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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03. 2020

김해공군기지의 호랑이 발톱나무

아직도 이 나무가 살아남아 있다니 우선 놀라웠다. 그것보다도 아직도 이 일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나 자신도 오랫동안 꼭꼭 잊으려 묻어둔 이야기인데.


1998년 봄 해작사에 파견된 공군 연락장교로 김해 5 전비 33-3호 관사에서 진해 해작사로 차로 출퇴근을 하던 때였다. 그해 나는 갓 결혼을 한 신혼이었다. 아침마다 차를 몰고 국도를 따라 지루한 통학을 시작한 지 몇주 되지 않아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처음 며칠은 가던 길을 멈출 수가 없어 그대로 지나가다 하루는 급기야 길가에 차를 세웠다.

한창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인 국도에 코앞까지 밀고 온 공사차량들 앞에 더없이 싱그러워 보이는 정원수 밭이 위태롭게 펼쳐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적어도 수천 그루에 이르는 정원수들이 며칠 사이로 옮겨지지 않으면 불도저에 밀려 나갈 상황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내 머릿속에는 왠지 '나무들이 밭 주인과 건설사간에 서로 협의가 잘 안되어 아직까지도 저렇게 위태롭게 남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차를 세운 것은 그 밭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상심한 얼굴로 밭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밭가에 세우고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이쁜 나무들이 곧 잘려 나가야 하는 건가요?"

군복을 입고 있던 내게 그는 전혀 경계심 없이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형편없는 보상가를 제시해서 협상이 결렬되었어요. 이제 어쩔 수 없이 오늘내일 사이로 모두 불도저가 밀어 버린답니다. 자식 같은 나무들 때문에 요즘 잠을 못 이룹니다."

"저 그러시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제가 김해 공군부대에 근무합니다. 혹시 이 나무를 저희 부대에 기증하시면 어떨까요? 저희는 지금이라도 당장 트럭을 가져와 나무를 김해 공군부대 내에 옮겨 심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분은 잠시 망설임도 없이

"그래요? 잘 됐습니다. 저도 이 자식 같은 나무들이 뿌리가 뽑혀 죽어가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고요. 그럼 언제 오실 수 있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 당시 나는 초임 대위였다. 초임 비행대대 대위가 비행단 시설대의 트럭을 불러다 수천 그루의 나무를 기지에 옮겨 심겠다고 나선 당돌함이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우선 당시 기지전대장이셨던 신승덕 그 당시 대령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때 난 비행단내에서 미군과의 통역을 하고 있었기에 공식 행사에서 자주 뵐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중에 장군이 되시어 5 비 단장을 하셨던 이분은 평상시 기지 내 조경에 관심이 많으셨고 나무를 끔찍이 아끼시는 분이셨다. 기지 전대장 대령이심에도 총각 장교 숙소인 BOQ에 위관장교들과 같이 지내셨던 이분이 가끔 달이 밝은 밤이면  야심한 시간에  달 빛 아래 진검을 휘두르며 검도를 수련하신 일화는 유명했다.


하루는 이분이 당신의 참모들을 모아 놓고 하신 말씀이

"태풍이 와서 나무가 자꾸 넘어간다고 나무 머리를 치겠다는 놈이 또다시 5 비에 있다면 내가 그놈의 머리부터 치겠다" 하셨던 분이다.

아마 이런 분이셨기에 내가 당돌하게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오 그래? 잘 됐다. 내가 시설 대대장을 불러 그곳에 보내 쓸만한 나무인지 보고 정대위 네 눈이 맞다면 내일 전장병을 동원해서라도 바로 실어오도록 하마."


그렇게 해서 그 다음 날 바로 시설대대의 12톤 대형 트럭에 수천 그루의 정원수들이 진해 국도변에서 김해기지로 수송되었다. 일사 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물론 해작사에 파견을 나간 상태로 이후 나무를 뽑고 옮기고 다시 기지 내 도로변에 심는 일에는 전혀 손을 보태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두 달 후에 부대로 복귀한 후에 벌어졌다.

"야 ~ 그게 너냐? 너 이리로 와. 일단 좀 맞자."

만나는 선배들마다 다짜고짜 꿀밤을 때리기 일수였다.


이유는 그 멋진 정원수가 사실은 맨손으로 만질 수 없는 '호랑이 발톱나무였기 때문이다. 일반 장병뿐만 아니라 비행대대 조종사까지 모두 동원해 하나하나 기지 도로변에 심어야 했으니 심으면서 도대체 누가 이 일을 벌였는지 궁금했으리라. 어느 날 사정을 전해 듣고는 내가 부대로 복귀하기를 기다렸던 선배들이 점심시간 장교식당에서 마주치면 장난기 가득한 발길질에 해드 락에 한동안 피해 다녀야 했던 웃픈 일화다.


이후 안타깝게도 많은 장병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매립지 땅에 옮겨진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갔지만 일부는 살아 남았다.


진해 해작사 군항제 이야기를 쓴 댓글중에 아직도 이 일을 기억하시고 계신 선배가 있어서 놀라웠다. 어쩌면 나의 '흑역사'라서 글로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텐데, 용기를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

혹 지금도 김해 공군 기지 내에 이파리가 삐죽삐죽 나온 호랑가시나무가 보인다면 그 일을 벌인 당돌한  이가 28살 정 대위였음을 이제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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