 제거한다면 의식이 유지되는 시간은 겨우 수십 초에 불과하다. 훈련생 앞에 붙어있는 고도계의 바늘이 미친 듯이 돌다가 4만 피트에 정확히 멈추어 섰다.

훈련생 모두 지금까지는 잘 따라오고 있다. 챔버 안에는 10여 명의 훈련생과 5명의 교관이, 그리고 챔버 밖에서도 다른 5명의 교관이 창문을 통해 만약의 비상사태를 대비해 훈련 진행상태를 뚫어지라 응시하고 있다. 훈련의 위험성으로 인해 교관과 학생 비율이 거의 1대 1 일 정도로 진행되는 유일한 지상훈련이다.

"전원 마스크를 풀고 준비된 노트에 자신의 이름을 계속 적어 내려갑니다!"

이어 교관이 인터폰을 통해 또박또박 큰소리로 반복해 설명한다.

"언제라도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즉시 직접 산소마스크를 착용하시거나 손을 들어 교관에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곧이어 여기저기서 산소마스크의 연결 후크를 제거하는 소리가 들리고 앞에 놓인 노트에 이름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10초 경과. 벌써 산소마스크를 다시 집어 쓰는 훈련생이 보인다.
곧이어 반대편에선 교관이 급히 산소마스크를 다시 연결해주는 훈련생들도 눈에 띈다. 이들은 자신이 의식상실 상태에 접어드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알아보지 못할 글자를 흘려 쓰고 있던 경우다.

1분여가 지난 현재 이제 모든 훈련생이 다시 마스크를 착용했다. 단 한 명 만을 제외하고는.

럭비로 단련된 해군 박 중위! 그는 역시 괴물같이 버티고 있다. 다시 2분을 넘기자, 이젠 3명의 교관이 그의 곁에 바싹 다가붙어 있다. 떡 벌어진 그의 어깨 아래로 바삐 써 내려가는 그의 글씨가 흐트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꼿꼿한 필체는 여전하다.
초침은 이제 3분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는 기다리는 교관들이 더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챔버 안과 밖의 모든 교관이 이제 그를 응시하고 있다.

이때 밖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선임 교관이 급히 신호한다. 그의 옆에 섰던 교관이 다급히 산소마스크를 박 중위에게 착용시키며 미안한 듯 한마디 한다.

"이 이상은 위험합니다. 박 중위님"

이제 훈련은 종반부를 향해 나아간다. 챔버는, 항공기가 급격히 고도강하시 조종사가 경험할 상태를 재현하며, 훈련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단계로 진행하고 있다.

다시 고도계의 바늘이 세차게 아래로 돌기 시작하고, 이내 챔버 내의 훈련생들이 여기저기서 산소마스크 위, 그 아래 코가 위치한 곳을 엄지와 검지로 강하게 누른 채 연신 비행 헬멧을 쓴 머리를 위아래로 조아린다.

이들은 지금 “발살바”를 하는 중이다.

“발살바”란 비강 내의 압력차를 코를 막은 채 복압을 인위적으로 높여 강제로 외부 기압과 맞추어 주는 기법이다.

"극심한 통증"

그때였다.. 순간 시작된 통증에 한 훈련생이 당황해하고 있다.

어느새인가 벌써 교관이 그에게 다가와 있다.

”김 소위님 저를 보십시오. 괜찮으십니까?”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놀라 눈만 허옇게 껌뻑이던 김 소위는 다행히 수초 뒤 안정을 되찾고 훈련을 계속하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잠시 뒤 정상 신호가 교관들 사이에 전달되고 다시 챔버 안의 고도계는 빠르게 돌아 순식간에 1만 피트를 지난다.

그는 이후에도 여전히 발살바를 간신히 해내며 힘들게 버티고 있다.

산소 호스와 고도계가 연결된 콘솔, 교관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이 테이블 밑으로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아 준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동기생 정 소위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정소위가 눈빛으로 얘기한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분 뒤

“푸쉬이이이” 챔버 안의 기압을 외기 압과 맞춘 뒤 닫혔던 철문이 열린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날 훈련에 참여했던 20명의 공군과 해군 예비 조종사들은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테스트를 통과했다.

김 소위는 힘들었지만 결국 훈련을 통과해 냈다.

잠시 뒤 땀이 배 햇볕에 반짝거리는 머리를 쓸어내리며 그가 말한다.

“우리 부산 사내들은 이 정도는 까딱없다~~”그의 너스레에 동기들 모두 웃고 만다.

침을 삼키는 정도로 기압변화에 대처가 된다면 수만 피트의 고도를 넘나들며 전투 기동을 해야 하는 전투 조종사로서는 최고의 신체조건이다. 하지만 발살바를 수행해서라도 기압 균형을 맞출 수만 있다면 조종사가 되는 데는 일단 문제가 없다. 단지 비행 중 추가로 이 기법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과 이 기법이 여의치 않았을 경우에는 중이염, 부기강염등이 비행 후 발생할 가능성이 남들보다 크다.


6개월 후 1994년 2월 공군 사천기지 중등 훈련과정 신체 비행 적성 테스트 비행


오늘은 중등 비행 교육에 입과 전 T-37항공기를 교관과 동승해 HIGH G를 동반한 전투 기동과 급격 상승 강하 위주의 비행을 하게 된다. 저압실과 달리 실제 비행기로 인체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게 된다. 중등 입과 전 마지막 관문이다.

오전부터 동기생들이 하나둘씩 교관과 동승해 테스트를 수행 후 착륙하고 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학생 상태가 나빠서 RTB(Return to Base) 합니다.”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비행 중 조종 학생이 실신했다.

그는 6개월 전 저압실에서 힘들어했던 김 소위다.

착륙 후 김 소위는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에 실려 의무대로 옮겨졌다.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치고 의무대를 찾은 동기들은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상태를 보고 말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고, 동기들을 바라보면서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귀 안쪽에 온통 터졌데”~ 왜 이런 몸으로 왜 여기까지 왔냐꼬~~ 군의관이 나더러 미련하다고 카더라~~. 이게 다 저 노마 때문이다~. 저 노마만 그때 저압실에서 내 손만 안 잡아 줬어도~ 그냥 포기했을 긴데~~ 큭큭큭~” 눈을 못 뜬 상태에서도 그는 정소위를 가리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한 달여의 회복 기간을 거쳐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고 이후 정비 특기로 재분류되었다.

의사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저압실 챔버에 들어가 보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날 이비인후과 병원을 방문했던 청년은

테이블 밑으로 동기의 손을 잡아주던 정소위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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