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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17. 2020

지금의 나는 존경할 대상이 아닙니다.

종종 어린 독자들이 말을 걸어온다. 일일이 응대해주다가는 감당 못할 일인 것을 오래전에 깨달았기에 가끔은 짐짓 모른 척, 못 본 척, 바쁜 척 넘어가기도 하다가도 어느 날은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몇 마디라도 대화를 나눈다. 이들 어린 학생들은 대게 간단하지만 비행과 관련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간단히 대답을 하면 대게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즈음에서 양해를 구한다. 이들의 호기심이 끝이 없기에 대화가 언제 끝나게 될지 몰라서 앞으로 붙잡힐 나의 시간이 두려워서다.
학생들에게 어렵게 양해를 구하면 바로 이해하는 눈치다. “이렇게라도 대화해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기장님처럼 언젠가 에미리트의 훌륭한 기장이 되고 싶습니다.”

이 얘기를 들을 때 속이 뜨끔하다.
그 훌륭한 에미리트의 기장이 조금 전까지 아래층에서 고양이 꾸름이와 숨바꼭질을 하다 올라왔는데. ㅎㅎㅎ 난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

그럼에도 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한다. 내가 지금이라도 김홍신 작가나 김훈 작가 아니면 허드슨 강의 영웅 슐렌버그 기장과 대화할 기회가 있다면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신 이점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존경할 이유가 내가 단지 에미리트의 기장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희소성 때문이라면 정작 본인인 나는 불편하다. 캡틴 제이는 이제 평범한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이고 가정에선 평범한 가장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겉에 보이는 타이틀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 오르기까지 지나쳐왔던 과정이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연스럽게 한 단계 한 단계 계획된 듯 엘리트코스를 밟았다면 사실 그런 사람의 삶은 부러워할 대상은 될 지연정 존경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학생들이 존경해야 할 ‘시간적 시점’은 사실 지금 고양이와 놀아주는 현재의 캡틴 제이가 아니라 오늘이 있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과거의 가난했던 학생 정인웅과 군인 정인웅 그리고 부기장 정인웅이어야 옳다.

지금 나는 고양이와 아내 그리고 아들과 같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격리된 빌라에서 보름째 갇혀 지내며 하루에 100바퀴씩 거실과 주방을 다람쥐 같이 걷는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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