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Jun 07. 2020

불편한 이야기

불편한 이야기 

20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에 들어가 보니 그곳에서는 비행훈련 중에 구타가 당연시되고 있었다.

조종학생들이 쓰고 다니는 대대 모자  아래에는 사선으로 넉줄을 긋고 횡으로  줄을 위에  그어 5 뜻하는 심벌들이 그려져 있던 시절이다. 어느 어느 대대는 100대를 넘어갈 즈음 수료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돌던 시절이다. 장교식당에 들어가기  조종학생들이 나란히 벗어둔 모자를 짓궂은 교관들이 하나하나 들춰보던 시절이다.

공군 비행훈련에서의 구타는  당시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통과의례 또는 필수적인 의식 같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사관학교에서도 선배들이 훈육의 목적으로 4 내내 후배들을 불러내 줄빠따를 치던 시절이니 비행훈련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반대하는 이도 있었고 찬성하는 이도 있었지만 중대장의 지시하에 모든 교관들이 돌아가며 학생들을  빠따 치던 행사는 신참 교관들  누가 빠지고 싶다고 빠질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이다. 그렇게 정신줄을 놓지 않게 바싹  잡아 놓아야 솔로를 나가서 넋을 빼고 이상한 짓을 하지 않고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는 행위였다.

 지금 구타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어느덧   많던  구타가 공군 비행훈련에서 사라진  오래란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초등 훈련에서 어느 비행교수가 생도를 비행 중에 상습 구타해서 문제가 벌어졌다는 기사가 있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직도 저런 분이 비행교수를 하고 있었구나.'   공군은 이런 사람에게 후배의 비행교육을 맡길 생각을 했을까?

과거 비행훈련  채벌에는  가지 종류가 있다.

 

'어쩌다 파일럿' 공군이 사랑한 해군 조종사 편에 등장하는, 야구방망이를 사용한 '빠따' 순간 분을 참지 못하고 좁은 칵핏 안에서 직접 주먹으로 헬멧과 바이져 그리고 산소마스크로 단단히 둘러싼 학생의 안면부위를 활을 튕기듯 왼손을 오른쪽으로 접었다 스윙하며 얼굴 부위를 가격하는 '구타' 형태다. 교관과 학생이 어깨를 나란히 앉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Side by Side 항공기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앞뒤로 타는 과거 F5 같은 항공기에서는 조금 장난스러운 방법을 쓰는 교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뒤에 앉은 교관이 학생 쪽으로 노끈을 건네 학생의 목에 두르도록 하고 조작 중에 마음에  들면 당기거나 작은 나무 작대기를 가지고 , 앞에 앉은 학생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동기생  하나는 상습적으로 구타를 일삼는 교관과 비행을 마친  하루는 지상에서 마스크의 한쪽 후크 Hook 풀어내자 비행  마스크 안에 가득 고여있던 피가 조종복 위로 주르르 흘러내리더라며 분개하기도 했다.

이런 교관들의 폭력성은 사실 지나고 보니 별로 교육적이지 않았고 습관적이어서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도 못했다. 폭력성을 보이던 교관들은 지상에서는 이런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브리핑 중에도 자분자분 조용히 이야기를 하다가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캐노피가 닫히면 바로 본색을 드러내고 이성을 상실한다. 정신병적인 증상이다.

이에 반해 빠따에는 통제된 룰이 있었다. 중대장의 지휘를 받아 단체로 행사처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개별적으로 빠따를 맞는 경우도 두대 세대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조종학생촌에서 훈육관들이 가하는 개인 빠따였다. 내무반 생활중에 미귀 또는 늦은 귀영  문제가 발생했을  단체 빠따를 맞게 되는데 이때 훈육관이 음주를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음주상태에서 빠따를 쳤던  교관을  혐오하는 나를 발견한다.

 번은 중등 비행훈련 중에 착륙을 하고 보니  선차반 동기생이 주기장에서 대대로 돌아가는 교관을 따라 달려가 길을 가로막아 서는 것이 보였다. 학생이 교관의 앞을 막는다는 것은 비행 중에 매우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학생은 그간 곰발(비행의 감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은어)이라고 알려져 다행히 얼마  간신히 솔로를 나가긴 했지만 아직 근근이 비행훈련을 버티던 친구였다.  그가 교관에게 매달리며 무어라고 알아들을  없는 말을 읍소했지만 교관은 매정하게 그를 밀어 제치고 그대로 대대로 들어가 버렸다.

어깨를 떨구고  손에 헬멧을 담은 백을 힘없이 늘어뜨린  대대 장구반(헬멧과 낙하산을 관리하는 )으로 향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이 그의 마지막 비행이었다.

아마  동기생은 교관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빠따라면 얼마든지 치십시오. 그렇지만 제발 자르지만 말아주십시오. 교관님. 평생 이것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구타가 비행훈련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약 빠따가 정말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끝내 어쩌지 못하는 고질적 결함을 해결할 마지막 자극이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교관의 애정으로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습관적이고 감정적인 체벌과는 전혀 다른 경우다.

그런데 그런 학생이 과연 공군의 비행훈련에 입과는   있을까? 입과 했다면 그것이 이상한  아닐까?

결국 비행훈련 중에 존재했던 빠따와 주먹질은 이젠 정당성을 찾을  없는 지나간 구태이고 악습이다. 특히 비행훈련 중 발생하는 칵핏 내의 구타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퇴행이다. 자기 자식이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간단한 문제다.

작가의 이전글 문과 출신 조종사의 비행 공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