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안정된 대기를 가르고 이륙하는 순간

by 캡틴 제이

파도가 없는 바다를 상상하기 어렵듯 미동도 없이 절대 안정된 대기를 만난다는 건 민항 조종사들에게는 아주 드문 일입니다.

특히 공항 근처의 기류는 이착륙하는 항공기들이 지나가며 만든 웨이크 터뷸런스로 언제나 어지럽습니다. 일 년 중 단 몇 번, 밤사이 바람이 잦아들어 미동도 없이 공기의 입자 하나하나가 차분히 내려앉고 게으른 겨울 태양이 아직 산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주위가 부스름 밝아오는 아침 일곱 시 즈음에 아직 아무도 흩트려 놓지 않은 지표면 바로 위의 대기층을 지날 첫 비행의 행운을 얻기도 합니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그 순간을 묘사합니다.

마치 밤새 조용히 눈이 내려 쌓인 뒤 이른 아침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눈밭 위로 눈썰매가 미끄러지는 느낌입니다.


이륙을 위해 굉음을 내며 거칠게 활주로를 내어 달리느라 흔들리던 기체가 “브이 알(VR 이륙을 위해 조종간을 당겨 이륙자세를 만드는 속도)” 콜 아웃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려 먼저 노즈 기어가 가볍게 지면을 떠나고 곧이어 엉덩이 뒤쪽 사납게 돌며 기체를 지탱하던 메인 기어 타이어들마저 거친 활주로 지면을 떠나 혼자 멋쩍게 헛돌기 시작하면


항공기는 이제 마치 아기를 감싸 안은 엄마의 포근한 품처럼 차분히 날아오릅니다.


이제부터 크림처럼 부드러운 대기가 양 날개의 에어포일 위아래를 부드럽게 가로지르기 시작합니다.


오직 양력만이 있을 뿐. 그 어떤 미동도 없이


지면 효과를 벗어나며 우리의 몸이 살짝 앞으로 밀리는 듯 싶다가 이내 확연히 상승을 시작합니다.


“기어 업 Gear Up”


기장의 지시와 함께 동그란 바퀴처럼 끝이 뭉툭한 기어 레버를 살짝 들어 올리면 어느덧 노출된 바퀴마저 동체 안으로 사라지고 이내 한결 가벼운 몸이 느껴집니다.


이제 순항속도로 증속 하기 위해 이륙을 위해 내려 두었던 플랩을 한 단계씩 올려 마침내 우리들 말로 날개를 더는 Dirty 하지 않은 Clean 하고 매끄럽게 만들어 줍니다.


그사이 우리의 고도는 이제 막 3,000피트를 지나고 있습니다.


내다본 창밖으로 마치 돌아가는 솜사탕 기계가 막 뿜어 놓은 듯
실루엣처럼 얇은 안개층을 하나하나 지나쳐 올라갑니다.


어느덧 머리 위로 구름인지 안개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몽환적인 하얀 구름층 사이를 지나자
갑자기 눈물 나게 파란 하늘이 물감처럼 툭 툭 번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솜의 바다를 헤엄치듯 우리는 포근한 대기층을 지나 여전히 상승 중입니다.


항공기는 지금 마치 비단을 가르는 가위처럼 대기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오직 엔진이 만든 소음과 진동이 느껴질 뿐 한참 동안을 미동도 없이 차분히 고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힘든 상황에 취해서는


이 순간 조종실 내 누구도 엔진 계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이런 날 엔진이 나쁠 리가 없습니다.


첫 터뷸런스를 느껴 화들짝 잠에서 깰 때까지,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조종사들은 창밖의 ‘선경’에 취해 선녀의 날개 품에 몸을 맡긴 나무꾼처럼 하늘 위로 끌려 지금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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