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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28. 2022

주차장을 돌다 타 죽을 뻔했던 이야기


회사 앞 주차장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에게 여름옷과 신발을 페덱스로 보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뿔싸.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왔다. 


회사 앞 주차장에는 아내가 차에 남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 


조금 전 나를 내려줄 때에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 주차장 초입에서 그냥 자리바꿈을 했던 터였다. 


메트로로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나를 내려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낭패였다. 한낮 기온은 5월 말인 지금 벌써 40도를 훌쩍 넘기고 있다. 


아주 큰 주차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줄 한 줄 걸어 다니며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흰색 소렌토를 살이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찾는다는 건 전혀 유쾌하지 않다. 


결국 화를 낼지도 모른다. 정작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 것은 나인데도 말이다. 


길을 건너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두 번째 줄로 빠르게 주차 중인 차들 사이고 비집고 나아갔다. 


'없다.'


어디엔가 자리가 나서 세웠을 수도 있고 아니면 주차단속요원 때문에 자리를 옮겼을 수도 있다. 


반팔 소매 옷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양쪽 팔꿈치 아래쪽이 조금 전부터 따갑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음 줄로 이동했다. 역시 없다. 아직 3줄이나 더 남았다. 그렇게 마지막 줄까지 나아가 길이가 한 100미터쯤 되는 주차장의 좌우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아내가  타고 있을 흰색 SUV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 한 구석에 주차를 했다는 얘기다. 


아직 피부 속에 남아 있을 차가운 공기를 조금이라도 덜 내어놓으려는 심산으로 최대한 호흡을 작게 하면서 주차장 입구로 다시 걸어 나왔다. 오는 길에도 혹시나 하며 둘러보았지만 역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주차장 전체를 하나하나 뒤져보아야 한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누군가에게 핸드폰을 빌려 한통화만 할 수 있다면..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미 가득 차 버린 주차장에 막 들어선 몇 대의 세단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에게 다가가 부탁을 해볼까. 그중 지금 막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작은 회색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 운전자는 인디언이다. 뒷좌석에 아내로 보이는 여성도 타고 있다. 그에게 손을 흔들고 창가로 다가섰다. 그가 창을 내린다. 


"주차할 공간을 찾고 있죠?"


"네!"


"내 아내가 이곳 어딘가에 주차하고 있는데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와서 연락할 방법이 없어요. 핸드폰을 빌려 통화를 하면 그 자리에 세울 수 있을 텐데 어때요?"


그가 바로 핸드폰을 건넨다. 


신호가 간다. 10초 20초, 이런 전화를 안 받는다. 다시, 또다시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마에선 이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스크 속에서 베어 나온 습기가 날 숨을 쉴 때마다 선글라스를  흐리고 있다. 


참다못한 그가 내게 손짓을 하더니


"오른쪽에 타세요. 같이 돌아보시죠. "


그렇게 처음 보는 인디언 가족의 차에 올라타고 첫 번째 주차장 코너를 돌고서야 마침내 아내의 흰색 소렌토를 발견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나도 공항에서 일해요. 우린 한 가족인걸요." 그는 웃음이 자연스러운 좋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우린 둘 다 운이 좋았다. 


아내가 앉아있는 왼쪽 운전석에 다가가 창문을 두드리자 놀란 눈으로 차문을 열면서 아내가 운전석을 비워주며 한마디 한다. 


"왜 이렇게 늦었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혀 타박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을 톤으로 


"그런데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전화했었어? 안 울렸는데 아니 친구랑 통화 중인데 모르는 사람이 계속 전화를 하는 거야!!"


"그거 나였어. 나 핸드폰 집에 두고 와서 다른 사람 폰으로 전화를 한 건데 안 받으면 어떡해~~"


후진으로 차를 빼자 기다리던 그가 바로 차를 넣는 것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속으로 잘했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하마터면 타 죽을 뻔했다. 


나오기 전 회사 코스타 커피숖에서 차가운 아이스티 두 개를 테이크아웃해오길 정말 잘했다.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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