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가 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약 2억 원에 이르는 훈련비가 들어갑니다.
과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정작 마지막까지 항공사에 도달해 직업 조종사가 되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 걸까요?
공군 사관학교 입학시험은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죠. 그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사관학교를 입학한 후에 4년 후 졸업한 생도 중에서 마지막까지 조종사로 빛나는 은빛 조종 윙을 수여받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혹시 아시나요?
종종 매우 솔직한 대학생들과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원하지 않는데 부모님께서 조종사가 되라십니다."
이런 경우 저는 조언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그 길에 발을 들이지 마세요."
저의 이 조언을 듣고는 그 친구들은 무척 기뻐하는 눈치입니다. 분명 저와의 상담내용을 그대로 부모님께 보여주러 달려갔을 겁니다.
저의 글을 자식이 비행 교육에 들어가 있는 부모님이나 미래에 조종사를 만들고자 하는 부모님들도 많이 읽고 계신 것을 압니다.
오늘은 비행 훈련 뒤 마지막까지 에어라인 파일럿으로 남는 비율에 대해서 솔직히 저 역시 부모 된 입장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93년부터 1995년 봄까지 이어진 저의 공군 비행 훈련에서 처음 조종 특기로 임관한 소위는 19명 그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가슴에 윙을 단 사람은 5명이었습니다. 이 비율은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조종 장학생의 비행 교육 수료율이 지금도 40%에 조금 못 미칠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공군사관학교 생도들 역시 조종사가 되는 비율은 약 30에서 40%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자비 2억 원을 들여 시작하는 민간 비행 훈련에서는 어떨까요?
물론 자가용 면장 취득에 이르기까지의 수료 비율은 군과 비교해서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확한 수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적어도 제 예상에는 2/3 정도는 졸업한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냉정하게 들리시겠지만
이렇게 항공대학교를 나오거나, 미국에서 면장을 취득한 젊은 조종사 중에서 항공사에 부기장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역시 어디에도 공식적인 통계는 없습니다. 어제 같이 비행한 부기장과 이 부분 얘기하면서 저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약 17년 전에 그가 졸업한 애들레이드 항공대의 동기는 졸업 시 25명 남짓이었고 이들 중 지금까지 에어라인 조종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단 5명입니다.
지금도 이 비율에는 변화가 없으며 단지 졸업 정원이 이제는 120명에 이릅니다.
그러면 이들 졸업 후에 조종사로서 첫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이제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 된 그들에게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었을까요?
정말로 뛰어난 수재급의 조종사가 아니고는 200여 시간을 가지고 에어라인에 바로 CADET PROGRAM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길은 찾기 힘듭니다.
최소 1,000시간에서 2,000시간에 이르는 타임빌딩을 마쳐야 겨우 터보 프랍 정도를 탈 수 있는 항공사에 입사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가혹합니다. 한국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에서 운에 기대어 비행하기도 하고, 매트리스 한 장에 새우잠을 자며 항공사 취업을 위해 분투하는 조종사들이 아직도 전 세계에 부지기수입니다.
메디컬 문제나 공군처럼 무조건 수료율을 정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결국 Airline 조종사가 되지 못한 사람 중 안타깝게도 많은 비율이 사실은 이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 내지 못한 분들입니다.
간혹 목숨을 걸어야 하고 또 그 기간 눈물 젖은 빵을 씹을 각오가 아니라면 발을 들이면 안 되는 곳입니다. 이 기간 가드너나 목수로 버텨낼 수 있어야 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몸안에 비축한 수분만으로 10년을 버텨낸다는 저 아프리카의 바오밥 나무처럼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부모님의 돈 2억 원을 확률 20%의 갬블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이 시간을 견디어 낼 굳은 각오와 적성 그리고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 이 어려운 길을 끝까지 멈추지 않고 걸을 자신이 있습니까?
아니 말을 바꾸어, 당신은 지금 그 정도로 절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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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