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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01. 2020

리더의 결정

직원의 사기를 어떻게 올려줄수 있을까



코로나로 국제선 여객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자 항공사들은 결국 승객용 민항기에 화물만을 실어  반쪽짜리 운항을 시도하고 있다.

에미리트항공에서도 하루 평균 60편의 승객용 777-300ER 기종이 화물기로 운영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상에 묶어두기보다는 객실은 텅 비었을망정 아래층 카고 베이를 가득 채운 화물 운송수입이 그나마 숨통을 터주고 있다.

이런 운영을  Belly Cargo Operation 또는 Belly Freighter라고 부른다.

이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에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미리 고려되어야 했다.

승객이 없이 조종사만 탑승하는 민항기에 조종사에게 식음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겔리의 오븐이나 장비 등을 조작할 객실 승무원을 태워야 하느냐에 대한 결정이 우선 필요했다.

화물기 777-200F와 여객기 777-300ER은 크기나 카고 베이의 구조등에 차이가 있다. 그것에 추가해 음식을 조리하는 겔리도 화물기와는 달라 조종사들에게 추가 교육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객실 승무원 한명을 탑승시켜 조종사들을 보조할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생각을 바꾸어 매 비행마다 객실사무장급 승무원이 먼저 항공기에 도착해 필요한 셋업을 마치고 조종사에게 겔리 운영에 대해 대면 브리핑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른 객실 승무원들은 모두 일이 없이 자택에서 쉬고 있는 와중에 혼자 출근해서 비행기를 돌아가며 자칫 조종사들을 위한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인식이 들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누가 이일을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꼭 사무장일 필요는 없다.  겔리 운영 경험이 있는 FG 1(일등석 담당 크루) 또는 CABIN Supervisor라고 이곳에서 불리는 부사무장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Belly Cargo Operation을 위해 항공기에 도착해보니 스탠더드 유니폼 오피서 Standard Uniform Officer가 이미 나와 셋업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객실 사무장급에서도 특별히 선발된 엘리트 캐빈 승무원들이다. 평상시 SUO의 업무는 객실 승무원들에게 유니폼 착용과 관련한 관리 감독업무를 맞고 있는 최고참 시니어들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프로의 기품이 늘 빈틈이 없이 완벽하고 철저하다.

모래를 상징한다는 일반 승무원의 베이지색 유니폼이 아닌 짙은 갈색의 품위 있고 단정한 옷매무새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겠지만 이들의 외모에서는 언뜻 나치 SS 장교 같은 엘리트의 품격이 느껴진다.

리모트 주기장에 우리를 실은 크루 수송용 콤비 버스가 도착하자 부기장과  나는 곧바로 이 대형 777의 조종실을 향해 약 지상에서 5미터 가까이 되는 계단 차를 조심스럽게 밟고 올라가 조종실 바로 뒤 L1 출입구로 들어섰다.
이미 도착해 있던 두명의 아프리카 출신 건장한 보안요원들과 인도인 미케닉 Mechanic 정비사, 그리고 그들의 뒤로 한눈에 시선을 압도하는 Standard Uniform Officer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첫 인사를 건낸다.

"기장님 안녕하세요. 모든 준비는 끝났고 기장님이 편하실 때 브리핑을 드리겠습니다."

칵핏에 비행 가방을 들여놓고 기본적인 사항만 둘러본 이후에 바로 객실로 나왔다. 그녀의 브리핑이 지금 가장 급하다. 그래야  그녀가 다음 항공기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점심식사로 실린 메인 메뉴에 대한 설명과 음료수들을 일일이 보여주고 한눈에 보기에도 도저히 두 명이 결국 반에 반도 끝내지 못할 것 같은 과일과 빵들이 가득 담긴 카트를 열어서 보여준다. 정성스럽고 조심스런 손길로 하나씩 반쯤 트레이를 당겨 내어 보여주고는 다시 밀어 넣고 카트의 문을 닫은 뒤 터뷸런스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빨간색 카트 고정 나브를 아래로 돌려 내려 고정을 하는 솜씨가 간결하고 야무지다. 이어서 꽁꽁 얼어있는 메인 메뉴를 해동하기 위해 사용할 오븐의 작동법을 설명하고 오븐 글러브가 보관된 위치를 가리키며 

"오븐 글러브는 사용 후에 반드시 이 위치에 놓아주세요. 실수로 하기(가지고 내린다는 표현) 되지 않도록 해주시고요. 세척 및 교체는 케이터링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몸을 돌려 반대편 카트들을 열어 보이며 실려 있는 손세정제와 장갑 Ear Plug 귀마개,  심지어 생리대와 인공눈물까지 꼼꼼히 들어있는 일반물품 카트를 설명하는 것으로 겔리 브리핑을 마치곤 그녀가 익숙한 첫 질문을 던졌다.

"기장님  음료수를 어떻게 준비해 드릴까요?"

나는 속으로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제차 물었다. 그제야  생각을 바꾸어.

 "애플 주스에 얼음을 채워주세요."

그러자 그녀가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또 다시 질문을 한다.
 

"커피도 준비해 드릴수 있어요. 어떠세요. 지금 커피 내려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고집 센 그녀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아니요. 어떤 커피를 원하시는지 말씀하시면 바로 브루 Brew 해 드릴게요."

"그러면 블랙커피에 우유 약간만 넣어주세요."

그녀가 흐뭇하다는 미소를 짓더니 곧바로 미리 꺼내어둔 은색 브루 커피 봉지를 열고는 안에 있던 커피 파우치를 브루잉 캐틀 주전자 위의 검은색 사각형 틀 안에 넣고는 작동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칵핏에 돌아와 셋업 Set up에 열중인 우리에게 그녀가 커피와 애플주스를 하나씩 각자의 좌석 7시와 5시 방향 컵 홀더에 끼워 넣어주고는 마침내 그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기장님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갈게요. 안전한 비행되십시오."

그녀가 내려간 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나도 그즈음에서 외부 점검을 위해 노란 형광조끼를 코트룸 위의 보관함에서 꺼내 입고는 늘 미리 바지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던 이어 플러그를 꺼내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는 가볍게 비비자  끝이 가느다랗게 말리며  귀에 하나씩 밀어넣기 좋은 크기가 되었다. L1 도어 계단 쪽으로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마치 항공모함의 데크에서 곧 출격할 전투기를 준비하는 듯한 분주한 지상직원들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계단을 내려가려다 순간 계단 아래에 아직 떠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4월 말의 두바이는 이제 막 아침 9시를 지난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사막의 열기가  콘크리트로 포장된 리모트 주기장의 온도를 섭씨 영상 35도 이상으로 빠르게 달구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열기를 피해 차안에 있다.

검은색 BMW의 뒷자석에 차분히 앉아 손안에 들려 있던 테블렛을 내려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평상시 리모트 주기장에 도착한 항공기에서 VIP를 직접 모시기 위해 운영하는  BMW 최상위 등급의 검은색 세단의 뒷좌석에 그녀가 반듯한 자세로 앉아 다음 일정을  확인하는지 차분히  손가락으로 스크롤하는 모습이 창을 통해 비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사가 딸린 이 검은색 BMW는 우리가 콤비 버스를 타고 리모트 주기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항공기 옆 스텝 카 Step Car 계단 차 옆에 주차되어 있었다.

기사가 딸린 이 차의 쇼퍼 Chauffeur 운전사가 오늘 모셔야 하는  VIP는 벨리 카고 오퍼레이션을 위해 조종사들을 지원하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스탠더드 유니폼 오피서다.  

문제는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다.

일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킬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가장 직급이 낮은 그레이드 투 Grade 2 승무원들에게 돌아가며  이 일을 맡겼다면 어땠을까?
평상시 객실 승무원들이 이용한 것과 똑같은 오늘 내가 타고온  커다란 콤비버스를 배정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캐빈 승무원들은 이 일을 하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시선을 바꾸어, 그 상황이 벌어졌다면 기장인 나는 어떤 마음으로 나의 크루를 바라보았을까?

VIP용 의전차량을 이용해 항공기를 오가며 조종사들을 지원하는  스탠더드 유니폼 오피서를 바라보며 

매니지먼트 안에 누가 결정한 것인지 모르지만 '참 에미리트 답다'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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