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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0. 2019

민항이 태풍으로 결항한 제주도에 내리다.

2000년 남북 고위급 회담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 조종사들의 일화를 올려봅니다.

남북 고위급 회담 성공을 위해 폭풍으로 민항기조차 운항을 포기한 제주도에 공군 수송기가 내린 역사적인 날

2000년 9월 태풍의 한반도 상륙이 임박한 어느 날, 저는 선배 기장과 함께 임무 부기장으로서 김용순 북한 노동당 비서,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임동원 원장을 모시고 제주로 비행했습니다.  

이날 아침 당초 민항기를 이용하려던 이들의 계획은 태풍으로 취소되고 곧바로 우리는 국정원이 주제 하는 긴급 대책회의에 불려 가게 됩니다.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른 느끼하게 생긴 국정원 직원이 탁자의 중앙에 앉아서 묻습니다.


"공군! 운항할 수 있습니까?"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선배 조종사는 대답합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순간 전 깜짝 놀라 이건 아닌데 라는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는 공군 수송기보다도 바람에 강한 대형 민항기의 이착륙 제한치조차 초과하는 돌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태풍의 상륙이 임박한 제주도에 공군 수송기를??


회의장을 빠져나오면서 저는 물었습니다.


"편대장님 정말 가시려고요?"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나만 믿어!"


늘 긴장하면 콧등에 땀이 맺히곤 하던 이 선배 조종사.


웃음 띤 얼굴이었지만 그날 회의실을 떠나던 그의 코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VIP들을 태우고 서울을 이륙해 제주로 향했습니다.


“You are cleared Direct Jeju.”


관제사가 막 서울을 이륙한 우리 항공기에 항로가 아닌 바로 제주로 비행하라는 허가를 내줍니다..


‘아~지금 한반도 상공에 우리만 비행하는구나!’


그렇게 폭풍 속으로 훗날 개성공단 등 역사적 남북합의가 탄생하게 되는 초석이 된 제주 회담장을 향해 비행이 시작됐습니다.


제주의 상황은 이미 항공기의 바람 제한치를 넘어서는 돌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착륙 당시 다행히 바람은 20도 OFFSET 정풍 45 나트 GUST 65 나트 정풍 성향이 강하긴 했지만


여전히 제한치를 한참 초과. 항공기는 착륙을 위해 속도별로 플랩이라는 별도 양력장치를 내리게 되는데 통상 1~5단계로 구성되며 착륙 시에는 착륙속도를 줄이기 위해 가장 깊은 각도의 플랩을 사용합니다.


"플랩 원" "기어 다운!" " 오늘 우리는 플랩 원 상태로 착륙한다"


항공기 운영 교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 플랩 원 착륙.. 비상시에나 적용하는 비정상적 플랩으로 착륙을 하겠다고 말하는 선배 기장.


하지만 그날 그의 결정은 임무를 가능케 한 신의 한 수였습니다. 강한 정풍에 최소한의 플랩을 사용함으로써 이상적인 GROUND SPEED를 얻을 수 있었고 몰아치는 바람에도 항공기는 안정적으로 접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폭풍 속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도착 후, VIP들이 하기하는 Door는 항공기 우측 부기 장석 쪽으로, 원한다면 창밖으로 하기하는 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저는 애써 시선을 돌려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VIP이기는 하지만 상대는 북한군 장성. 이 사람을 현역 군인인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애써 그쪽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의 뒤쪽에 앉았던 항공기 정비사가


"정대위 님 밖을 좀 보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왜?",


"김비서가 정대위 님을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 나와 김 비서의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아 이를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찰나.


김비서가 먼저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아~ 이 사람이 내게 인사를 하려고 빗속에서 기다렸구나.’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는 바로 최대한 절도 있게 거수경례로 그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어느 신문의 칼럼에 올라온 글


‘어떻게 현역 군인이 적국의 장수에게 경례를 올릴 수 있는가’


어느 보수 언론이 시작한 논란에 저는 한동안 숨죽이고 살아야 했습니다. 혹시나 기무사에서 나를 찾지나 않을까 해서. ㅋㅋ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선배 기장은 훗날 장군이 되십니다. 나중에 이분이 장군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이 2000년 폭풍 속 제주비행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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