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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28. 2022

출발 직전 승객이 여권을 분실했어요? 어쩌죠?


아침 10시 40분 출발인데도 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공항 기상정보에는 시정 3000미터를 보이는데도 두 개 활주로 중 북쪽 런웨이를 한 달간 새로  포장하느라 닫아두다 보니  벌써 지연되고 있다. 


예정된 출발 시간까지도 도착하지 않은 승객들의 짐을 내리느라 벌써 15분이나 지연되고 있었다. 관제사들이 출발 준비가 된 항공들에게 예상되는 푸쉬벡 타임을 새로 불러주고 있는데 약 10분의 딜레이가 추가로 주어지고 있었다. 


간략히 승객들에게 지연방송을 했다. 


이후 마침내 카고 도어가 닫히고 출발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제 탑승 브리지도 떨어지고  푸쉬벡 허가만 남긴 시점이었다. 


"띠이 띠이" 


조종실 출입 카메라를 눌러보니 사무장이 서있다. 


문을 열자 그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문제가 발생했어요. 승객 중 한 분이 여권을 잃어버려서 찾고 있어요. 크루들 두세 명이 같이 뒤지고 있는데 어쩌죠? 혹시 못 찾으면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는데요?"


동시에 관제사의 푸쉬벡 허가가 나왔다. 부기장이 나를 쳐다본다. 


여러분이 기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


사실 시간이 없었다.  사무장이 등 뒤에 들어와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에 동시에 그라운드 컨트롤에서 푸쉬벡 허가가 나왔고 부기장이 Readback을 하는 상황이었다. 하마터면 푸쉬벡 허가를 켄슬 하라고 지시할 뻔했다. 


사무장과 부기장이 동시에 


"자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는 눈으로 기장을 바라본다.  


이미 30분 정도 지연이 있었고 무슨 이유인지 플랜상으로 매우 빡빡한 도착시간으로 인해 최대 순항속도로 파일 된 구간이어서  더 이상의 지연은 막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즉 푸쉬벡을 중단하고 여권을 찾는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이미 나는 내려 버린 것이다. 


승객 한 명 때문에 다른 승객 300명을  추가로 1시간 지연시키는 결정은 그것이 생명이나 안전에 관련된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내렸고 기장은 이제 승객이 아닌 사무장을 먼저 납득시켜야 한다. 사무장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가 승객을 납득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이날 자카르타로 향하는 승객의 대부분은 사우디 메카에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는 무슬림들이었다.  


여권을 잃어버린 승객도 이들 중 한 명일 것이다.


"사무장님, 이렇게 생각해봐요. 여권을 잃어버린 시점이 지금이 아니라 자카르타에 착륙한 이후, 그것도 이미그레이션 앞이었다면 어떨 것 같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착륙 직전이라면 또 어떨까요? 문제가 달라질까요? 아까 승무원들과 본인이 지금도 여권을 계속 찾고 있다고 하셨죠?"


"예, 크루들이 가방과 좌석을 같이 뒤지고 있어요."


"좋아요. 우리 비행하는 동안 계속 여권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잃어버린 여권이 항공기 내에 있을 확률이 큰 것 아닌가요?"


이집트 출신 남자 사무장은 이 상황을 바로 이해한 눈치였다. 


"네 알겠습니다. 출발하시죠!"


.......................


여권은 다행히 나중에 승객의 손 짐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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