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Jan 03. 2022

Dear Bill

제게 주신 모든것에 감사드립니다.

떠나는 내 친구 Bill Woodall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Dear Bill

빌! 우린 제가 대학교 2학년이던 1990년 대전의 한남대학교에서 외국인 교수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죠. 대학 영자신문사에서 잠시 영어 교정일을 도와주실 때 처음 신문사 선배들이 당신을 제게 소개했고 그때부터 우린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며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가끔은 신문사의 사정으로 주말에도 무례하게 전화를 하기도 했어요. 당신의 강의를 듣는다는 이유로 이런 무례한 부탁을 제게 떠맏겼답니다. 무리한 부탁을 잘 들어주었던 당신이 고마워서 가끔 당신의 담당 조교가 출근을 하지 않던 날에는 신문사에서 저를 대신 당신의 사무실에 보내 시급한 잡무를 도와주도록 배려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인으로 매일매일 벌어지는 출입국 관련 업무나 비자, 세금, 은행, 여행을 가기 위한 차편 예약까지 서로를 도우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죠. 


기억하실 겁니다. 한 번은 옥천의 저희 집에  놀러 오기도 했었죠. 지저분한 현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키우던 덩치 큰 우리 개들을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어머니는 그런 당신을 보고 덩치 큰 미국인이 성격이 참 좋다고 말했답니다. 


그해 가을에는 강릉으로 둘이 여행을 다녀왔죠. 원래 당신이 채용한 학생 조교는 이쁜 여학생으로 총각이던 당신은 그녀와 단둘이 여행하는 것이 불편했을 겁니다. 그래서 대신 나와 둘이 그렇게 여행을 다녔죠. 


바닷가 어느 허름한 민박에서 같이 잠을 자고 다음날에는 지금은 불에 타버린 강릉의 어느 사찰에 들려서는 기와 불사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 넣기도 했던 걸 아직 기억할 겁니다. 그렇게 우린 점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2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던 날 대학교에서는 제게 당신을 김포공항까지 배웅하도록 학교 리무진을 내어주는 배려를 해 주었었죠. 


당신은 모르셨겠지만 그날 당신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한참을 혼자 울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나이 서른 즈음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던 길 당신이 살던 아이다호까지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인사를 갔었죠. 


그 당시 당신은 아이다호 보이지의 어느 산속 오두막에서 홀로 명상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오두막에서 우린 며칠을 같이 보냈죠. 


당신은 감자와 아스파라거스를 물에 삶은 단출한 식사를 내었죠.  그 청빈함이 좋았습니다. 언젠가 저도 당신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 일이 벌써 20년 전입니다. 그 사이 서로 다시 만나진 못했지만 우린 좋은 친구로 가끔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지난밤, 이제 당신에게 남은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아내 캐롤린이 어제 제게 연락을 주었어요. 


전립선 암 4기로 이미 림프절에 전이가 되어 회복될 가망이 없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이젠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빌, 저는 평생 당신의 존재를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저를 응원하고 저의 작은 조크에도 크게 웃어주며 기뻐하던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Oh, Gosh!"


잠시 당신의 조교 일을 보던 날 내가 외친 이 말에 당신은 한참 동안 폭소를 했었죠. 


한국인인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며 껄껄 웃었어요. 


당신의 귀에는 아마 "이런 우라질." 정도로 들렸을까요. 


빌 당신과 저는 평생을 어떤 가느다란 영적 의식의 끈으로 태평양을 건너 이어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고요. 


의식이 없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당신을 생각하며 눈물짓고 있는 것을 당신은 분명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 둘은 늘 그런 사이었으니까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조금 늦더라도 용서하세요. 


곧 찾아뵙겠습니다. 


Love

작가의 이전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