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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06. 2020

조용한 봄 그리고 텅 빈 하늘

내가 사는 곳은 두바이 공항에서 불과 10여 킬로 정도 떨어진 사막에 둘러 싸인 한적한 빌라 컴파운드다.

빌라의 2층에 올라가 북쪽으로 난 창이 있는 아이의 방에 들어서면 이웃들의 빌라 너머로 오늘처럼 시정이 좋은 날에는 버즈 칼리파와 두바이 다운타운의 마천루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사이 남풍이 불어오는 날이면 공항에서 우리 집이 있는 남쪽 방향으로 비행기들이 줄지어 이륙을 한다.

어떤 날에는 대서양을 넘어 미국과 캐나다 북미 대륙으로 향하는 승객을 가득 태운 거대한 380들이 줄지어 머리 위를 지나간다.  양쪽 날개에 연료를 가득 채워 777을 몰고 그 옆에서 2층 구조의 380을 지켜보면 지상에서조차 움직임이 둔하다. 이 가장 크고 무거운 여객기는 이륙 후에도 쉽사리 고도를 올리지 못한다.


상승률이 떨어지는 현상은 온도가 높은 여름에는 더욱 두드러진다. 사막의 열기로 인해 밀도가 낮아진 대기가  엔진의 성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날에는 통상 장애물 회피를 위해 필요한 고도를 취할 때까지 초기 선회에 들어가지 못한 채 한참을 헤딩 변화 없이 직진 상승해야 한다.  이렇게 비행경로가 길게 늘어지다 보면 마침내 내가 사는 곳까지 380이 날아오게 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느 날은 배 바닥의 빨간'Emirates' 로고를 여전히  선명히 식별할 만큼 고도가 낮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잠시 부엌의 창을 열어 두었던가 보다.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어 학교에 가지 않는 아들이 벌써 며칠째 여덟 시를 넘은 시간임에도 아직 위층 제방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이패드를 켜고 '다음'의 기사들을 하나씩 열어 밤사이 한국의 소식을 읽고 있었다.


그때 문득 열린 창 사이로 익숙한 A380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왼손에는 읽던 기사가 펼쳐진 아이패드를 그대로 든 채 나는 열린 창쪽으로 잠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다가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에미리트의 380은 지금 모두 엔진에 빨간 보호 치장을 싸우고는 일부는 두바이에 다른 일부는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알 막툼 공항에 옮겨져 있다.  다시 비행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던 터였다.

내가 마지막 비행을 마친 지난 3월 26일 새벽 한 시 이후 어제까지 나는 하늘을 단 한대의 비행기도 보지 못했다.  380 정도의 항공기가 최대 이륙중량에 맞추고 이륙한 것이 아니라면 이곳까지 미칠 수 없는 일이다.


창쪽에 다가가 급히 고개를 숙여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일이 바보스러운 착각임을 깨닫는 데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원을 붉게 물들인 '보건빌라' 꽃나무 너머로  트럭 한 대가 거친 엔진 소음을 내며 불쑥 모습을 드러내더니 길가에 내어 놓은 재활용품 컨테이너를 하나씩 제 괴물 같은 제 입속에 털어 넣고는 녹색 빈 컨테이너만 그 자리에 남겨두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늘은 어제처럼 창밖에 파란 하늘이 비행하기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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