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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08. 2020

내가 본 최고의 비행기 창

오래전 대전의 충남도청 근처에  ‘창’이라는 이름을 가진 커피숖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피숖은 지하에 있었고 그 안엔 실제 창이 없었다.  다만 창호지를 바른 창 모양의 장식 뒤편에 등을 달아 아득한 빛을 발하던 따뜻한 공간이었다.


창이 없는 여객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비행을 즐기는 것은 새처럼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창가가 아닌 복도 좌석 보딩패스를 쥐어주면 우린 여전히 아이처럼 바로 우울해진다.  고고도 35000피트 이상을 날게 되는 비행 중 대부분 시간은 사실  객실 창을 열어둘 수 없을 만큼 바깥은 너무 밝다. 주변에는 상대속도를 비교할 대상도 변변히 없어서 시속 1000킬로미터로 비행한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저 아래 땅위의 사물들은 아주 느리게 변화한다.  고도를 낮추어 구름이 날개 끝을 스쳐가듯 해야 비로소 비행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에미리트의  최신 기종 B777-300ER의 일등석 중앙 좌석은 본래  양쪽 창문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일등석임에도 창밖을 바라볼 수 없는 위치이지만 LED 모니터를 넣은 창을 달아 비행 내내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실제 창과 동일한 크기와 재질 그리고 훌륭한 해상도의 모니터로 인해 실제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해서 승객들의 호응이 높다.


승객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민항기의 좌석중 최고의 전망은 전면에 위치한 조종석이다.  3면이 탁 트인 조망에  1등석 좌석에는 비길바가 못되지만 그래도 뒤로 눕힐 수 있는 조종석 좌석을 뒤로 한껏 젖히고 손을 머리 뒤로 돌려 깍지까지 낀 채 노을과 해돋이를 감상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이렇게 훌륭한 공간을 조종사에게 빼앗긴 일등석 승객 입장에선 안타깝기 그지없을 것이다.

당연히 오랫동안 최고의 조망을 가진 특별한 일등석을 만들어 판매하려는 항공사와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사진처럼 동체의 상부에 돌출된 전투기의 캐노피 같은 좌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돌출된 유리 구조물로 조류충돌 시 견디어 낼 충분한 강도가 보장되어야 하고 자체 항력의 증가로 대략 0.3% 정도의 연료가 더 소모될 것을 감수해야 한다.


역사상 이런 돌출된 윈도는 이미 특수 목적 군용기에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2차 세계 대전중 B29의 기총수들이 들어가 있던 건 터렛 Gun Turret이  그러했고 지금도 AC-130 건쉽 일부 기종에는 동체의 양측면과 항공기의 꼬리 부분 램프 도어의 바닥에 직경 1미터가량의 둘출형 관측용 유리돔이 장착되어 있다.

이 공간은 작전중 후방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대비하는 관측 창으로 왼손에는 체프발사기 스위치를 그리고 반대편 손에는 플레어 스위치를 쥐어들고 하니스Harness 로 몸을 단단히 고정한 채 상체 거의 대부분은 동체 밖으로 내민 상태에서 후방을 감시하던 전자전 오피서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다. 진행방향의 뒤를 360도  조망할 수 있고 여압이 되지 않는 항공기라 언제나 1만 피트 이하의 그리 높지 않은 고도를 비행하느라  상대적 속도감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4발 터보 프랍 엔진에서 뿜어내는 회색 배기가스 콘트래일 Contrail 배기가스 구름을 지켜볼 수 있어 마치 하늘을 나는 은하철도 999의 맨 마지막 객차의 끝에서 바라보는 듯 하다. 멀어지는 풍경과 네 줄의 철도 레일같은 배기운은 비행기임에도 기차같은 아련한 느낌을 준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비행 전망은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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