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조종석의 시계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좋은 이야기들이 있다. 대게는 승객과 항공기를 구한 영웅부터 작게는 좋은 조종사란 이래야 한다는 짧지만 울림이 있어 오랫동안 살아남은 설화들이다.



예전에 747 점보라는 비행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모든 계기가 아날로그 즉 동그란 계기 속에 바늘이 돌아가는 형태였다. 지금은 디지털화해서 칵핏에는 정말 소형 컴퓨터 모니터 몇 대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에 더해 TOUCH SCREEN까지 일부 구현되고 있으니 기술의 발전이 이곳을 비켜가지는 않는다.

이 예전 747 점보에는 조종석 비행계기 옆에 작은 시계가 달려 있었는데 그때는 아마도 태엽을 감아서 작동시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이제 이것과 관련한 전설 속의 대화를 다시 꺼내볼까 한다.

'띵' 그리고 다시' 띵'

그렇게 몇 번을 항공기 시스템 이상을 알리는 경고가 여러 번 조용하던 칵핏을 울린다. 시현된 이상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그런데, 노기장은 지금 고장이 발생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고 메시지를 한번 슬쩍 보고는, 아예 고개까지 돌리고는 그의 앞에 있는 작은 시계만 붙잡고 무엇을 하는지 조금 전 발생한 문제들에는 관심이 없다.

'끄리릭, 그리고 다시 끄리릭'

"저, 기장님?"

젊은 부기장이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늙은 기장에게 말을 건다.

"지금 무얼 하고 계십니까?"

"응 나 지금 시계 밥 주고 있어~"

"아니 기장님 지금 수행해야 할 체크리스트가 많은데 어떻게 그러고 계습니까?"

당장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미 체크리스트를 손에 꺼내 든 부기장의 목소리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기장은 대답 대신 돌아보지도 않은 채 기다리라는 작은 손짓을 한번 하고는 다시 작은 시계에만 그의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시계태엽을 돌리고는 마침내 중요한 업무를 잘 끝냈는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그가 부기장을 돌아보며 말한다.

"자 인웅아 그럼 이제 우리 체크리스트를 해볼까?"

두 명의 조종사는 이후 모든 체크리스트를 잘 마치고 다행히 항공기도 다시 안정을 찾았다.

한숨을 돌린 부기장이 이제야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참지 못하고 꺼낸다.

"기장님, 아깐 왜 그러셨습니까? 왜 체크리스트로 바로 안 들어가신 겁니까?"

경험이 부족한 젊은 부기장을 쓱 안경 너머로 바라보고는 노기장이 빙긋 웃는다.

이제는 안경을 쓰지 않으면 체크리스트를 읽을 수 조차 없는 늙은 기장이 웃으며 말한다.

"내겐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 그리고 적어도 태엽을 감는 동안은 내가 아무도 안 죽였잖아? ㅎㅎ"

완벽한 조종사란 없다. 그래서 판단이 안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이 안정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가 있다.

이제 시계 밥을 줄 아날로그 시계가 칵핏에는 없으니, 난 이런 때 무얼 해야 하나.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시면서 생각이라도 해볼까?



작가의 이전글 기장이 승무원들을 대하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