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제이 Oct 31. 2022

새로 산 구두

조금 전까지 팔짝팔짝 뛰면서 잘 따라오던 리사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역시 새로 샀다고 자랑하던 그 무릎까지 올라오던 검은 가죽 구두 속에서 발이 쓸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호텔에서 출발하기 전에  양말을 신지 않고 나왔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양말도 안 신고 맨발에 새 구두를 신고 가겠다고? 좋은 생각이 아니야. 다시 생각해봐. 어서 올라가서 양말 신고 내려와. 기다려줄게."

이렇게 을러보았는데도  그녀는 그냥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 웃더니


"아뇨. 전 아주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ㅋㅋ"


"내 방에 포장을 뜯지도 않은 발목 양말이 있어. 내가 가져다줄게. 신을래?"


"야뇨. 그러지 마세요.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게에요."


결국 이렇게 크루들이 저녁식사를 하러 같이 호텔을 출발한 지 이제 겨우 15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발 뒤꿈치에서 사단이 난 것이다.


쩔뚝거리는 그녀를 향해


"내가 그래서 양말 신고 오자고 했잖아!.. 아휴... "


이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는


"죄송해요. 말을 듣는 건데..."


"꼭 이렇게 애들은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어서 나중에 꼭 일을 치른다니깐..."


같이 따라온 사무장을 비롯한 크루들이  내 말을 듣고는 키득키득 웃는다.


그런데 당장 양말을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이상태로 더 걷다가 발의 피부라도 벗겨지면 내일 비행도 힘들어질 수 있다.


다행히 우리들은 오래지 않아 집시들이 운영할 것 같은 허름한 기념품샆을 하나 발견했다.  모두가 리사를 위해 서둘러 양말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 양말도 파나요?"


영어를 못하는 가게 여주인은 한쪽 구석으로 우리를 이끌더니 먼지가 수북이 쌓인 허름한 바구니 하나를 바닥에서 끌어내 건넨다.

다행히 그 안에 신을만한 발목양말이 하나 보인다.


이때 마음이 급한 리사가 나서면서


"카드 되죠?"


난 속으로


'아휴. 이런 곳에서 카드가 될 리가 있니??  ㅠㅠ'


당연히 주인아주머니가 고개를 흔들면서 안 되는 영어로 현금은 건물 밖에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바꿀 곳이 있다는 손짓을 한다.


벌써 10월이라 해가 많이 짧아졌다. 이제 5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벌써 밖은 어둑해져 있다.  어딜 다시 현금을 구하러 처음 온 도시를 돌아다닌건가.


"그냥 갈래요. 어쩔 수 없죠."


리사가 출입문쪽으로 몸을 돌린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어깨에 둘러맨 손가방에서 지갑을 열어 10유로 지폐를 하나 꺼내 주인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유로도 받아줄 거죠?"


폴란드는 아직 유로가 아닌 자국 화폐 즐로티를 쓴다.


다행히 아주머니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올라온다.  


그녀가 꾸물 꾸물 진열대 뒤로 돌아가 숨겨둔 돈통을 뒤져 5유로 지폐를 하나 찾아내 내게 건넨다.


싸구려 중국산 발목양말 하나에  5유로나 받다니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다.


잠시 후 양말을 건네 받은 리사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그 긴 검정 가죽부츠의 지퍼를 내리는 걸 보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그녀가 나에게 다시 팔짝팔짝 뛰는 시늉을 하면서 다가온다.


"데디! 고마워요~~"


그런 그녀를 보며 짐짓 화난 척 고개를 돌리고 눈을 흘기는 시늉까지 하면서


'왜 딸들은 아빠  말을 안 듣는 거야~~ 안 써도 될 5유로나 썼잖아!"


"죄송해요~~~ 데디~"


다음날 비행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 그녀가 이번엔 말쑥하게 차려입은 유니폼 차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늘은 아주 의젓해진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팔을 활짝 벌린다.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는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리사!"


"네~~"

작가의 이전글 칵핏에 온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