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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08. 2020

크루밀의 왕 비빔밥

비행 중에 크루 밀로 실리는 식사의 종류는 어느 항공사나 이코노미 클래스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치킨, 비프, 파스타 정도다. 대한항공 같으면 이것에 추가해 만인이 사랑하는 비빔밥이나 정말 마음씨 좋은 크루와 만나면 라면도 제공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위기상 먼저 말을 꺼내기는 힘들다.


서양 문화인 에미리트에서는 기장과 부기 장간에 영어로 칵핏 그레디언트 Cockpit Gradient(힘의 기울기)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비행을 하는 PF(Pilot Flying)이 먼저 메뉴를 선택할 권한을 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유유서의 아름다운 전통을 존중해 부기장은 기꺼이 기장님이 먼저 고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루는 아주 선임 할아버지 기장님께서 비행을 하다가 한숨을 푹 쉬시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난 그런 성질 더러운 노땅 기장이라고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아서 부기장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거든, 정기장도 그거 잘 알지?"

"아, 예 기장님 기장님만 같으시면 시알엠 CRM(Crew Resource Management) 교육 그런 거 필요 없죠.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화가 나서 못 참겠네. 자 한번 들어봐 내가 이상한 건지 말이야. "


"내가 비행 중에 젊은 부기장에게 큰 맘을 먹고 메뉴를 먼저 고르라고 양보를 했어. 사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한식을 먹고 싶었거든. 비빔밥을 먹고 싶었지만 늘 내가 고르면 부기장이 이걸 못 먹을 것 같아서 그날은 몇 번을 양보한 끝에 부기장에게 먼저 고르게 했지."


"훌륭하십니다. 기장님. 그래서 부기장은 뭘 골랐나요?"

"음. 나의 예상대로 한식 비빔밥을 고르더군. 흐뭇했어. 역시 내 예상대로 젊은 친구들도 한식이 그간 얼마나 먹고 싶었겠나? 기장이 늘 먼저 고르니 먹고 싶다고 말을 못 한 거지."


"그런데, 흐뭇한 미담인데 뭐가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기장님."

여기서 노 기장님은 지금도 화가 나서 못 참겠다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아 이 친구가 글쎄 두 세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는 수저를 던지다시피 내려놓으면서 이러는 거야 글쎄."


"아이씨, 이걸 밥이라고."


"아 내비빕밥. 그 녀석 목을 조르고 싶더라." ㅠㅠ


오늘 당신이 먹는 비빕밥은 누군가 양보한 것일 수 있습니다  결례하지 맙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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