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30대를 돌아보면 지금 생각해도 기특한 면이 있다.
영어에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 당시에 난 777 부기장이었는데 이전에 330에서 777로 기종전환을 하며 약 2년간 일했던 사무실에서도 나와 라인에 복귀한 터였다.
점점 라인에 적응이 되어가면서도 그런데 뭔가 한구석이 비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외국인 동료들과 같이 일하던 사무실을 떠난 터라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줄어든 탓이었다.
어느 날 평소 친분이 있던 330 소장님과 통화를 하다가 참 당돌한 부탁을 했다.
"제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시겠어요?"
이 말이 기특했던지
대한항공을 떠나는 그 해까지 난 아무런 보수나 댓가 없이 외국인 기장들에게 보낼 공지사항의 영어번역을 맡았다.
물론 내가 받은 댓가라고는 영어를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전부인 순수한 자원봉사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몇 년 뒤 운항본부 소장님들의 추천으로 부기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회장님 표창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력이 나중에 중동 항공사로 옮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그 당시 조종사 영어평가 4등급으로 이곳에 입사한 사람은 동기 중에 내가 유일했다.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물결이 내 인생에 큰 파도를 만든 격이다.