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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07. 2020

SOLO

비행훈련을 마치고 대대에 갓 부임한 막내 조종사들 중에는 비행면허를 자동차 면허보다 먼저 따고 온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부임 후 6개월간의 초기 기종 및 작전가능 훈련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관심은 자동차 면허를 따는 일에 쏠리게 된다.

사회인들처럼 퇴근 후에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할 수 없는 메인 몸이다 보니 나름대로 부대 안에서 쉬는 날이면 비오큐 BOQ(독신장교 숙소)에 같이 생활하는 선배들의 차에 눈독을 들이고는 몇 날을 아양을 떨어서 한두 번씩 기지 내 넓은 공터로 몰고 가 개인 강습을 받곤 했다.

조종사 채면에 오토로 면허를 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중위들은 가급적 아직 매뉴얼 기어를 장착한 선배를 노렸다.

새 차이건 헌 차이건 모두 소중한 차이니 이들 생초보 후배들에게 차를 맡기는 이들의 심정이야 피가 말랐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들 그렇게 배우는 것이 전통이 되어 버린 것을.

기어를 바꾸며 액셀과 클러치를 익숙하게 조작하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고 순간순간 RPM이 3000에서 4000까지 치솟을 때마다

"아..... 아이고 쫌.."을 외치면서도 후배들의 운전연습을 마지못해 따라나서 주던 선배들의 마음이 지금도 고맙기만 하다.

조종사라고 자동차 운전을 바로 잘하라는 법은 없다. 주말에 나가 면허 시험에 떨어지고 오면 월요일 아침엔 바로 대대에 소문이 돌아서 지나가는 선배들 마다 작전계 앞에서 한 마디씩 하곤 여꾸리를 찌르고 도망간다.


"조종사가 되가지고 운전면허를 떨어져야? 나가 죽어!" ㅋㅋ


그렇게 막내들이 하나 둘 운전면허를 따오면 그다음엔 비행단 실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같이 기지 외곽도로를 달려보기도 하다가 급기야 어느 정도 매뉴얼 스틱에 익숙해지면 비행기처럼 솔로를 치루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작전장교가 비행대장의 차키를 불쑥 내민다.

"잘할 수 있지? 런웨이 컨트롤 Runway Control에 대대장님께 이거 가져다 가져다 드리고 와!  눈치껏 민항기 잘 피하고."


이렇게 비행대장의 흰색 엑셀 1.3을 얻고는 조심스럽게 대대 주차장에서 후진을 하고 파워 스티어링도 안 들어 있는 생 매뉴얼 휠을 낑낑거리며 돌리며 간신히 간신히 기어를 바꾸며 덜컹거리는 FOD 제거용 철판 위를 지나 라인 안쪽 C130과 CN235가 주기된 방호벽들이 둘러싼 램프를 지나 속도를 올리며 택시 웨이로 들어서면 탁 트인 활주로에서 갓 베어 넘긴 풀 냄새가 차 안으로 훅 하고 밀려 들어온다.

택시 웨이로 진입하기 전에 혹시 마주칠지도 모를 민항기들이 있는지 슬쩍 한번 내다보고는 이제부터는 3단 4단 최대로 액셀을 밟아 런웨이 컨트롤 코앞에 까지 다다를 때까지 레이싱을 즐긴다. 그리고 작은 컨트롤 타워처럼 생긴 런웨이 컨트롤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진입을 하며 주차된 차들 중에 단장님의 빨간 별판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게 살피곤 다행히 대대장님 차 한 대만 있는 것 확인하곤 신이 나서 바로 옆에 세워두고 주차 브레이크를 당겨두고 내리고서는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가 중위다운 박력 있는 경례를 붙이고는 물건을 건네고 다시 돌아 나오는데 대대장님이 한마디를 건넨다.

"솔로냐?" ㅋㅋ


대대장님도 면허 따고 처음 비행 대장차를 몰고 온걸 어찌 알았는지 씩 웃어 보이며 농담을 건넨다.


그렇게 다가와 대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시동을 끄고 파킹 브레이크를 잡아 올리려는 순간 그때 깨닫는다.


이런 파킹 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달렸다.


살금살금 들어와 키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조용히 편대 방에 들어가 완전 범죄가 되기를 기다린다.


그날  저녁 전체 브리핑을 마치고 비행대장이 방에 들어가다 말고 돌아서서 작전장교를 향해

"작전장교!"

"예. 비행대장님"

"내 차에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까 내일 디오 DO(일직장교) 시켜서 수송대에 보내 점검 한번 받아봐. 이상하네. 내 코가 이상한가.."


이 이야기를 들은 작전장교 선배가 바로 막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뻥긋거린다.

"너 혹시... 파킹 브레이크....."


눈 한번 치켜떠주고는 바로 편대 방으로 후다닥..ㅋㅋ


그리운 선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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