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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홀로 남은 섬

웨이크 아일런드

괌의 엔더슨 미공군기지를 이륙한 C-130 허큘리스는 이제 5시간째 망망대해 남태평양 상공을 침로를 동쪽으로 잡고 비행 중이다.


현재 고도는 25000피트. 온통 검푸른 바다와 그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 그리고 중간중간 둥둥 떠다니는 한없이 달콤할 것 같은 마쉬멜로우 구름들,


그리고 그 아래, 그 구름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마치 퀼트의 여러 조각들처럼 바다 위에 듬성듬성 흩뿌려져 있다.


4발 터보프롭 항공기의 적정 순항고도는 쌍발 제트 민항기보다는 훨씬 낮다. 고고도로 비행을 하였다면 피했을 대기권의 악기상 현상(CONVECTIVE WEATHER)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행계획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예보된 대로 가끔 조우하는 거대한 뇌우 구름만 중간중간 회피하느라 기동을 했을 뿐 30여 명의 크루를 태운 허큘리스는 순항 중이다.


장거리 비행을 위해 모든 창을 커튼으로 가릴 수 있도록 개조한 화물창에는 오로지 간간히 들어와 있는 희미한 통로 등만이 주변을 밝힐 뿐, 수송 기안은 4발의 강력한 PW엔진에서 뿜어 나오는 진동과 엔진 소음만 가득하다


소음으로 대화가 거의 불가능 하기에, 모두들 미리 지급된 EAR PLUG로 귀를 막은 채 5시간째 잠을 청하고 있다.


이윽고, 기장 이소령의 방송이 그들을 잠에서 깨운다.


“웨이크 아이런 드 착륙 한 시간 전, 크루들은 착륙 준비하십시오”


크루들이 착륙을 준비하는 사이, 허키(Hercky:허큘리스의 애칭)는 웨이크 아일런드로부터 서쪽 200마일 안쪽으로 들어 서고 있다.


지금까지 항법사 박대위와 같이 장거리 통신장비인 HF로 샌프란시스코 Radio와 교신을 진행 중이던 부조종사 김대위는 이제야 그간 동시에 유지하던 단거리 통신용 VHF 주파수를 123.45 AIR TO AIR 공용 주파수에서 웨이크 아일런드 OPS 주파수 128.0로 좌측 VHF에 바꾸어 선택해 두고 첫 교신을 기다리고 있다.


마음은 급하지만 아직까지는 지구 곡률로 인해 섬은 아직 전파가 도달하지 못하는 수평선 너머 그 아래에 잠겨있다.


이어 드디어, 100마일 약 180KM 내의 거리에 이르러서 첫 교신이 이루어진다.


“Good Morning, Ops, This is Korean Air Force000, Position 100 Nautical Miles West from Wake.”


미군 관제사의 목소리가 마치, 오랜 시간 손님을 기다린 집주인처럼 잔뜩 들떠 있다.


“Korean Air Force000, Welcome to Wake!!!,”


"You are Cleard to Land, Report West 50 Nautical Miles”
착륙을 허가합니다. 서쪽 50마일에서 다시 보고하세요.


100마일 이상 떨어져 입항하는 항공기에게 착륙 허가를 바로 내어주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아마도 이제는 이 외로운 섬에 들어오는 항공기가 많지 않을 것이기에 미국 락히드 마틴사에서 만든, 이 멋진 4발 엔진의 군 수송기는 별다른 의심 없이 웨이크 아일런드로 강하를 계속하고 있다.


이후 50마일에서 한번 더 교신을 수행한 뒤 이제 눈앞에 드넓게 드리워진 파란 남태평양의 넘실거리는 파도 위로 홀로 남은 섬 ‘웨이크 아일런드’와 그리고 그 섬 전체라고 부를 수 있을 하얀 활주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웨이크 통제실, 착륙 허가를 다시 확인해 주십시오”


활주로가 눈앞에 나타나자 기장인 이소령은 이미 20여분 전 받은 착륙허가가 조금 미심 찍었는지, 다시 부조종사에게 착륙허가를 확인시킨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상대 쪽에서 대답이 없다. 재차 이어진 시도에도 통제센터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할 수 없지. 이미 허가를 받은 것이니 그냥 착륙하자” 기장 이소령이 체념을 한 듯 말한다.


산호섬을 이룬 부스러진 하얀 조개와 산호가루로 만들어, 눈부시게 하얀 활주로에 짙은 초록색 허큘리스가 사뿐하게 내려앉는다.


항공기의 터보프롭 엔진에서 내뿜는 굉음이 섬 전체를 울리는 사이 어느새 주기장 한쪽 BASE OPERATION 정면으로 허큘리스가 미끄러지듯 들어서고 있다
.
다행히 항공기의 주기 위치를 안내하기 위한 유도요원이 벌써 나와서 신호를 하고 있다. 유도 신호에 맞추어 정확한 위치에 정지한 허큘리스의 엔진이 하나씩 꺼진다.


이곳에서 항공기는 연료 제급유만 마치고 약 2시간 후에 바로 이륙 해 다음 기착지인 하와이 히캄 미 해군기지에 오늘 밤 자정 즈음에 착륙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항공기의 측면 DOOR가 먼저 열리고 후면의 RAMP DOOR가


‘끼니가~’


특유의 유압모터 소리를 내며 수평으로 내려와 바닥에 닿자 승무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 중 일부는 이 섬에 수 차례 와본 적이 있는 부사관들로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바삐 달려간다. 그들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다. 마치 놀러 나선 아이들처럼 모두가 신이 나서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활주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을 향해 달려가기 바쁘다.


그 사이 기내에 항공기를 유도하던 유도요원이 올라온다.


“정말 반갑습니다, 웨이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부기장 김대위가 인사를 받고는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질문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착륙 전 약 10마일에서 착륙허가를 확인하려고 통제실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더군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그가 연신 싱글거리면서 답을 한다.


“당연하지요”


“제가 여러분을 마중 나와 있으니, 대답을 해줄 수가 없지요. 흐흐흐”
“아니, 그럼 아까, 착륙 허가를 주신 분이?”


“예, 접니다. 제가 착륙 허가도 주고, 이렇게 주기장에 들어서는 여러분을 유도도 하고, 이젠 여러분의 허큘리스에 급유도 해야 하지요. 아 그리고 비행계획서도 시스템에 올려야 하니깐 급유를 마치게 되면 처리하게 준비한 비행계획서를 주세요. 먼저 연료를 얼마나 채워드릴까요?”


분명 이 사람은 사람에 굶주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크루들과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나누어 보려고 급유 중에도 계속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잔뜩 들떠 수다를 떨고 있는 이 직원은 미공군 소속 군무원으로 하와이의 집을 떠나 한 두 달에 한 번씩 이곳에서 교대를 하며 외로운 섬을 혼자 지키고 있다. 지난 한 달 사람이 정말 그러웠다고 연신 그가 엄살이다.


급유가 진행 중인 동안 크루들 일부는 해변으로 일부는 운항실을 구경하기 바쁘다.


운항 실내에는 웨이크 아일런드의 1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사진 자료며 길이가 족히 3미터는 넘어갈 것 같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왔을 것 같은 이젠 박제가 된 거대한 황새치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웨이크 아일런드는 2차 세계대전과 가까이는 베트남 전쟁까지 미 해군과 공군의 폭격기들이 중간 급유를 하던 전략 요충지로 하와이와 괌 사이의 위치한 작은 섬이다.


지금은 예전의 영화를 뒤로하고, 전략핵미사일 기지만이 섬의 반대쪽에 위치할 뿐 섬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는 활주로에는 한 달 내내 거의 착륙하는 항공기가 없을 정도로 한산하다.


그때 갑자기 조종사와 남아있는 크루들이 대기 중인 운항실 밖이 시끌벅적해진다.
조금 전 해변으로 달려갔던 항공기 특기 정비사와 승무원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들은 허큘리스의 장거리 항법비행에서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특정 계통 결함을 대비해 이번 훈련에 동승해 있다.


‘참치다’
'게다가 크기가 거의 1미터에 육박한다.'


이들 다 큰 소년들이 해변으로 달려가, 그사이 약 30분 만에, 낚시로 그것도 크기가 1미터가 넘는 참치를 잡아 돌아온 것이다.
다들 이 운 좋은 낚시꾼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대물을 건져 올린 기체 항전 계통 담당 정비사 한상 사는 마치, 개구리를 처음 잡은 어린아이 마냥,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교만(?)한 웃음을 뿌리고 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걸 어쩌지?’


'이제 급유도 마쳐 가고 이륙시간이 다가오는데 참치를 저 상태로 하와이까지 가져가면 분명 상할 텐데~ '


부질없는 질문인 것이 분명하다. 그사이 친해진 선임 상사 한 명이 슬쩍 내게 거든다.


“걱정 마세요. 정대위 님, 우리가 하와이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저 참치는 꽝 꽝 얼어있을 겁니다”


“예? 우리 항공기에 냉동고가 실려 있었나요?”


“물론 없지요. 흐흐흐”


어떻게 지금 막 잡은 참치가 냉동참치가 되는지 알 길이 없는 나는 다시 8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하와이 히캄 기지 숙소에서 그날 밤 냉동된 참치가 사시미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다.


모든 크루가 달려들어서 겨우 반 정도를 먹었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성인 30명이 이 한 마리를 못 먹다니….


어떻게 참치가 냉동고 없이 허큘리스 안에서 냉동이 되었는지 궁금해하실 줄 안다.


C130 조종사가 아니었던 내가 추측하기에 참치는 아마도 기내가 아닌 분명 기체 밖 어딘가에 매달려 8시간 동안 영하의 기온을 견디며 냉동되었을 것이다.


나는 허큘리스 어디에 그런 공간이 있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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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답을 찾았습니다. 허큘리스 램프 도어 상단부에 외기온도만큼 금방 냉각되는 찬 공간이 존재한답니다. 액체산소가 아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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