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Nov 20. 2019

험난한 공군 T-37중등 비행훈련

구토를 극복하다.

공군 사천기지 1992년 5월

벌써 20분째 이러고 있다. ‘후~~~. 흡. 후~~~” 산소마스크와 연결된 호스 끝으로 거친 호흡이 뿜어져 나온다. 거꾸로 뒤집어진 내무실 모습과 함께 헬멧 속 눌린 머리 끝이 지끈 거린 지 한참이다. 마스크 속에서 연방 씹어 대는 말린 인삼 냄새가 오래전부터 방안 가득하다.
“아직도냐? 너 내일도 또 토하면 이젠 어쩐다냐~?”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건너편 책상에 앉아 있던 동기생이 한마디 거든다.
J 소위는 벌써 2주 동안이나 매일 밤 조종 헬멧에 산소마스크까지 대롱대롱 매달고는 물구나무를 선채로 말린 인삼을 씹고 있다. 꼴이 우습지만 이들은 진지하다.
산소마스크와 연결된 호스 끝을 통해 간신히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누가 그러던데 토가 나오면 삼켜야 한데. 근데 그게 쉽나~”

1992년 대한민국 공군 중등 비행훈련. 석 달 여 초등 비행훈련을 마친 훈련생들이 이미 2달째 이곳 사천에서 T-37 쌍발 제트기 훈련 중이다.
같은 차반 동기들 중 벌써 절반이 솔로비행을 마쳤지만 J소위는 아직까지 4G를 건져야 하는 루프, 바렐롤 등 기동만 하고 나면 구토를 하느라 나머지 시간을 제대로 이착륙 훈련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RTB(Return to Base)를 하고 있던 차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는데” 닫아 쓴 헬멧과 마스크 사이로 신음처럼 긴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는 이미 7 쏘티를 허비했다. 좋게 봐준다 해도 고작 남은 기회는 한 번이나 두 번. 그때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WASHOUT(과정 탈락)이다.
탈락하면 항법사나 F-4 PHANTOM의 WEAPON CONTROLLER로 보낸다는데, 상상하기도 싫다. 중등까지 왔으니 연장복무는 최소한 5년 아님 7년까지 불어나 있을 텐데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사천시내에서 사 온 말린 인삼이 효과 없이 몇 주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오전에 있을 비행 걱정에 장교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거의 손을 못 데고 활주로 건너편 000대대로 향하는 대대 콤비버스에 몸을 싣고는 그는 이내 긴 한숨을 내쉰다.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단본부를 벗어나 이미 활주로 북단을 내달리는 버스에서는 팽팽한 긴장감만 흐르고 있다. 오직 제초병들이 아침 일찍 베어 넘긴 비릿한 풀냄새가 열린 창 사이로 거침없이 밀려들 뿐 누구도 말이 없다.
눈치가 100단인 운전병은 감히 이 분위기를 어쩌지 못하고 라디오 조차 켤 용기를 아직 못 내고 있다.
그는 이들 젊은 소위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벌써 일 년 넘게 지켜봐 오고 있다. 이 사람들 건들면 폭발한다. 조심하자….

아침 7시 30분. 전체 브리핑. 브리핑실을 가득 채운 팽팽한 긴장감에 학생들 누구도 교관들을 기다리는 이 시간 감히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못한 채 허리를 곧추 새운 채 대기한 지 벌써 수분째다
문이 열리고 중대장 이하 교관들이 우르르 밀려든다. 심장박동이 최대치를 치닫는다.
“오늘은 아침에 김 소위 박소위 솔로가 계획되었고, 근데 너희들 잠은 잘 자~았나? 묵직한 경상도 사투리로 오늘 솔로를 나갈 두 훈련생에게 중대장이 턱짓을 하며 묻는다.
“네!. 잘 잤습니다.!” 둘은 떠나가라 목청을 높여 브리핑 룸이 쩌렁쩌렁하게 동시에 복창을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교관들이 뒤에서 키득거린다. 그래도 절대 뒤돌아 볼 수는 없다. 곧 중대장이 자리를 비우면 이때부턴 이곳 생활의 꽃. 비행 관련 질문에 이어 개인 브리핑 시간이다.
곧 중대장이 자리를 비우고 바로 기다렸다는 듯 교관들의 질문이 날아든다.

“맨 좌측 앞에”
“옙! 소위 0 0 0”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훈련생의 다리가 벌써 후들거린다.
“솔로 나갔다가 RTB 하는데 엔진이 꺼졌어 어떻게 할 거야, TWO ENG 나갔을 때 착륙하는 SFO제원이 어떻게 돼?”
“아~ 그때는 일단 아~~~”
“뒤로 튀어나와! 시키야-----.” “그 뒤!”, 그리고 또 이어지는 고함 “다시 그 뒤!”
브리핑 룸 뒤에서 벌어질 일들은 상상에 맡기겠다.

한 시간 뒤 헬멧과 낙하산을 관리하는 장구반에서 장비를 갖추고 훈련생들이 하나둘 주기장에 배정된 T-37 일명 두꺼비 옆에 도열한다. 이내 대대 건물에서 교관들이 늘 그렇듯 왁작지껄 웃으며 몰려나온다. 여기저기서 “필승 000 소위 비행준비 끝~” 활주로가 떠나갈 듯 고함소리가 가득 주기장을 채운다. 곧이어 귀를 찢을 것 같은 엔진음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하나둘 활주로를 향해 택시를 시작한다.
20여 대의 훈련기가 이어서 속속 활주로를 이륙하고 각자의 훈련공역으로 뿔뿔이 사라진다.
J소위의 T37은 오늘 거제도 인근 2만 5천 피트 상공이다
“자 LOOP 해보자! YOU GOT”
“I GOT” 최대한 절도 있게 조종간을 넘겨받고 곧바로 엔진상태를 점검하고 루프 기동에 진입한다. 항공기는 곧 가상 수평선을 발밑으로 밀어내고 솟구쳐 4G의 탱탱한 긴장을 유지한 채 정점을 향해 기수를 들고 있다. “정점. SPEED CHECK 120 KTS” 다행이다 속도는 정확하다. 이보다 적거나 많으면 4G 보다 적었거나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 항공기는 지금 최저속도에 배면 상태다. 한순간의 실수가 스핀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 이어 기수는 다시 지상을 향해 내리 꽂히고 이제 다시 조종간을 팽팽하게 당겨 수평비행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기동은 만족스러웠다.

“괜찮냐?”
“예 괜찮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이미 그의 위장은 폭발 직전이다.
평상시 같으면 바로 조종간을 넘기고 급하게 마스크를 풀어내고는 준비한 플라스틱 구토 봉투에 연신 볼 성사 나운 광경을 연출해야 할 순간인데 오늘은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J소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교관에게 미동도 않은 채 말을 건넨다.
일분여.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 자 이번에 바렐 롤을 한번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까 봐라”
이어지는 2번의 변형된 루프 기동 후 다시 수평비행 엔진 점검을 마친 후 교관은 다시 학생의 상태를 살핀다. “너 괜찮나? 오늘은 안 토하네”
한 동안 말이 없다가. “네, 괜찮습니다.”
간신히 대답한 훈련생이 대견한 듯
교관이 말한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 내려가서 TOUCH AND GO 훈련 3번 정도 하고. 그리고 FULL STOP 하자”
이날 비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엔진이 정지하고 정비사가 준비한 사다리를 타고 교관과 학생이 동시에 내려온다. 그리고 교관이 앞서 걷고 그 뒤를 J소위가 따르고 있다.
갑자기 교관 L소령이 멈춰 선다. 바로 뒤에 붙어 따라오던 훈련생이 멈칫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맛있었나?”

짙은 검정 바이져와 산소마스크로 꽁꽁 동여맨 얼굴은 비행 중 엔진 소음과 어우러져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 극히 힘든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 소령은 오늘 공역에서 기동 중 3번 이착륙 훈련 중 2번 모두 5번 씩이나 훈련생이 구토물을 입안에 담은 채 다시 삼키기를 반복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네! 먹을 만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오늘 점심은 카레라던데 넌 못 먹을 것 같은데~” 내가 얘기해서 교관 휴게실에 라면이라도 끓이라고 해둘게” “내일부턴 우리 바빠지겠다. 이번 주말 전에는 너 솔로 나가야지..”그리고 무심한 듯 돌아서 걸음을 옮긴다.
“필~승! 감사합니다!” 뒤따르는 훈련생의 시야가 흐려진다. 앞으로 적어도 며칠간 교관은 그간 못한 자기 학생 자랑으로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날 J소위는 처음부터 구토 봉투를 준비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2월의 도쿄 나리타 공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