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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운명처럼 우연처럼, 제가 조종사가 된 이유

제가 조종사가 된 이유를 밝힙니다.

1992년도 공군 사관후보 조종 장교에 지원하고 보니 구성원들이 참 다양했습니다.

지금처럼 조종사가 되는 길이 많지 않은 오로지 군 조종사를 통한 것이 전부이던 시절, 평생 조종사의 꿈을 가지고 살아온 청년들이 90년부터 시작된 일반대학교 졸업자의 공군 조종 학사 장교 모집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때까지는 이 제도가 생소해서 경쟁률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습니다.  

독특한 것은 기본 군사 훈련을 받는 도중 서로를 알게 된 이들 동기생들 중 약 1/3이 군필자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이 조종사가 되겠다고 다시 공군 장교 과정에 들어온 것이지요.


그들이 거쳐온 군의 종류도 다양했어요.
육군, 공군, 특전사, 해병대까지 이들 예비역은 비행 교육 입교자 기준(총 9명이 입과)으로 절반 이상이 비행 교육을 수료해서 현재 아시아나, 제주항공, 티웨이에 각각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군 미필자는 저를 포함해서 3명 그중 하나는 공군의 비행 교수로 다른 한 명은 대한항공에 남아 있으니 동기생 전체가 모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어떻게 조종사가 되었는지 밝힙니다.


평생 조종사가 되기를 꿈꾸어 왔던 여러분들과 달리 제가 조종사가 되는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학을 4년 연속으로 중간에 사병으로 군대에 가지 않고 다닌 끝에 마지막 해에 대전 선화동의 병무청을 친구와 찾았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하는 현역 해군 장교입니다. 그 당시 이 친구는 해군 OCS 후보생이었습니다. 장교로 군에 가겠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 그와 달리 저는 어느 군으로 갈지, 어떤 병과를 지원할지 결정을 못한 상태였습니다.


병무청 건물을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복도 끝에서 우리를 부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왜 왔는지를 묻고는 제가 안경을 쓰는지 궁금해하더군요.
당시 제 시력은 양쪽 눈 모두 2.0이었습니다.


운명처럼 그는 ‘공군 모병관’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우리를 자기 자리로 잡아끌었고 책상 위에 공군 학사 조종장교 선발요강을 펼치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전공이 영문학인데 지원이 돼요?"


"전공 불문이야. 영어를 잘하면 좋지!"


"비행을 하나도 모르는데 제가 비행 교육을 통과해 조종사가 될 수 있나요?"


"역시 걱정 마, 공군에서 다 교육해주니깐 따라가기만 하면 돼."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중간에 수료하지 못하고 잘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가 씩 웃으면서


"그 점도 걱정하지 마. 그냥 일반 장교로 쪼금만 더 복무하면 되는 거야."


그 길로 바로 지원서를 들고 학교로 돌아와서는, 취업 지원센터 내의 ‘적성검사 담당자’를 찾았습니다.


일단 제가 조종사의 적성이나 있는 것인지 먼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지루한 서너 시간의 검사를 그날 마치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그는 제게 거의 10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추천 직업 리스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금도 소름이 돋네요..


'조종사'


"왜 제게 조종사가 적성에 맞다는 거죠?"


그는 미심쩍은 눈으로 제게 "그쪽 전공이 뭐죠?"


"영문학이요, 부전공은 교직을 했어요."


한참을 검사 결과를 뒤적이던 그가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을 하고는


"아주 재미있네요. 그쪽은 교사나 기자, 출판업자 등엔 전혀 소질이 없는데요" ㅋㅋㅋ


아시는 분이 있겠지만 그 당시 저는 대학에서 3년간 영자신문사 기자와 편집장까지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쪽이 조종사가 맞냐면 말이죠~ "


그리고 그가 영역별 시험 점수를 펼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한 과목. 유독 그 하나가 '만점' 이더군요.


그 영역은..... 역시 소름이 ㅎㅎ


'공간 지각력'


그래서 대학신문사 기자가 공군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운명처럼. 우연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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