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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0. 2019

시뮬레이터

에어라인 시뮬레이터 평가

시뮬레이터

1화 천사의 탈을 쓴 도살자

지금 시간은 일요일 아침 7시 정각.
겨울철 늦은 일출로 인해 아직도 어둑어둑한 이른 시간에 CAPT JAY는 그의 빌라 1층에 벌써 10분 전부터 내려와 대기 중이다.

그가 거주하는 복층 빌라는 회사가 조종사를 포함한 임직원을 위해 건축해 직접 관리하는 Company Accommodation(사택)이다.

3년 전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 사택 지구는 현재 2000채의 빌라가 지어져 있다.
그는 그중 한 빌라에 2년째 가족과 거주 중이다.

정각이 약간 지난 시간 그를 훈련센터로 태우고 갈 회사 택시가 도착한다.

“Good Morning Sir! How are you?”

기사가 택시로 다가서는 그를 보고 차에서 내려 먼저 인사를 한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회사의 이 쇼퍼 서비스가 제일 좋았다.
회사 근처에 총 5000명의 조종사가 아직까지 미비한 대중교통 탓에 각자의 차량으로 출퇴근을 한다면 이를 수용할 주차장을 지을 공간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언젠가는 대형 버스로 바뀔 거라는 소문이 무성한 지금, 그는 이 순간의 호사를 온전히 오래 즐기고 싶다.

오늘은 시뮬레이터가 수용된 3개의 훈련동 중 가장 나중에 지어진, Emirates Training College 건물에서 교육이 진행된다.
그가 지금 막 도착한 브리핑 실에는 벌써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를 맞는 기장이 스케줄에 나와있던 TRE(Training Examiner)가 아니다.
일단 반갑게 (피평가자가 자신을 평가할 사람이 반가워할 턱이 없지만) 서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그가 교관의 이름을 다시 슬쩍 보고는 살짝 동공이 흔들리고 있다.

마이클 셀 린버그.

천사의 탈을 쓴 가혹한 도살자.

언젠가 그의 친구 누군가가 알려주었던 인물이 지금 그의 앞에 있다.
그간 그의 칼에 날아간 기장들이 한둘이 아니다.
브리핑실과 학과장에서 만나는 그는 늘 상냥하고 젠틀하며 박식하고 실용적이다.
그러나, 시뮬레이터에서 만큼은 그는 전혀 다른 Mr. 하이드가 된다.
어떤 작은 한 부분 그가 몹시 싫어하는 (아주 많아 모두 나열하기 힘들다 ) 부분이 목격되는 순간 그는 지킬박사에서 바로 하이드 씨로 순식간에 돌별 한다.
하이드 씨로 변한 그에게 모질게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이 줄을 잇는다.

그런 그가 지금 눈앞에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로 앉아 있다.

“오전에 스탠바이 중이었는데 불려 나왔어, 예정되었던 기장이 감기 몸살이라네~”

아참 부기장 소개가 늦었다.
그는 두줄, 즉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회사 카뎃 출신의 모하메드다.
그의 미소는 선량해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 경력이 부족해 오늘 훈련에서 그가 해줄 수 있는 Support는 분명 제한적일 것이다.

상황이 직감적으로 불길함에 순간 고개를 돌려 눈을 찌푸린다.

결과적으로, 이날 교관은 부기장 모하메드와 캡틴 JAY를 심 Fail 직전까지 몰고 갔다가 자애로운 하이드 박사로 돌아와 6개월 생명연장의 서류(조종사 라이슨 스)에 사인해 주었다.

다음은 이날 평가의 세부사항이다.

시뮬레이터를 연결한 브리지가 떨어진 지 이제 1시간 10분이 지나, 항공기는 프랑크 푸르트 공항 활주로에 라인업 상태로 이륙 허가를 대기 중이다.
시정은 간신히 미니멈인 150미터.

심에서 바라보는 활주로의 라이트가 그들의 코앞에 몇 개 정도만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이륙 허가를 받고 항공기가 활주로를 달리는 내내 그는 언제든 엔진이 Fail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했지만 이제 항공기는 어느새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륙해 고도 2만 피트를 지나 Heading을 동쪽으로 상승 중이다.

지금까지 아무 이벤트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지금쯤이면 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즈음,

“TING”

부기장이 시현된 짙은 노란색 FAILURE항목을 읽는다. 이제 시작이다..

“EICAS, EMQUIP COOL OVRD”

재빠르게, 그의 머릿속에 맨 먼저 번뜩이는 생각은

‘아하~ 이거 별거 아닌데, 칵핏 아래쪽 메인 컴퓨터가 위치한 곳을 식히는 냉각 팬과 관련된 거잖아.’

대부분은 팬 그 자체에서 결함이 발생해 소착 하고 이어 연기가 발생하고 발생한 연기가 자동 감지되어 팬을 자동 차단한다는 시스템이 번개처럼 그의 머리에 벌써 그려진다.

아주 느긋한 말투로 CAPT JAY가 지시한다.

“EQUIP COOL OVRD 체크리스트”

이제 해당 체크리스트가 아래쪽 디스플레이에 시현되고, 그 증상의 원인과 현재 그의 예상대로 팬이 자동 차단 상태라는 것과 3분의 cooling period를 갖고 있다는 정보가 시현되고, 일단 기다리라는 지시와 오른쪽 모서리에 시간이 2분 30초를 지나 줄어들고 있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쉽다..^^

그런데 순간 그의 다리 밑에서 뭔가가 스물스물 올라온다.

“Smoke”

연기가 자욱이 시뮬레이터 바닥부터 채우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런 젠장!”

오늘 시나리오는 애초부터 COCKPIT SMOKE였던 거다. EQUIP COOL OVRD는 그저 미끼였다.

‘무엇부터 해야 되지?’

이 짧은 순간 기장인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항공기는 지금 고도 2만 5천 피트를 지나 3만 피트를 향해 AUTO PILOT 상태로 상승 중이다.

수초 간의 응시 끝에 그는 이후 진행할 TASK의 PRIOTIZATION을 마쳤다.

첫째, 항공기의 비행상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현재 상태로 안정적이다.

둘째, 관제소에 비상을 지금 당장은 선포하지 않을 것이다.
체크리스트가 더 급하다. 당장 항공기를 돌릴 상황인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행방향으로 그냥 계속 진행한다 해도, 언제든 급할 경우 돌려 내릴 공항은 많이 있다.

셋째,
‘지금 당장 마스크를 써야 한다.’

“CREW OXY MASK ON”

두 조종사가 양쪽 창가에 위치한 산소마스크를 동시에 엄지와 검지로 잡고 강하게 뽑아내자 “취이이~~~~” 하는 산소 새는 소리와 함께 마스크의 공기팽창 방식 머리 밴드가 탄탄하게 팽창하며 머리가 들어갈 공간을 둥글게 만든다.
이들은 능숙하게 그들의 머리 위로 덮어 씌우고 쥐었던 Squeeze 버튼을 놓자 자동으로 팽창했던 에어 밴드가 수축하면서 그들의 머리와 얼굴을 타이트하게 밀착해 고글 일체형 산소마스크가 전체 얼굴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캡틴 ON OXYGEN!”

그의 말에 모하메드가 순간 멈칫하다 다행히 인터폰 스위치를 찾아 누르고

“FO ON OXYGEN!”
이라고 말하고 마스크의 고글 넘어 낙타같이 큰 눈망울로 기장을 응시한다.

그 사이 조종석은 이미 연기가 가득하다.

두 조종사가 산소마스크로 내어 쉬는 “취이이, 취이이” 호흡음이 칵핏 안에서 리듬을 타고 있다.

부기장 모하메드는 연기가 가득 들어찬 칵핏에서 지금 기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지시는,


2화 회항! “우리는 뮌헨으로 간다.”

“모하마드! 지금 열려있는 체크리스트 EQUP COOL OVRD를 닫고 SMOKE CHKLIST를 새로 부탁해!”

모하메드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직 1분여의 COOLING PERIOD 타이머가 남아 진행 중인 기존의 체크리스트를 닫고 새로이 SMOKE CHECKLIST를 LOWER DISPLAY UNIT에 펼친다.

그리고 이내 특유의 아랍 영어로 강하지만 또렷하게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간다.

그 사이 항공기는 자동비행장치에 프로그램된 대로 경로 이탈 없이 비행 중이다. 체크리스트 수행 중에도 기장은 시선은 연신 항공기의 비행상태를 모니터 하느라 이리저리 오가고 있다.

CHKLIST 첫 항목

1. -DIVERSION MAYBE NEEDED-

기장은 속으로

‘예상한 대로 [MAYBE] 야. 체크리스트를 오픈도 하기 전 비행기를 먼저 돌리고 비상을 선포했거나 바로 착륙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문구야.’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그래 여기까진 좋았어!

그사이 부기장 모하메드가 중간중간 산소를 호흡한다.
조종석 스피커를 통해 체크리스트를 읽는 사이사이, 그의 호흡음이 섞인 날카로운 취이익~~ 하는 규칙적인 소리가 그 긴장감을 더한다.

체크리스트의 그다음 항목으로 넘어간다.

“Source of the smoke, fire or fume is obvious and can be extinghiushed quickly”
화재나 연기의 출처가 확인 가능하고 바로 소화가 가능하다면?

Yes or No

둘 중 하나의 버튼을 결정해 눌러야 그다음 항목으로 진행된다.

이 결정에 따라 이후의 체크리스트의 방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한쪽은 바로 착륙을, 다른 한쪽은 화제와 연기가 통제가 될 수 있다면 회항 없이도 목적지까지도 기장의 판단에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Standby "

기장이 부기장의 체크리스트 진행을 여기서 멈춘다.

그리고 그가 인터폰을 뽑아 들고 사무장을 부른다.

"YES CAPTAIN?"

뒤에 앉아 있던 교관이 사무장의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가장해 바싹 다가앉으며 말한다.

" Hi, Rebecca, We have a smoke in the Cockpit, do you have the same smoke in Cabin?"

징그러운 가짜 레베카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No Captain. We don't, we are fine. No smoke, nothing. Are you guys Okay?"

대화는 여기까지.
이제 상황 파악이 되었다.
이 스모크는 지금 칵핏만 한정돼 있다는 상황을 교관이 확인해 준 것이다.

그가 뒤에서 이제 이들 두 조종사가 이제 항공기를 어떻게 몰고 갈지 컨트롤 콘솔 뒤에서 흥미롭다는 듯 관찰하고 있다.
컨트롤 콘솔의 디스플레이들이 내뿜는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더욱 기괴하게 보인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인터폰 핸드셋을 내려놓은 기장은 이제 잠시 수초 간 말이 없이 생각에 잠긴다.

체크리스트의 진행은 잠시 멈춰있고 모하메드는 그의 결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그가 말문을 다시 열었다.

"모하메드, 스모크는 오직 칵핏에만 있어, 분명 이건 우리 발 밑에 무언가가 타고 있다는 얘기야, 그것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모르고, 컴퓨터실에 소화기는 장착돼 있지 않아, 그것이 무엇이든 소화는 불가능해"

"Do you Agree?"

잠시 생각을 정리한 기장이 제시한 상황판단에 모하메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 그는 뭐라고 말도 했을 텐데 Full Face Oxygen Mask 속의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에 다시 기장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할 땐 인터폰 버튼 누르고 해야지~~ 모하메드!"

흠칫 놀란 부기장이 다시 인터폰 스위치를 찾아 누르고 이번에 또렷한 목소리로

"Sorry Captain, I agree with you!"

"자 그럼 I HAVE A CONTROL AND RADIO, 모하메드, 지금부터 너는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SMOKE 체크리스트에 쓰여있는 절차만 정확히 수행해줘. 과정 중에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으면 나를 불러서 물어보고 그렇지 않은 다른 전기나 기내 여압 스위치 등은 네가 판단해서 그대로 처리해."

이제 칵핏의 두 조종사는 평상시엔 절대 금기시하는 기장과 부기장이 각자 서로 업무를 공유하지 않고 진행하는,
"SPLITED FLIGHT DECK"을 선포한 것이다.

기장은 지금부터 모하메드가 무슨 액션으로 어떤 스위치를 끄고 켜는지 모니터 하지 않는다.
모하메드 역시 지금부터 기장이 어느 공항으로 어떤 접근 형태로 회항할지 그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제야 기장이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동시에 RADIO를 잡고 비상을 선포한다.

"MAYDAY MAYDAY, FLIGHT 000 REQUIRE IMMEDIATE DIVERSION TO NEAREST AIRPORT DUE TO SMOKE IN THE FLIGHT DECK"

다시 교관이 바싹 다가와 앉으며 이번에 관제사로 변신했다.

"Flight 000 Mayday Copied, Your 9 o'clock 100NM, Neuranberg, that is your Nearest Airport, I can give you Radar HDG Turn Left Heading 270 Descend and Maintain FL200”

너의 좌측 9시 방향 109마일에 뉴런버그로 보내줄게. 바로 좌전 해당 270도 고도 강하 2만 피트로 내려가.

이런 독사 같은... 순간 그의 머리에 스친 생각,:

'내가 속을 줄 알고'

교관이 지금 막 항공기를 돌려 고도를 낮추라고 일사천리로 몰아가는 그 공항은 활주로 거리가 2500미터로 현재 항공기 중량 290톤 상태로 접근해 착륙한다면 잘해야 활주로 안에 간신히 정지할 수는 있어도 분명 이후 모든 타이어가 FLAT 될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짧은 활주로다.

거기에다 접근 중 다른 FLAP이나 12개 브레이크 중 하나라도 추가로 FAILURE를 준다면 항공기는 활주로를 이탈할 것이 뻔하다.

이 교관은 마치 시장에서 못된 장사꾼이 어리숙한 손님의 혼을 쏙 빼놓곤 정신없이 물건을 떠넘기고 값을 치르기를 요구하는 듯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지금 도살자는 선량한 관제사의 가면을 쓰고 조금 뒤 염소의 목을 치기 위해 뒤로 칼을 갈고 있다는 생각에 그가 순간 몸서리친다.

황급히 기장은 최인근 공항으로 바로 회항 시 소요되는 시간과 연료가 표시되는 항법 컴퓨터의 ALT 페이지를 열고 리스트 된 공항을 빠르게 살펴본다.

그 옆에 부기장 모하메드는 옆도 돌아보지 않고 체크리스트에서 요구하는 각종 스위치를 연신 OFF 하며 빠르게 체크리스트를 혼자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금 교관과 기장의 교신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듯 돌아보지도 않는다.

"Negative. We wont go there. It looks Munchen is almost same distance, give me a Radar Vector to Munchen."
뮌헨이 좋아 보인다. 우리는 뮌헨으로 갈 테니 레이다 벡터를 해달라.

뮌헨은 두 개의 활주로에 그 길이도 3500미터로 뉴렌버그에 비해서는 훨씬 우월한 조건의 공항이며 현재로선 두 공항의 거리가 거의 비슷해 소모될 시간도 동일하다. 기장은 그곳으로 유도를 요구한 거다.

그러자 교관이 관제사 톤으로 다시 말한다.

"All right, Captain. No Problem then. This is new Radar Vectors to Munchen your 12 o'clock 120 노티컬 마일. But Captain, 뮌헨 Active Runway 26R. This is Vectors for 뮌헨 Runway 26R ILS HDG 100 Descend and Maintain FL 150. Request Yours Souls On board"

'정말 독사 같다.'

그가 지금 말한 것은 내가 지금 진행방향 그대로 뮌헨에 착륙을 할 수 없고 항공기가 활주로를 지나쳐 헤딩을 다시 서쪽으로 돌려서 반대방향 활주로에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최소 10분이 추가로 소요된다.

거기에 더해 그는 기장의 판단을 흐리기 위해 바로 끊지 않고 몇 명이 승객이 탑승했는지 확인해 달라는 말로 마치 소매치기가 피해자의 시선을 다른 곳에 유도하고 물건을 훔치듯 조종사의 주의력을 흐리려 하고 있다.

'내가 속을 줄 알고, 절대 말려들지 않을 거다.'

기장이 속으로 웃으며 다시,

"Negative, Again, I declared Emergency, Require Rwy 08 Straight In ILS LDG"

이 이야기는 나 비상이야~~, 여기서 바로 직진 진입해 활주로 08 ILS로 착륙할 거야. 활주로 내놔하는 소리다.

그는 속내가 들통이 나서는, 다소 뾰로통 한 목소리로 다시

"All right then. This is a Radar Vector Straight in Rwy 08L ILS Approach"

마치 그가 파놓은 함정을 살짝 뛰어넘어 도망가는
토끼를 먼발치로 바라보는 듯 허탈해한다.

순간
영국 사냥꾼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그러나 아직 칵핏은 여전히 연기가 가득한 채로 뮌헨 서쪽 50마일 고도 2만 피트를 지나 최대속도로 접근 중이다.

그리고 교관 마이클이 묻어둔 또 하나의 덫을 향해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제3화 GO AROUND 할까? (최종회)

"LOW VIS(저시 성) 상태에서 이륙 시 ILS (정밀접근) 주파수를 수동 튜닝하는 것에 대해 교관은 어떻게 생각하죠?"

CAPT JAY가 조금 전 교관인 나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나는 속으로 웃었다.

나의 연기는 완벽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대답으로 얼버 무렸다.

일부 조종사들이 오토 랜딩을 위해 만든 정밀 접근 가이던스를 이륙 중에도 참고하기 위해 수동 튜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를 사용 후 바로 삭제해 주지 않으면, 이후 다른 접근을 항법 컴퓨터에 선택해도 주파수 자동 튜닝이 차단되어 접근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심이라면 이 작은 실수가 접근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마침 그가 ILS (정밀접근) 주파수를 수동 튜닝하겠다니, 잘하면 난이도 제한치인 7 안에서 그에게 장비 고장을 하나 더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SMOKE는 최고 난이도 4점, 저시정 상황 1점, ILS 고장 2점 총 7점을 생각 중이었는데, 여기서 그가 스스로 매뉴얼 튜닝을 하고 이를 망각한다면, 정밀접근장치 고장과 동일한 효과가 난다.

오늘 결국 그는 자신의 손으로 항법 컴퓨터에 이륙 공항의 정밀 접근 주파수를 매뉴얼로 세팅하고 이를 잊은 채 어느 공항에 접근하다 G/A (Go Around)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왜냐하면, 분명 부기장은 SMOKE 체크리스트가 1만 피트까진 붙잡아 줄 것이다. 기장도 간신히 항법 컴퓨터에 계기 접근을 세팅하고 태블릿에 접근 차트 정도만 시현시키고 접근을 시작할 것이다.

평상 시라면 부기장이 이 실수를 놓칠 리 없지만 그들에게 오늘 시간이 없을 것이다.

오늘 기장은 철저히 혼자 비행해야 한다.

그래서 실수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그가 만약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릴 여유가 생기는 순간이 온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을 자신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정밀 접근 장치 고장을 주면 그만이다.. 그들은 무조건 GO AROUND 해야 할 조건에 들어가는 거다.

지상 고도 2000피트에서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을 깨닫는 것,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조종사들은 여기서 대부분 더 큰 실수를 저지른다.
만약 무리하게 자동비행장치를 풀고 항공기를 수동 비행상태로 찍어 눌러 준다면, 특히 오늘처럼 배풍에 290톤의 777을 정상 강하 각 보다 높은 상태에서 찍어 누른다면 그 결과는 재앙적이다. 제한속도 초과, 활주로 이탈, 타이어 파열에 이은 제동장치 화재!…

어쩌면 그는 접근을 포기하고 다시 크게 서클을 그려 재접근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나는 이러저러한 합리적 근거를 들어 그를 FAIL 시킬 수 있다.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먼저 말하지만 확률로 보자면 나에게 훨씬 승산이 있다.

1. 스모크 유지 + FMC (항법 컴퓨터 입력) 실수로 GO AROUND = 심 체크 FAIL
2. 스모크 유지 + FMC 입력 실수 + 무리한 접근 강행 = 심 체크 FAIL
3. 스모크 중지 + FMC 입력 실수 + G/A =심 통과 그러나 절차 미스로 가장 낮은 PROCEDURE APPLICATION 항목에 3점 (개선 필요)

4. 스모크 중지 +FMC 입력 실수 + 무리한 접근 강행 = 심 체크 FAIL

5. 스모크 중지+ +ILS(정밀접근장치) 고장 (교관이 부여) + G/A = 심 통과

6. 스모크 중지+ILS (정밀접근장치) 고장 (교관이 부여) + 무리한 접근 강행 = 심 체크 FAIL

총 6개의 선택 옵션 중 4개는 자동 심 체크 FAIL, 2개는 통과,

그나마 이 중 하나는
등급 3 (개선 필요)을 줄 수 있다.

그가 랜덤 하게 내가 준비한 카드를 골랐을 때 이길 확률은 채 20퍼센트가 안된다.

이상이 능숙한 사냥꾼이 토끼를 몰 때 늘 마지막 토끼굴 앞에 함정을 하나 더 설치해 두는 이유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추가해 토끼가 꼭 그 자리 위에서 디딤 박질 하게 할 비책이 하나 더 있다.

기대해도 좋다.
이제 그들이 나의 마지막 함정에 접근하고 있다.

다시 여기는 시뮬레이터 내부,

항공기는 이제 해발고도 (MSL) 13000피트 공항 표고 (AGL) 1만 피트에 다다르고 있다. 모하메드는 아직도 체크리스트를 끝내지 못하고 여전히 바쁘다.
속도는 330 나트 최고속도 제한치 바로 턱 밑에까지 바싹 붙은 채 777이 고속 강하하고 있다.

'이제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CAPT JAY는 290톤의 777이 1만 피트 이하에서 GEAR와 FLAP을 내기 위해 속도를 줄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산소마스크를 쓴 상태다.

그는 조금 전 ,

간신히 짬을 내 기내 방송 버튼을 선택하고 들숨을 들이켤 때마다 발생하는 취이이하는 소음이 PA에 섞이지 않도록 PA 중간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버튼을 릴리즈 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승객과 승무원에게 현상황을 전달했다. 평상시 같으면 따로 PURSER에게 실시한 브리핑을 그는 건너뛰었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Ladies and Gentleman, This is your Captain Speaking, Due to a Technical Issue in Flight Deck, We have decided to divert to Munchen. Please remain seated with your seat belt fastened. We will be landing in 15 Minutes. Blah blah… Thanks for your Attention"

그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려는 순간 거의 동시에

칵핏에 스모크가 점차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SPEED BRAKE(급격히 속도를 줄일 때 사용하는 항력 장치)를 최대로 당겨 작동시키고 그가 마스크를 벗는다.

날개 위에 쳐 올라온 14개의 SPOILER(날개 상부의 돌출되는 항력 패널)들이 만들어 내는 와류가 이제 동체를 세차게 두들기기 시작한다.

이어서 아직도 체크리스트에 몰입 중인 모하메드를 불러

"이젠 산소마스크 벗어도 돼!"

라고 말해 준다.

모하메드도 그도 이제 정상적으로 호흡을 하며 체크리스트에 집중할 수 있다.

이어 속도를 낸 모하메드가 곧이어 체크리스트를 마치고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 I have a Radio(내가 교신을 할게)"라고 말한다.

이제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기장은 그들이 지금 뮌헨의 ILS 08L 접근 중이며, 방금 PA를 했고 곧 착륙해서 활주로 상에 정지할 계획이라고 간단히 그에게 브리핑해준다.

그의 태블릿에는 간신히 접근 차트가 떠 있긴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차트와 FMC(항법 컴퓨터)를 비교점검할 짬을 못 내고 있었다.

"모하메드, FMC(항법 컴퓨터)를 좀 확인해줘"

지금까지 혼자 비행하면서 중간중간 짬을 내 그 두 개를 비교하려는 순간마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그는 이 중요한 작업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관제사로 빙의한 교관은
추가 헤딩과 고도 지시, 비상의 종류 문의, 착륙 후 의도 확인, 탑승 인원수 보고를 요구하며 매번 그의 주의력을 흩트렸고 결국 고도 1만 피트에 다다른 지금 간신히 DA(결심 최저고도)만 창에 세팅해 놓은 상태다.

이제 모하메드가 돌아왔으니, 그가 아직 ILS 주파수가 수동 튜닝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FLIGHT 000 Turn Right Heading 100 Descend Altitude 4500 Clear For ILS 08L"

조금 의아하지만 다소 이른 시기에 접근 허가를 준다. 비상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부하려는 순간,

모하메드가 지시사항을 복창하는 데 무언가 이상하다. 좀 전까지 멀쩡하던 그의 MIKE가 송신음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다시 시도하기를 몇 차례,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마이크는 먹통이다.

"Oxygen Mask 다시 확인해봐, Reset Button 눌린 거 확실히 맞아?"

"Captain, I DID IT!, I DID IT!, I AM SURE, IT LOOKS OKAY~~~"( 기장, 나는 제대로 했어, 정상으로 보여!)

그 사이 항공기는 기존에 연결된 LNAV (Lateral Navigation) 라인을 따라 여전히 자동비행 상태로 활주로에 정대하고 있다.
황급히 기장이 ILS 주파수를 잡고 따라내려 가기 위해 APPR 버튼을 누른다,

"Localizer and Glide Slope Armed" (이들 포인터를 잡고 내려 가기 위한 대기상태)

그 사이에도 비행은 진행되고 Call out이 기계적으로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다시 관제사로 빙의한 교관이 RADIO를 잡고는

"FLIGHT 000 RADIO CHECK??"(내 말이 들리는가?)

‘이런 젠장~’

CAPT JAY는 하마터면 한국말을 내뱉을 뻔했다. 부기장의 RADIO는 지금 교관이 FAIL 시킨 것이 명확하지만, 그는 지금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다.

그의 시선은 지금 부기장 쪽이 아니라 ILS접근의 Localizer와 Glide Slope Pointer가 시현되어 있어야 할 계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없다. 비어있다.’

항공기가 곧 정밀접근을 위해 타고 내려가야 할 두 개의 보라색 포인터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퉁기듯 항법 컴퓨터( FMC)로 향한다

황급히 RADIO PAGE를 눌러 펼치고는 아직 수동 튜닝을 의미하는 M 자로 표시된 선택창을 삭제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항공기가 타고 내려가야 할 보라색 다트는 시현된 것과 동시에 아래쪽으로 야속하게 쳐져 내려가고 항공기는 이를 물지 못한 채 수평비행 중이다.

부기 장석 라디오 고장과 과 ILS정밀접근의 Glide Slope Pointer(강하 각 지시 포인터)를 놓친 그때,

그들의 눈앞에 마치 고난 속의 유대인들 앞에 성서 속 메시아가 나타나듯,
지금껏 시야를 가리고 있던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멀리 활주로가 선명히 나타난다.
PAPI(시계접근을 보조하기 위한 강하 각 지시등) 마저도 보인다. 3 WHITE 1 RED(약간 높은 상태를 보여주는 강하 각 지시등의 상태).

지금 자동비행장치를 풀고 찍어 누르면, 내릴 수도 있을 거라는 강한 유혹에, 컨트롤 휠에 얹어진 그의 엄지 손가락이 무언가를 문지르고 있다.
AUTO PILOT DISCONNECT BUTTON. (자동비행장치 해제 버튼)
그의 엄지 밑 빨간 이 버튼을 그가 연신 문지르고 있다.

“눌러, 눌러, 아직 내릴 수 있어!”

“어서, 이러다 늦어”

악마의 속삭임.

칵핏에 정막이 흐른다. 좀 전까지 시끄러웠던 관제사로 빙의했던 마이클 교관도, 고개를 돌려 CAPT JAY만을 바라보는 부기장 모하메드도 시간이 잠시 정지한 듯 말이 없다.

잠시 뒤

그가 두 손을 휠에서
조용히 무릎 위로 내린다.


"모하메드!"

"YOU HAVE CONTROL" (네가 항공기를 조종해)

"I HAVE RADIO" (내가 라디오를 담당할게)

CAPT JAY가 지금 막 당근을 무시한 채 토끼굴 앞 마지막 함정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관제사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침울하다.

"APPROACH, FLIGHT 000, WE MISSED GLIDE SLOPE. WE REQUIRE ANOTHER VECTORS FOR ILS APPROACH"
강하 가이던스를 타지 못했다. 제 접근을 위해 관제를 요구한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마저 얼굴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

"NO problem Captain. This is another Radar Vectors, Turn Left HDG 360 Climb Altitude 5000"
문제없다. 다시 관제해주겠다. 좌선회 헤딩 360 고도 5000피트로 상승하라

교관의 목소리가 밝다. 교관 마이클이 이겼다.

교관은 무수한 방해로 Capt. Jay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게 막았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부기장 모하메드마저 그의 라디오를 고장 내 전선에서 이탈시켰다.

의심할 여지없는 교관의 승리다.

교관 마이클의 입가에 만면의 미소가 번진다.

착륙 전 부기장의 라디오는 기적적으로(?) 돌아왔고 1000피트에서 컨트롤을 인계받은 기장이 착륙을 수행한다. 그 흔한 측풍도, 배풍도 없었다. 이미 교관의 승리가 확정적인 이 순간 그가 주는 마지막 배려인 듯 활주로의 바람은 고요하다.

항공기는 지금 활주로에 정지해 있다.

승객에게 다시 상황을 알리는 기장방송을 하고 FIRE CHIEF(소방대장)과 통화를 하고 타이어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소방차들이 뒤따르는 상태로 다시 택시를 시작하자, 교관이 그들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다

"잘했어!. 고마워~~ , 정말 잘했어! 거의 완벽했어. 흐흐흐. "

그는 우리를 FAIL 시킬 수는 없었지만, 나름 흡족한 표정이다.

나중에 그가 작성한 훈련 평가점수 중

PROCEDURE APPLICATION(절차 수행) 점수는

"4, (회사의 STANDARD에 부합하여 양호함)

그와 멋진 댄스를 추어 준 보답인 듯 우수함을 의미하는 5점도 몇 개 보인다.

그리고, 개선 필요를 의미하는 3은

한 개도 없었다.

브리핑 실을 떠나는 교관 마이클이 뒤돌아 윙크를 하며 한마디 한다.

“앞으론 절대 지상에선 정밀 접근 수동 튜닝은 안 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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