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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28. 2022

어느 한국인 엔지니어의 흔적


외부 점검을 마치고 항공기 노즈 쪽으로 이동하는데 나보다 앞서 계단을 바삐 오르는 이가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매는 분명 동양인이다. 


잘 다려서 가로 세로줄이 선명한 흰색 와이셔츠 위에 간결한 형광 베스트를 둘렀다. 


엔지니어다. 


메케닉이라 부르는 이들이 저렇게 입으면 한 시간도 못 가서 기름과 땀에 바로 얼룩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뒤를 따르다 보니 그가 먼저 칵핏에 들어가고 내가 뒤를 따르는 형국이 되었다. 그는 급유가 끝날 즈음에 맞추어 테크 로그를 릴리즈 하기 위해 내 항공기에 올라온 것이다. 


급유를 포함한 모든 정비조치가 끝난 항공기의 테크 로그(Thchnical Logbook의 약자)에 마지막으로 엔지니어가 싸인을 하나 추가함으로써 항공기는 출발 준비가 끝난다. 


이어 기장인 내가 ACCEPT 란에 사인을 하는 순간 그때부터 이 777의 책임은 정비에서 기장에게 넘어온다. 


그가 넘겨주는 빨간색 커버의 두터운 테크 로그를 받아 들면서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전 말레이시아에서 왔어요.”


그는 나처럼 눈이 작은 중국계 말레이였다. 


“반갑습니다. 전 한국사람이고요. 얼마 전 사직한 한국 엔지니어 ‘진’이라고 혹시 아세요?” 


이곳에선 김진혁 엔지니어를 그렇게 불렀다. 


유일한 한국인 엔지니어이기에 혹시 그를 알까 싶어 물었다. 


“알다마다요. 참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를 놓친 건 에미리트 엔지니어링에 큰 손실이에요. 진심입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모든 한국인이 그렇듯 나 역시 최소한 나로 인해 내 나라와 한국인들이 욕을 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늘 가진다. 


랜딩을 하는 순간이나 승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도 늘 맨 먼저 내가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동료들에게 나중에 저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일했던 단 4년 만에 그는 많은 동료들의 기억 속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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