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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0. 2019

우연이 만든 행운

삶을 되돌아 보면 참 많은 우연과 인연이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학4학년 그저 해군장교 모집 응시 원서를 쓰고자 들렸던 대전 병무청에서 저를 첫 눈에 불러 세우고 자신의 자리로 불러 공군학사 조종장교 응시원서를 전해 주었던 이름 모를 공군 모병관이 시작한 이 우연이,

벌써 28년이라는 시간동안 제 인생을 이 길로 이끌어 왔습니다.

우연은 언제나 낯선 사람들이 만들었고 지금은 그 분들이 누구였는지 조차 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 인생을 통째로 뒤 바꿔준 분들의 이름도 기억을 못하다니 그래서 우연이고 그래서 인연인가 봅니다.

육군이 사랑한 공군조종사

1995년 용산기지 UFG 연합훈련 WAR GAME (가상 전쟁 훈련 시뮬레이션) ROOM

건장한 체격의 육군 상사가 그의 뒤에 서있다.

"저, 중위님~ 충성!"

다짜고자 경례부터 붙이고 다가선다.

얼떨떨한 상태로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경례를 받은 A중위는 이 상황이 아직 어색하다.
육군이 왜 공군 워게임 운영장교를 방문했는지 그는 의아한 표정이다.

'혹시 병력 수송을 요청하러 온것인가? 그런 문제라면 이미 모두 육군과 작전계획회의에서 조율을 마친 상황인데.’

무언가 다른 일 일거라는 짐작을 한다.

자세히 보니 그는 공수특전단 마크를 달고 있다.

"지금 저희가 곤란한 상황에 있습니다.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요. 워게임이 시작하고 줄곧 A중위님이 미군과 조율하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희 중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의 얼굴에 난처함과 사태의 심각함이 그대로 묻어나, A중위는 거절하지 못하고 그를 따라 육군 통제 부스에 도착한다.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본 육군 특전사 복장의 중령은, 그가 미처 경례를 올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반가이 맞는다.

"아, A중위,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영어를 아주 잘하신다고,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어떤걸 도와 드려야 합니까? 번역입니까? 통역입니까?

"통역입니다"

A중위의 팔을 끌고 그가 육군 워게임 콘솔의 한반도 지도와 작전상황 군 병력 배치도를 보여준다.

아직 육군 콘솔이 익숙치 않아 상황 파악이 안되는 A중위는

"그런데,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이중령님?"

"저위쪽 두만강 넘어 만주쪽이 보이시죠. 빨간 점으로 시현된 점"

그가 커서를 옮겨 그 위에 올려놓고 클릭을 하자

'이런 맙소사~~'

A중위가 그의 눈앞에 펼처진 황당한 상황에 입에서 이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네 맞습니다. 우리 운영요원이 좌표입력 실수로 그만 병력중 일부를 두만강 이북 중국 만주지역에 떨어 뜨렸습니다."

그는 초조함에 평소 훈련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을 두손으로 연신 문질러 데고 있다.

이 특전사 침투팀은 신속히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곧 중국군의 포로로 분류 손실처리 될 상황에 처해있다.

이후 A중위는 미육군 WAR GAME 중령통제장교를 거쳐 WAR GAME 총괄 미육군 대령까지 이어지는 어필 레터를 작성하는 절차를 밟아, 다행히 단순한 입력 오류로 분류하고 병력을 원하는 위치에 옮기는 선에서 매듭 지을 수 있었다.

그 이후 2주간의 워게임 동안 A중위는 자신의 기본업무인 공수 업무만이 아닌 육군, 해군 그리고 해병대UDT까지 모든 한국군 워게임 통제요원들의 민원 창구 역할을 계속 해야했다.
대부분이 그보다 계급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연장자들인 그들 사이에서 임관한지 2년 남짓한 A중위가 바쁜 시간을 보낸다.

2주후 UFG 마지막 날

공군 선임통제관 박중령이 A중위와 얘기중이다.

"육군측에서 자네에게 연합사 지구사령관 대장상을 주겠다고 우기네~~."

4 STAR 육군 대장상을 공군에게 주는 것이 이례적이고 이 상은 육군 몫의 상인데 공군 통제관인 그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부담스러운 눈치다. 공군 몫의 상을 육군에 나누어 줄수도 없고.
그래서 그 해 육군과 공군 몫의 대장 상은 모두 공군 측이 수상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지난 2주간 박중령은 그간 짐짓 모른척 흐뭇하게 젊은 휘하장교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엔 육군이 나서서 포상까지 하겠다고 우기니 표정 관리하기가 곤란한 지경이다. 그간 그는 타군 통제관들로부터 부러움과 감사의 인사를 여러번 받았던 터다.

워게임이 종료되는 대원들이 해산하는 마지막 날 떠나는 A중위를 향해 박중령은

"나중에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그리고 내가 아직 군에 있다면, 나를 찾아오게. 도와주고 싶네"

그로부터 4년 뒤

A대위는 지금 공군작전 사령부 박대령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도와 주십시오. 말씀하셨던 그 카드를 지금 쓰겠습니다."

"자네 시험 성적은 어떤가"

"영어 성적은 만점입니다. 하지만 ~~"

지휘관 추천점수가 당락을 결정할 해외 교육과정에 A대위가 응시를 하고 이날 같은 작전사에 근무하고 있었던 이미 대령으로 진급을 한 박대령을 찾은 것이다.

"내가 자넬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네도 잘 알지? 사관학교 출신중 그해에 단 한명만 선발해서 보내는 과정인걸? 혹시나 자네가 이 과정에 선발된다 해도 그걸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말게나, 그정도의 위치에 내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네."

A대위는 그해 공군 역사상 최초로 비사관학교 출신으로 미공군 대학 초급지휘관참모 교육 (SOC:SQUADRON OFFICER SCHOOL) 에 선발되어 6개월간 도미교육을 받는다.
외교관 신분이 보장되고 모든 비용은 미공군과 한국 공군이 절반씩 부담하며 가족을 영내에 동반할 수 있는 초급 장교라면 누구나 선망하던 교육이었다.

그리고 그는 6개월 후 졸업 시 아마도 대한민국 공군 역사상 역시 최초로 이과정에서 상위2퍼센트에게만 주어지는 "DISTINGUISHED GRADUATE" 상을 수상하여 그를 선택해준 공군의 기대에 보답했다.

다시 용산 워게임 룸

훈련 마지막 날 저녁 훈련이 정리 단계인 그 시간에 첫날 A중위를 찾았던 육군특전사 상사가 다시 그의 자리를 찾아, 알듯 모를듯한 말을 남기고는 이내, 멋진 경례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간다.

“A중위님께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게 이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혹 고공강하 때 뵐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육군측 워게임 통제요원 전원은 공군A중위를 연합사 지구사령관 표창대상자로 추천했다. 자신들 중 한명에게 돌아갔어야 했을 육군 몫의 상을 양보한것이다.

육군UFG 파견요원들은
공군에게 그날
육군의 의리를 보여주었다.

이름 모를 육군 특전사 요원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과의 인연이 내게 얼마나 많은 또다른 좋은 인연들을 이후 만들어 주었는지.

나는 그 해 미국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훗날 에미리트 인터뷰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사진은 99년 그해 졸업시 총 200개가 넘는 팀중 전체 2위를 차지했던 자랑스런 동기생들과 빨간모자의 교관 케씨소령, 그리고 저의 팀Dragon5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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